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번아웃 부르는 한국의 아이돌 산업

지난 14일 갑작스럽게 올라온 한 편의 영상이 파죽지세로 인터넷 사방에 퍼져나갔다. 방탄소년단(이하 BTS)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찐 방탄회식’이라는 제목의 약 1시간 길이의 동영상이었다. 영상의 내용은 BTS의 소속사인 ‘하이브’(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확인을 거치고 올라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상당히 날카로운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마음을 터놓고 술을 나누자는 컨셉으로 진행되는 이 영상에는 지난 2013년 데뷔 이후 활동 9년차를 맞이하는 소회가 상당히 직설적으로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영상의 시작부는 흔한 술자리와 비슷했다. 하지만 활동 9년차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왜 회고적인 성격을 가진 앤솔로지 앨범 ‘Proof’를 지난 10일 발매했는지, 다시 근래 들어 BTS가 팬들을 위한 행사나 유튜브 채널에 콘텐츠가 잘 안 올라오는지를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은지에 대한 언급을 하며 본격적인 발언이 시작되었다.

BTS 멤버 RM은 근래 인기를 받았던 곡인 ‘‘Butter’ 같은 곡들이 이전의 히트곡 ‘Dynamite’를 만들 때보다 이제는 우리가 어떤 팀인지도 잘 모르고, 가사를 쓰는 것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음에 바로 이어서 나온 이야기는 상당히 강한 어조의 이야기 였다. “문제는 (…) K-POP도 그렇고 (…) 아이돌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 것 같아요. 계속 뭔가를 찍어야 하고, 계속 뭔가를 해야 하니까 (…) 내가 성장할 시간이 없어요.”

이어서는 다른 멤버들이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 지치고, 고달픈 것을 이야기하는 발언의 연속이었다. “지금 좀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정체성을 이제야 더 찾아가려고 하는 시기인 것 같고.” “제일 어려운 게 가사 쓰는 거야. (할 말이 있어야…) 안 나와. (…) 할 말이 없어 진짜. 내가 느끼고,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걸 얘기해야 되는데 억지로 쥐어 짜내고 있는 거야, 그냥.”

▲
▲BTS (방탄소년단) ‘찐 방탄회식’ 영상 갈무리. 

직접적인 소회 담긴 BTS 영상, K팝 상황 드러내

그 이후의 이야기는 그룹 활동을 시작한지 약 10년차를 맞이하여 ‘활동의 기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언급이었다. 멤버 각자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는 솔로 활동을 각자 시작할 것이며, 그룹으로서의 활동은 잠정적으로 중단할 것이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지만 유튜브에 최소 한 달에 한 번 단체 영상을 올리겠다는 이야기도 함께 언급하며 결코 ‘해체’가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영상은 후반부에서 실제 술자리처럼 회식을 마치며 각자 소회를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흔한 덕담은 아니었다. 멤버 슈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진짜 이 일을 하면서 즐거웠던 순간들이 훨씬 더 많지만, 정말 괴로웠던 순간도 너무 많거든. 나는 그냥 멤버들이 괴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활동을 하면서, 아니 그냥 어떻게 매순간 매활동이 다 즐거울 수 있겠냐고, 정말. 그건 우리 뿐만 아니라 그냥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마찬가지인 거잖아? 근데 어쨌든 우리가 왜 이 일을 시작했냐, 왜 이 일을 선택했냐로 따져보면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거, 그리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시작을 했던 거잖아?”

