나라꼴이 어찌될까. 보라. 자신이 영업사원이란다. 대한민국 대통령 말이다. 그것도 외국 대기업 회장들 앞에서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그는 호텔에 마련한 ‘글로벌 CEO와의 오찬’에서 “우리 글로벌 기업인 여러분을 한 번 뵙고 점심이라도 한 번 모시는 것이 대한민국 영업사원으로서 도의라고 생각해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언론들은 크게 부각했다. 어느 언론은 “대통령 취임 후 ‘세일즈 외교’ ‘모든 순방은 경제 중심으로’ 등 정상외교를 통한 경제 산업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윤 대통령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
한국 언론이 위기 불감증에 사로잡혀 있다. 기자들과 김만배 사이에 억대의 돈이 오갔고 누군가는 명품 가방을 챙겼다. 언론다운 언론을 이룰 역사적 소명을 지닌 신문의 기자까지 들어있어 충격은 더 컸다. 김만배가 여러 언론사 기자들과 골프를 칠 때마다 100만 원 또는 수백만 원 봉투를 무시로 돌렸다는 말까지 ‘정치 검찰’은 솔솔 흘리고 있다.새삼 위기를 들먹이기도 남우세스럽다. 이미 많은 이들이 언론 위기를 진단해왔다. 문제는 언론개혁운동에 대해서는 물론 언론을 살리자는 호소까지 다름 아닌 언론이 뒤틀어온 데 있다. ‘한국 언론의 현
새해 첫날이다. 덕담이 미덕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위기’를 쓴다. 먹고 사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는 기득권층과 달리 우리 민중에 드리운 먹장구름이 너무 짙다. 새해이되 새해가 아니다. 민주, 민생, 안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세 부문 두루 위기가 무장 커지고 있다. 위기는 윤석열 정권의 시대적 역행이 불러왔다. 국정에 임하는 자기 생각이 있는지 의문마저 든다. 기득권을 대변하는 편향 보도를 일삼으면서도 마치 국민을 위한다는 듯이 늘 행세해온 ‘신문방송복합체’들이 그와 대통령실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머슴. 더러 오해하지만 노비나 하인이 아니다. 부농이나 지주에 고용되어 일을 해 주고 품삯을 받는 사내를 이른다. 1980년대까지 전체 농업 노동 가운데 0.6%를 차지했다. 노동인들의 권리 의식이 보편화하면서 시나브로 사라졌다. 참 흥미롭게도 머슴은 정가에서 부활했다. 민주화 이후 선거에 나서며 머슴을 자처하는 후보들이 나타났다. 가장 강렬하게 머슴을 자임한 후보가 윤석열이다. 3월 7일 안산에서 “모든 선출직·임명직 공직자가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머슴이 되는 게 민주주의”라며 심판해달라고 호소했다.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배우 윤석열. 행여 발끈할 일이 아니다. 대선 후보시절 그가 자처한 말이다. 문화방송을 공격하듯 울뚝밸 치밀 일도 아니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거나 비판할 때 목적은 타도가 아니다. 권력을 쥐면 누구나 지니게 마련인 오만함에 성찰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윤 대통령은 12월4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장관들과 대책회의를 열고 “6일 민노총 총파업이 예정돼 있다”며 “근로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파업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조직적으로 불법과 폭력을 행사하는 세력과는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하지 않겠다”며 ‘업무
“슬픔에 빠진 대한민국에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대통령 말이다. 그럴 만도 했다. 이태원 참사로 온통 슬픔에 빠진 상황이었다. 경북 봉화의 아연 광산 갱도에서 221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소식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두 명이 매몰되어 있을 때 대통령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준비하겠다고 공언도 했다. 두 광부는 퇴원하면서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전국 곳곳의 어두운 지하에 들어가 있는 ‘산업전사’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간곡히 당부했다.그런데 보라. 11월16일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광산피해
