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특집] ⑬ 어린이 위해 미디어가 지켜야 할 것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일반논평, BBC 제작가이드라인, 아동권리와 경영원칙, 윤가은 감독 촬영수칙 

어린이날을 맞아 지난달 27일 미디어오늘이 진행한 전문가 대담에서 김아미 시청자미디어재단 정책연구팀장은 “저널리스트들이 도와줘 어린이들이 뉴스를 만들어 방송하는 BBC 영리포터 관련 자료를 보면 보도윤리가 상당히 치밀하다”며 “뭘 지킬 것이며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등의 약속이 있는데 어린이를 위한 소통의 장을 만들 때는 공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에 미디어오늘은 BBC 제작가이드라인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일반논평, 세이브더칠드런·유니세프·글로벌콤팩트 등이 만든 ‘아동권리와 경영원칙’, 윤 감독의 촬영수칙 등을 통해 어른들, 특히 미디어가 어린이를 위해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알아봤다. 

모든 형태의 폭력에서 자유로울 권리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 2011년 발표한 일반논평 13호 ‘모든 형태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아동의 권리’를 보면 어린이를 폭력에서 보호하는 것을 넘어 예방까지 강조했다. 예방조치를 구체적으로 보면 “성, 인종, 피부색 여타 힘의 불균형 등 모든 형태의 폭력의 관용과 용인을 영속화하는 태도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했다. 모든 차별에 문제제기하는 걸 의무화하고 있다. 

▲ 어린이 프로그램 뿐 아니라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모든 콘텐츠에 관련 규정을 고려해 만들어야 한다. 사진=pixabay
▲ 어린이 프로그램 뿐 아니라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모든 콘텐츠에 관련 규정을 고려해 만들어야 한다. 사진=pixabay

 

영국 공영방송 BBC의 제작 가이드라인(2011년, 번역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을 보면 이런 문제의식이 담겼다. 

어린이가 볼 수 있는 콘텐츠, 기준에 민감해야

BBC는 가이드라인에서 “특히 어린이 보호와 관련된 시청자의 기대는 물론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기준에 민감해야 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불쾌감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자료를 포함했을 때 편집상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고 그러한 내용이 포함했음을 명백하게 공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불쾌감 유발 내용으로는 거친 언어표현, 폭력, 성폭력, 모욕, 인간 존엄성 무시, 차별 등을 포함하지만 여기에 국한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거친 언어와 콘텐츠일 것으로 시청자 기대가 이미 확립된 시리즈를 다시 시작할 때도 방송 전에 유사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며 언론인들의 의무를 강조했다. 

물론 방송에선 사실 그대로를 전달할 필요성도 있다. BBC는 ‘다양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반영할 필요성’과 ‘그것이 잠재적으로 유해하거나 불법 행위를 어린이에게 장려할 수 있는 위험’ 간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언론인이 콘텐츠를 만들 때 사안별로 고민해봐야 한다는 취지다. 

▲ 영국 BBC 로고
▲ 영국 BBC 로고

 

BBC는 어린이를 15세 미만으로 규정했고, 15세~17세를 청소년으로 봤다. BBC는 어린이들이 접할 수 있는 오후 9시 이후를 제한시청시간대로 정하고 오전 5시30분부터 오후 9시 사이 방송은 어린이 포함 일반 시청자에게 적합해야 한다고 했다. 

BBC는 단지 어린이 프로그램만을 규제하지 않았다. 제한시청시간대 뿐 아니라 어린이가 청취할 가능성이 높은 라디오 시간대, 상당수 어린이가 좋아할 가능성이 있는 온라인 콘텐츠 등 실제로 어린이가 접할 수 있는 콘텐츠 전반에서 유해한 장면이 있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폭력장면이 들어간다면 편집에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폭력장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도록 했다. 

반대로 명백한 편집상 이유가 없을 경우엔 폭력, 위험하거나 반사회적 행동, 그런 행동을 모방하도록 부추기는 자료와 이를 묵인·미화하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도록 했다. 동물에 대한 폭력도 규정했다. 어린이는 인간이 동물에 폭력을 가하는 영상이나 장면에 정신적 고통을 느낄 수 있어서다. 폭력장면이 생생하지만 동물이 해를 입지 않았다면 이 역시 공지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처럼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서 해당 콘텐츠가 성인인 자신과 자신의 자녀에게 적합한지 시청자가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원칙도 정했다. 

어린이들이 따라하면 위험할 수 있는 장면에 대한 규정도 있었다. 특히 주방용 칼, 망치 가위 등 가정 내 도구를 사용해 폭력적인 행위를 포함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또한 암벽 등반, 스노우보딩, 급류타기 등 위험한 활동을 묘사할 때 전문가 지도 없이 모방하는 게 위험하다고 경고하도록 했다. 이때 필요한 안전장비를 시각적으로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하고 정확한 안전 절차를 방송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정했다. 

어린이가 소비자인 경우

한편 박유신 서울 석관초 교사는 대담에서 “어린이를 이용해 돈을 벌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며 “어린이를 돈벌이로 보지 말고, 어린이를 위해 사회적으로 비용을 투자해달라”고 말했다. 

▲ 세이브더칠드런·유니세프·글로벌컴팩트가 만든 ‘아동권리와 경영원칙’
▲ 세이브더칠드런·유니세프·글로벌컴팩트가 만든 ‘아동권리와 경영원칙’

 

실제 어린이가 소비자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다루는 기업의 책임을 명시한 규정도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유니세프·글로벌컴팩트 등이 2013년 만든 ‘아동권리와 경영원칙’을 보면 기업이 어린이를 해로운 것에서 차단하는 행위를 넘어 어린이의 이익을 지켜주는 게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담았다. 