영상의 여파는 뜨거웠다. 앞서 언급한 대로 완전한 신곡의 모음집은 아니지만, 새 앨범을 낸지 일 주일도 안 되는 상황에서 그룹 활동을 장기간 이어나가면서 힘들었던 점을 꺼내고, 그룹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솔로 활동에 집중하겠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로 확산되었다. 특히 영상 막판에 일부 멤버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며 더욱 영상의 여파는 클 수 밖에 없었다.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증권 시장에서 BTS의 소속사 하이브의 주가는 순식간에 25% 가량 급락했다. 부랴부랴 하이브는 이들은 어디까지나 그룹 활동을 잠시 멈추는 것일 뿐, 해체가 아님을 강하게 언급하며 이번 새 앨범의 활동은 이행할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여전히 하이브에 대한 여론은 곱지 않고, BTS의 오랜 팬들 역시도 아직 충격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적지 않은 인기를 받고 있는 인기 아이돌 그룹은 왜 새 앨범을 발매한지 얼마 안 되어 잠정적인 활동 중단을 선언했을까. 일각에서는 BTS에게 한동안 제기되었던 군 입대 문제와 관련을 지어, 소속사와 합심하여 잠정 활동 중단의 당위성을 만들고 팬들이나 시민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극적인 효과를 만들기 위해 이러한 영상을 기획하였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다른 아이돌 그룹 멤버의 군 입대 상황을 생각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장기간의 휴식기 동안 기다려달라는 식으로 처리하지 이처럼 전격적으로 그룹 자체의 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하며 고뇌를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일은 없었다.

큰 파장을 올라오고, 상당히 직접적인 발언이 담긴 영상이 올라오고 그와 함께 그룹 활동 중단을 선언하게 된 배경은 지금으로는 알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영상에 담긴 피로감은 그저 BTS만의 것이 아니며 아이돌 중심으로 재편된지 10년 가까이가 지난 한국 대중 음악, 다시 말해 K-POP의 상황에서 상당히 비일비재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살피기 위해서는 K-POP 산업이 놓인 어떤 흐름을 따라가야만 한다.

▲BTS의 유튜브 채널에서 활동중단의 이유를 이야기하는 멤버들.
▲BTS의 유튜브 채널에서 활동중단의 이유를 이야기하는 멤버들.

K팝 아이돌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한국의 아이돌은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연습생’ 과정이 반필수로 정착되어 있다. 보통 10대 중반, 빠르면 초등학생의 나이에 미디어에 등장하는 아이돌의 화려한 모습을 보며 아이돌의 꿈을 키운 청소년은 스스로 기획사의 문을 두드려 연습생이 되기를 청한다. 타고난 실력이 있다면 바로 연습생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학원에 다닌다거나 크루 활동, 또는 독학 등으로 실력을 길러나간다. 가끔씩 기획사가 먼저 연습생이 될 것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이는 예나 제나 그렇게 흔한 사례는 아니다.

하지만 ‘연습생’은 어디까지나 ‘연습생’이다. 마치 프로 기사가 되지 못한 ‘연구생’들이 어떻게 준비 없이 사회로 밀려 나가는지를 초반부에 그린 윤태호의 ‘미생’이 그런 것처럼, 또는 연습생들의 데뷔를 목표로 하는 서바이벌로 큰 재미를 보았던 CJ ENM 엠넷의 ‘프로듀스 101’ 시리즈에 드러난 모습처럼 연습생이 정식으로 데뷔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큰 기획사면 이미 연습생들이 무수히 몰려 있기에 자신을 경영진에게 인식시키기가 어렵고, 중소 규모의 기획사라면 자본 등의 부족한 문제로 인해 ‘최대한 돈을 벌 수 있을 때’를 찾으며 데뷔는 한 없이 지연되기 쉽다. 중소 규모의 기획사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프로듀스 101’ 시리즈나 동종 프로그램에 필사적으로 도전했던 것은 이런 이유가 크다. 물론 누구라도 인정할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매우 빠르게 데뷔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경우는 결코 일반적인 상황이라 볼 수 없다.