“다시는 불행한 가족을 만들지 않겠다고 촛불 들지 않았던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나온 절규다. 지난 주말이다. 서울시청에서 숭례문까지 수만 명이 모였다. 촛불을 들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했다. 세월호 유족인 장훈 4.16안전사회연구소장은 “책임자 처벌을 소홀히 해 온 역사”가 되풀이되는 참사의 원인이라고 호소했다.그럼에도 보라. 촛불을 바라보는 집권당 실세들은 도무지 성찰이 없다. 되레 살천스럽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권성동은 “타인의 죽음마저 정쟁의 자원으로 소비하는 운동업자”라고 비아냥대며 그들에게 “비극은 산업이고
아주 의아해한단다. “윤석열이 왜 저러지?” 그와 개인적으로 술을 적어도 50회 넘게 마신 사람들의 목소리다.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유인태가 CBS 라디오에 출연해 전한 그 말이 갈수록 실감난다. 딱히 그의 술친구가 아니었어도 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한 검사 윤석열은 상식적이고 정의감도 있어 보인 것이 사실이다.그런데 보라. 미국에서 자기가 한 말을 놓고 진상 규명이 먼저라는 기막힌 주장을 버젓이 했던 그는 국힘당 원외당협위원장들을 만나 돌연 “종북 주사파는 협치의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은 “대한민국을 전복하
엄중 경고. 윤석열 정부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내린 조처다.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를 두고 문체부는 정치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했다며 엄포를 놓았다. 조금만 새겨보아도 생게망게하다. 정치로 호의호식하는 자들이 청소년에게 정치적 풍자를 엄금하는 꼴 아닌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런 혐오나 증오의 정서가 퍼지는 것에 대해선 반대한다”며 자신이 “심사위원이었다면 상을 줘서 응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무나 심사에 참여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상 받은 학생에게 상처 주는 권력의
윤석열의 자유. 국제무대까지 선보였다. 유엔총회 11분 연설에서 ‘자유’를 21번 부르댔다. 같은 자리에서 칠레 대통령 가브리엘 보릭이 ‘사회 정의’를 강조하며 “부와 권력을 더 나은 방식으로 분배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제안한 연설과 참 대조적이다.한국 대통령의 연설은 감응을 주었을까. 아니다. 자유를 외치는 그의 연설은 ‘신자유’ 이데올로기조차 외면 받는 세계적 흐름에서 ‘미국의 아바타’ 수준으로 읽혔을 터다. 기실 그의 낡은 자유론은 케케묵은 냉전에 찌든 철학 또는 정치학 교수 출신들이 그의 주변에 있기에 필연적이다. 자유
윤석열 정부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하나는 협치, 하나는 정쟁의 길이다. 나는 현 정부 출범부터 지금까지 칼럼에서 “작은 가능성이라도 살려보고 싶다”며 협치를 권해왔다.조선일보와 그 아류들은 정반대였다. 조선일보가 ‘전설’로 추앙하는 김대중은 두 차례 같은 제목의 칼럼(8월16일, 9월6일)에서 ‘윤 대통령 달라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첫 칼럼에서 “대장동 사건 등 사법 당국의 심판에 올라있는 불법들을 처리하지 않는(또는 못하는) 윤대통령”은 “큰 실수를 하는 것”이고 “민주당 세력과의 ‘협치’운운하는 데 뜻이 있는 것이라면 그
“다음 생엔 부잣집에서….”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리다 삶을 접은 수원 세 모녀의 빈소를 스케치한 중앙일보(인터넷판)가 머리기사로 올린 큼직한 표제다(8월25일). 몇몇 언론도 그렇게 보도했다. 기자와 편집자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세 모녀를 두 번 죽이는 행태다. 실제로 수원의 세 모녀만이 아니다. 8년 전 송파 세 모녀도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수원의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는 수첩에 적바림을 남겼다. “그냥 가려 했는데 한 자 적는다”며 경제 활동을 하던 오빠가 병사하고, 몇 달 뒤 아버지마저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한국 언론의 속살을 드러내주었다. 그가 대만을 방문한 2일 밤부터 지난 2주일 내내 조선일보와 그 아류들은 미국 하원의장 의전을 내세워 ‘윤석열 교육’ 또는 길들이기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가장 먼저 “펠로시 안 만나는 윤, 미·중에 잘못된 신호 주는 건 아닌지” 제목의 4일자 사설에서 윤 정부가 “문재인 정권처럼 굴종적 자세”를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열흘째 ‘펠로시 소홀’을 들먹였다. 전 국가정보원장 박지원까지 인용해 “김대중 대통령이었으면 만났을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D