기업은 어린이가 사용하거나 소비할 가능성이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국내외 기준을 지키고 정신적·도덕적·육체적 해가 없다는 걸 보장하며 표현의 자유와 정보접근성, 비차별 등 국제 기준을 부합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어린이를 학대·착취하거나 해를 입히는데 사용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의 위험을 예방하고 금지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마케팅 광고에서도 어린이권리에 대해 고려하도록 했는데 마케팅이 차별을 심화해선 안 되며 제품에 대한 정보는 정확하고 완전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부모와 어린이가 정보에 입각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정했는데 이는 모든 방송 매체와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했다. 

또한 어린이들이 조작에 취약하고, 비현실적이거나 성적인 이미지·편견에 더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린이와 함께 일하는 어른들에게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대담에서 “윤가은 감독의 촬영수칙은 미디어현장에서 어린이와 협업하는 어른의 자세를 보여준다”며 다른 미디어 종사자들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 : ‘팩트체크의 역설’ 언론은 왜 어린이에게 신뢰를 잃었을까]

윤 감독은 2019년 영화 ‘우리집’ 시사회에서 촬영수칙을 공개했다. 어린이 배우를 프로 배우로 존중하기, 머리 정리 등 신체 접촉을 할 때 미리 알리기, 어린이 배우 앞에서 욕하지 않고 말과 행동에 모범 보이기, 외모가 아닌 행동에 대해 칭찬하기, 촬영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게 배려하기, 정해진 시간 내에 촬영 마치기, 건강 문제를 인지하면 보호자 등과 공유하기, 어떤 경우에도 혼자 두지 않기 등이다. 

다음은 촬영수칙 전문이다. 

어린이 배우들과 함께하는 성인분들께 드리는 당부의 말

0. ‘우리집’의 현장은 어린이와 성인이 서로를 믿고, 존중하고, 도와주고, 배려하는 것을 제1원칙으로 합니다. 어린이 배우들을 프로 배우로서 존중하며. 성인과 동등한 인격체이자 삶의 주체로서 바라봐주세요. 항상 어린이 배우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시고,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는 동료이자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세요.

1. 어린이 배우들과 신체 접촉을 할 때는 주의해주세요.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거나 손을 잡는 행위 등의 가벼운 접촉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혹시 진행상 필요한 부분들(의상과 헤어 정리, 와이어리스 마스크 착용 등)이 있을 때도 어린이 배우들 본인 혹은 보호자와 스태프에게 미리 공지하고 사전에 동의를 구해주시기를 꼭 부탁드립니다.

2. 어린이 배우들 앞에서는 전반적인 언어 사용과 행동을 신경 써주세요. 자신도 모르게 쓸 수 있는 욕설과 음담패설 등을 자제해주시는 것은 물론, 어린이들의 외모나 신체를 어른의 잣대로 평가하는 단어는 신경 써주시기 바랍니다. 못생겼다, 뚱뚱하다, 키가 작다 같은 부정적인 표현들뿐만 아니라, 얼굴이 부었다. 뾰루지가 났다 같은 묘사들조차 어린이 배우들에게는 큰 영향을 줍니다. 어린이들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고민하더라도,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좋다고 가볍게 넘겨주세요.

3. 어린이 배우들을 칭찬을 할 때는 외적인 부분보다는 배우로서의 태도와 집중력 등에 더욱 초점을 맞춰주세요. 예쁘다, 날씬하다, 말랐다, 귀엽다 같은 외모 칭찬 시에도 어린이들이 집착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셔야 합니다. 또한 여러 배우들이 함께 있을 때에는 서로 비교되어 상처받지 않도록 모두 고루 칭찬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별과 연령대, 주조연의 위치와 상관없이 성실한 태도와 집중력, 건강한 생각 등을 칭찬해 자존감을 높여주세요.

4. 어린이 배우들이 촬영장에서(대기시간과 셋업시간 포함) 혼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어린이들의 경우 종종 프로 배우로 인식되지 않아 성인 스태프들이 되려 잡담을 유도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 본인들도 배우로서 촬영을 준비하고 집중해야 할 때를 놓쳐 산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런 때는 가볍게 주의를 주시고 정신을 흐트러뜨릴 수 있는 대화를 피해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5. 어린이 배우들이 하루 10시간 정도의 촬영 시간만큼은 오직 촬영 자체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대화를 나눌 시에도 자극적인 요소가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주세요. 촬영 중에는 보호자로서 옆에 가만히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배우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사담은 최대한 촬영장 밖에서 나눠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때에도 물론 대화 내용은 꼭 점검해주세요.

6. 어린이 배우들의 건강 문제에 늘 신경 써주세요. 무더운 여름이라 특히 어린이들의 체력과 건강이 염려됩니다. 아주 작은 문제라도 언제든 감독과 피디, 연출 제작부, 혹은 보호자 등께 반드시 공유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어린이들이라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것에 눈치를 많이 보고 큰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생리 현상이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님을 알려주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더욱 신중하게 물어봐주시기 바랍니다.

7. 어린이 배우들의 안전 문제를 각별히 신경 써주세요. 특히 외부 촬영이나 이동 시 정신없을 때 어린이 배우들이 스태프나 보호자 없이 홀로 남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어린이들이 혼자 있는 일이 없어야 하며, 항상 스태프나 보호자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 외부인들의 접근, 각 스태프들과의 사적인 관계 또한 각별히 신경 써주시기 바랍니다.

8. 어린이들은 항상 성인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매 순간 여러분의 모든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주 작은 말과 행동 하나까지도 어린이들에게 아주 훌륭하거나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멋진 거울이 되어주세요. 존중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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