실력이 좋거나, 시기가 운이 좋게 들어맞거나, 아니면 ‘프로듀스 101’ 류의 서바이벌에 등장해 이름을 알려 데뷔조에 들거나 설령 순위에 들지 못하더라도 필사적인 경쟁을 거쳐 겨우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해서 데뷔를 했다면 상황은 나아질까. 그러나 여기서 앞서 언급했던 ‘기획사의 인지도’ 문제가 발생한다. SM-JYP-YG-FNC, 여기에 BTS의 소속사인 하이브까지 이미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가진 기획사도 있지만 프로듀스 101 시리즈에 등장한 온갖 생소한 이름의 기획사처럼 거의 알려지지 않은 기획사도 부지기수다. 단순히 매장에 음반을 내고, 음원 플랫폼에 신곡을 발표한다고 사람들은 그 노래를 알아주지 않는다. 지속적인 홍보가 뒷받침되고, 음악 방송이나 예능을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에 출연해야 조금이라도 인지도를 쌓을 수 있다.

허나 이젠 사람들이 TV 앞을 떠난지 오래다. 음악방송의 시청률은 이미 1-2%를 왔다갔다 하고 상황도 이미 고착되었다. 유튜브를 통해서 적지 않은 조회수를 거둘 수 있다고 하지만, 대신 ‘이미 잘 알려진’ 가수들의 퍼포먼스만을 선택적으로 보지 일부러 잘 알지도 못하며 팬도 아닌 아이돌의 영상까지 모두 담긴 풀영상을 찾지는 않는다. 비슷하게 음악 방송에서 자신들을 잘 부르지 않자 과감히 유튜브에 집중하는 길을 선택한 BTS와 같은 행보를 갈 수 있겠지만, 유튜브 또한 모든 영상이 고르게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영상 기획을 정말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계속 소외되기도 십상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체를 맞이하지 않고 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비즈니스’를 해야 할 차례이다. 대다수의 기획사는 연습생 때부터 ‘투자’를 했다는 명목으로, 발생한 수입을 곧바로 나누는 대신 투자금 ‘정산’을 한다며 상당수를 가져간다. 최소한의 용돈 정도는 주어지지만, 결코 풍족한 수준은 아니다. 게다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음반을 낸다고 해서 알아서 사주는 것도 아니고, 음악 방송은 이젠 정말 최소한의 ‘활동 증명’ 밖에는 되지 않는다. 다양한 행사에 섭외되어 당장 급한 수입을 메꾸는 것은 물론, 한국 아이돌에게 있어 필수가 된 ‘(공식) 팬클럽’을 만들어 팬으로 하여금 음반을, 그리고 다양한 굿즈를 사도록 만든다.

▲프로듀스101 시즌2의 한 장면.
▲프로듀스101 시즌2의 한 장면.

특히 ‘팬클럽’이 중요하다. 한국 음악 시장이 아이돌의 등장으로 표면적으로는 커졌어도, 여전히 대중적인 향유는 IMF 이후로 쉽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으며 멜론이나 지니뮤직, 유튜브 뮤직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이 음악 향유의 큰 줄기가 되었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은 제한적이다. 좋아하는 대상에게 없는 돈을 아껴가며 지갑을 열 수 있는 ‘팬덤’을 어떻게든 조성해야 한다. 한터차트-가온차트, 또는 멜론이나 지니뮤직, 음원 업체 성적을 종합한 인스티즈 아이차트의 높은 성적을 만들기를 알게 모르게 팬들이 촉구하며 음반은 ‘한 사람이 최대한 많이’, 음원은 소위 ‘총공’(‘총공격’의 줄임말.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음원을 최대한 순위를 높이기 위해 팬덤이 일정 기간 집단적으로 음원을 반복 시청 하는 행위)을 통해 돈과 시간을 계속 소비하기를 바란다. 겸사겸사 음반 구매로 주어지는 팬미팅의 기회 제공도 놓칠 수 없다. 음반이 나오지 않는 시기에도 꾸준히 굿즈를 내놓고, 소극장을 빌려서라도 공연을 열어 팬덤 결집의 기회를 내놓고, 네이버 V LIVE 같은 ‘아이돌과 팬덤 소통의 장’을 꾸준히 만들어서 ‘항상 내 곁에 있는 감각’을 줘야 한다. 심지어는 코로나19가 퍼졌던 상황에서 비대면 방식을 도입해 ‘1:1 영상 통화 팬미팅’을 기획할 정도로 말이다.