윤석열 정부가 위기다. 취임하고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렇다. 흥미롭게도 동아‧중앙일보는 물론 조선일보에도 슬금슬금 비판적 논조가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까지 추락하면서다. 국정 운영에 부정적 평가는 70%에 다가섰다. 국힘당 의원총회조차 대통령실과 정부의 쇄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윤 정부 지지율 추락엔 ‘날개’가 없을까. 문제는 앞으로 4년 9개월 내내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는 사실이다. 작은 가능성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가령 국힘당 각료들과 조선일보가 ‘흉악범 북송’을 지렛대로 몰아친 색깔몰이와
대한민국 인권 수준이 치솟은 걸까. 조선‧중앙 신방복합체와 윤석열 정부가 갑자기 ‘치열한 인권지킴이’로 등장했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이라고 몰아친다. ‘자유대한을 찾은 탈북자를 문 정권이 판문점에서 돌려보냈다’고 울뚝밸을 부린다.날마다 감성팔이다. 가령 조선일보 인터넷판(7월13일)을 보자. 대통령실이 지난 정부를 “반인륜적 범죄”로 몰아친 내용을 머리에 올렸다. 조선일보 편집부국장에서 권력의 대변인이 된 강인선의 발표다. “피범벅”이라는 자극적 제목의 기사 아래엔 탈북민들이 “우리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다”는
우주산업이 언론에 부쩍 부각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7월부터 ‘우주산업클러스터’를 지정해 집약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첫 우주 발사체 누리호가 6월21일 위성의 궤도 안착에 성공한 뒤부터 이어진 흐름이다. 발사 다음날 조선일보는 1면 머리 “우리 우주를 열었다”에 이어 “마침내 우주로 첫발 내디딘 대한민국” 제하의 사설에서 “선진국들은 우주를 미래 산업으로 보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며 “앞으로 패권은 우주를 선점하는 나라가 거머쥐게 될 것”이라고 부르댔다.한겨레도 “누리호 발사 성공, ‘뉴 스페이스’ 대장정 첫
연세대는 교문에서 본관까지 길이 곧다. 해마다 6월이 오면 긴 길섶 좌우에 6월대항쟁의 불꽃 이한열을 추모하는 펼침막들이 붙는다. 6월20일에 다시 찾은 교내도 그랬다. 총학생회는 “민주화를 위한 당신의 희생,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으리라”를 내걸었다. 총동아리연합회는 “흐른 시간이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대의 운동화에 흐른 피와 땀이 세상을 바꾸었다”고 썼다. 이한열이 숨을 거둔 의과대학은 “다시 태어나면 그대를 업고, 그대가 꿈꿔오며 목숨바쳐 색칠한 세상 보여주리”라는 글을 펼쳤다.젊은 벗들의 추모 글에 가슴이 애잔하다.
민주당이 놀아나고 있다. 집권당과 ‘언론권력’이 손잡고 날마다 언구럭을 부린다. 한낱 우스개가 아니다. 언론이 분당 가능성을 보도하자 실제로 그런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생게망게한 상황의 일차적 책임은 물론 민주당에 있다.차분히 톺아보면 이명박과 박근혜로 정권이 이어졌음에도 민주당이 정권을 되찾을 가능성은 불투명했다. 촛불혁명이 일어나면서 집권할 수 있었음에도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소망을 구현하지 못했다. ‘집값 안정만은 자신 있다’거나 ‘비정규직 제로’와 같은 객쩍은 호기를 부렸다. 촛불혁명의 주체가 민주당이 아니었음에도 문재
오월정신. 확고히 지켜가겠단다. 윤석열 정부의 다짐이다. 5·18 민중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정신”이 “국민통합의 주춧돌”이라고 주장했다. 윤 정부 초기인 지금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오월정신을 통합의 주춧돌로 삼으려면 또렷한 ‘선행 인식’이 필요하다. 톺아보면 5·18 민중항쟁에 통합 거론은 학살 바로 다음날부터 나왔다. 계엄군의 전남도청 학살 직후에 조선일보 사설은 “악몽을 씻고 일어서자”고 주장했다.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단다. “신중
촛불이 사위어간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대통령은 퇴임했다. 후임은 박근혜를 집으로 찾아가 “참 면목이 없다. 늘 죄송했다”고 고개 숙이며 ‘명예회복과 정책 계승’을 약속한 검사다.기막힌 변곡점이다. 촛불의 역사적 뿌리를 새삼 찬찬히 새기는 까닭이다. 옹근 100년 전 5월이다. 호외가 시내 곳곳에 뿌려졌다. 창간 초기였던 동아일보는 1면 머리에 실은 사설 ‘손병희 선생을 조(弔)하노라’에서 고인이 “민중으로 반려하여 민중으로 고락”하며 민중의 우러름을 받았다고 애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도 “2천만 배달민족을 대표하여 반만년 대조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