운 좋게 데뷔한지 얼마 안 되어 바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거나, 팬덤을 강고하게 구축해 안정적인 지반을 다졌다면 이제 된 것일까. 그러나 비즈니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음반을 내든, 그룹 단위나 개인 단위로 예능이나 드라마, 뮤지컬, 연극 등을 나오며 인지도도 쌓고 돈도 벌어야 활동에 필요한 녹음비, 의상비, 교통비, 인건비 등의 여러 비용들을 마련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은 앞서 말했던 대로 음악 시장의 폭이 넓지 않고, 따라서 공연 시장도 크지 않다. 일찌감치 다른 아이돌이 그랬던 것처럼 해외를 가야 한다. 특히 음악 시장이 세계 3위 안에 들고, 거리도 가까우며, 팬덤의 소비도 더욱 열정적으로 이뤄지는 일본이 선호된다. 아이돌은 이를 위해 일본어, 장차 모를 서구 활동을 위해 영어 등의 다른 언어를 습득해야 한다. 국가 간 장거리 이동의 피로를 감수하며 여러 국가를 오고 다니는 활동은 더욱 막대한 이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루틴이 되었다.

이러면서도 팬덤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BTS의 활동 잠정 중단 선언 영상에 ‘왜 유튜브 채널에 콘텐츠가 잘 올라오지 않는지에 대한 팬의 의문’을 언급했던 것처럼, 인기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소비 대상은 계속 충분히 공급되어야만 한다. 이는 유튜브일 수도 있지만, 앞서 언급한 V LIVE, 팬미팅 및 특별 행사가 될 수도 있지만 하이브의 weverse(위버스), NC소프트의 UNIVERSE(유니버스)처럼 아이돌과 팬, 또는 팬덤의 소통을 위한 SNS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이들 SNS는 그 자체가 상품인 만큼 결코 무료로 쉽게 가입되지 않는다.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사진이나 1:1 개인 메시지 같은 것을 받고 싶다면 더욱 많은 비용이 요구된다. 그만큼의 금원을 낸 팬들은 당연히 ‘지불한 만큼의 대가’를 원하고, 아이돌은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일상적인 전용 SNS 활용으로 데이터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같은 일반-무료 SNS를 소홀히 할 수도 없다. 전용 SNS에서 돈을 벌더라도 결국 이러한 SNS의 전파력은 제한적이며, 좀 더 많은 일반 대중과 전용 SNS에 가입하기 어려운 팬들을 위해 그룹 공식, 멤버 각자의 일반 SNS는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민감하거나 무례한 이야기를 올려서 팬덤을 자극해서도 안 된다. 이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요구되는 예의일 수도 있지만,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이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SNS에 노출시켰다는 이유로 집단 공격을 받은 것처럼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기준이 좌우되기도 한다. 당연히 연애사를 쉽게 외부에 노출시키는 것도 안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속사-아이돌 사이의 관계가 끈끈하면 그나마 조금은 낫겠지만, 인간사에 결코 좋은 일만 있을 수도 없으며 때로는 심각한 계약이나 다른 차원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딱히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구가 마땅치 않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불공정 행위 신고의 차원에서 문제를 접수받고는 있으나, 이미 다른 문화 영역에서도 해당 기관의 처리에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상황이다. 게다가 SM엔터테인먼트의 H.O.T.를 기점으로, 아이돌의 그룹명을 상표로 등록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 되었다. 큰 트러블 없이 서로 헤어지지 않는 이상, 소속사는 자신들을 떠나는 아이돌 그룹에 쉽게 자신들의 상표권 사용을 허락하거나 양도하지 않는다. 한때 큐브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던 ‘비스트’가 계약 만료후 집단으로 소속사를 어라운드어스 엔터테인먼트로 이전하는 상황에서 그룹명이 ‘하이라이트’로 바뀐 것은 이러한 이유였다.

▲BTS - ‘Dynamite’ MV.
▲BTS - ‘Dynamite’ MV.

오랜 부대낌 끝에 소속사와의 관계도 원만히 유지되고, 인기도 제법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팬덤과의 관계도 크게 모나지 않게 관리하면 이제 정말 큰 질곡은 없는 것일까. 하지만 시대를 풍미한 아이돌들이 그러하듯 폭발적인 인기의 규모는 오랜 시간 그대로 유지 되지 않는다. 아무리 높은 인기를 얻었어도 결국 사람과 미디어의 주목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순간은 언젠간 찾아온다. 설령 아이돌 본인이나 팬덤이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인기 같아도, 소속사가 확인할 수 있는 매출의 지표에서는 하락세에 눈이 갈 수 밖엔 없다. 기획사는 꾸준한 수입을 창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습생을 받아, 주기적으로 새로운 아이돌을 데뷔시킨다. 그 사이에서 인기가 이전 같지 않은 아이돌은 점차 활동의 간격이 길어지거나, 끝내 해체의 길을 걷기도 한다.

번아웃 부르는 한국의 아이돌 산업

한국 K-POP의 아이돌 산업은 ‘최대한 팔 수 있는 것’을 어떻게든 상품화하여 판매하는 행태를 보인다. 최대한 젊은, 20대를 넘어서도 곤란한 아동-청소년을 일찌감치 연습생으로 선발하고 이들끼리의 경쟁이나 산업 내부의 경쟁을 거쳐 ‘싹수가 좋은’ 이들에게만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를 준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 모든 것은 상품이며, 심지어는 스포트라이트를 미디어가 주지 않아도 연예 기획사를 스스로 스포트라이트를 만들면서 상품화하고, 발전한 IT 기술은 팬덤에게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더욱 미시적인 수준으로 까지의 소비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팬덤의 경향은 자신이 투자한 아이돌이 자신들의 뜻대로 가기를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고, 소속사는 이를 매출의 극대화를 위해 이를 쉽게 거스르지 않는다. 매사가 감정 노동의 연속인 상황에서, 이번 BTS의 갑작스러운 활동 잠정 중단에서 엿보이는 ‘번아웃’의 모습은 머지 않은 미래가 되기도 쉽다.

물론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어느 나라나 구조나 차원이 다를 뿐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지는 이미지가 곧 상품화되는 산업이다. 엔터테이너가 돌출 행동을 하지 않고, 최대한 팬덤이나 대중들이 원하는 스타일대로 연기나 노래 등의 활동을 하며 발언을 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은 해외라고 해서 다르지 않으며, 일거수일투족이 상품화되기 쉬운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이 해외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것이 있다면 아이돌이 아닌 다른 길이 음악 시장에 그리 없다는 것이 아닐까. 이미 수많은 이들이 반복해서 문제를 제기하지만, 한국 음악 산업에는 아이돌 이외의 영역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물론 힙합, 트로트 같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영역을 형성한 지점도 있지만 결국 힙합에서는 CJ ENM 엠넷 ‘쇼 미 더 머니’가, 트로트에서는 TV조선 ‘미스트롯-미스터트롯’ 시리즈 같이 시간이 지날수록 특정 방송국의 특정 프로그램에, 그것도 신곡이 아니라 철저히 경쟁을 해야 하는 프로그램에 집중되고 있다. 아이돌도 인지도가 낮으면 데뷔하고 나서도 서바이벌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아이돌조차도 아니면 활동 자체가 모두 서바이벌이 되는 셈이다.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울림엔터테인먼트가 본래는 각각 발라드, 힙합-락 중심의 기획사였지만 결국 지난 10년 사이 아이돌 중심의 기획사로 변모한 것은 아이돌 이외의 수익 수단이 한국에 거의 전무함을 보이는 극명한 사례다. 심지어는 가수 싸이가 YG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마치고 세운 연예 기획사 ‘피네이션’이 초기에는 싸이 본인을 비롯해 솔로 아이돌 출신의 ‘현아’와 ‘이던’, 힙합 가수 ‘크러쉬’와 ‘제시’, ‘D.Ark’, ‘페노메코’, ‘스윙스’, ‘헤이즈’ 등을 영입하며 흑인 음악 중심의 활동을 할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2021년부터 SBS를 통해 JYP와 공동으로 아이돌 오디션 ‘LOUD: 라우드’를 하며 아이돌 그룹을 만들었던 것도 이러한 상황에서 무관치 않다.

이미 음악 시장이 아이돌을 기획하여 수익을 얻고, 별도로 오디션을 통해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가수가 되고 싶은 이들이 아이돌이 되어 데뷔하는 경우가 그나마 성공에 가까운 상황에서 모든 것이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는 해외 이상으로 공고하고, 틈새도 없다. 물론 선미, 아이유, 핫펠트 등처럼 가까스로 틈새로 나와 솔로 아티스트로 자기 정체성을 확고하게 가진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결국 이들 역시 아이돌로 먼저 모습을 드러내 이름을 알려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자유롭지 않으며, 탈각에 성공한 경우의 수도 결코 많지 않다.

2000년대에 들어서 심각한 수준의 시장 붕괴를 경험하던 한국 대중 음악은 2007-2008년을 기점으로 아이돌 산업에 사실상 ‘몰빵’하며 효율적인 수익을 만드는 것에 일단은 성공했다. 팬덤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전략도 습득했다. 그렇게 일본은 물론 미국, 유럽 등지에도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고도 있다. 그렇게 시장 전체의 크기는 키웠다. 그러나 그 산업 내부에서 개인의 모든 부분과 시간이 상품이 되야만 하는 아이돌은, 직간접적으로 소비를 요구받으며 자신이 소비한 만큼 아이돌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고 싶어하는 팬덤은, 아이돌이 아닌 그 이외의 생태계를 고사시킨 한국 대중 음악계와 이를 방치하고 오히려 동조한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책은 얼마나 건강한가.

이미 한국 음악 산업 그 자체가 된 아이돌 시스템을 완벽하게 배격할 수는 이젠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종 다양성과 효율적 매출 일변도의 노선을 탈각하는 움직임은 분명 필요하다. 올해 2월에 출간한 여러 연구자들이 아이돌에 대해서 공동으로 연구한 내용을 모아서 출간된 ‘페미돌로지’(류진희 백문임 허윤 기획, 빨간소금)에서 김수아는 팬덤이 아이돌 시스템의 중요한 행위자인 상황에서 산업에 저항하거나 바라는대로 공모하지 않는 형태로 소비 방식을 재구축할 필요가 있음을 말했다. 같은 책에서 강은교는 아이돌 산업에서 일반화된 ‘아이돌 멤버의 손글씨 사과문’을 일례로 언급하며, 아이돌과 팬덤 모두를 소진하는 방식으로 유지되는 현대의 아이돌 중심 산업을 경계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장시간의 과중한 노동이 참혹한 산재 사고를 유발하고, 서비스 산업의 감정 노동은 개인의 정신을 쉽게 갉아먹는다. 제대로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이 아동-청소년 시기부터 개인을 끊임없이 소진하는 산업은 얼마나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나. 그리고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 BTS의 잠정 휴식 선언은 단순한 해프닝이나 그저 위로하는 것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이미 한참 전에 울렸지만 많은 이들이 외면한 경보음이 더욱 굉음을 내며 울린 것이다. 이 경보도 그냥 무시한다면, 이 강고하지만 허약한 모래성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이 쉽게 부서지지 않을까.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관련기사 더보기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