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는 교문에서 본관까지 길이 곧다. 해마다 6월이 오면 긴 길섶 좌우에 6월대항쟁의 불꽃 이한열을 추모하는 펼침막들이 붙는다. 6월20일에 다시 찾은 교내도 그랬다. 총학생회는 “민주화를 위한 당신의 희생,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으리라”를 내걸었다. 총동아리연합회는 “흐른 시간이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대의 운동화에 흐른 피와 땀이 세상을 바꾸었다”고 썼다. 이한열이 숨을 거둔 의과대학은 “다시 태어나면 그대를 업고, 그대가 꿈꿔오며 목숨바쳐 색칠한 세상 보여주리”라는 글을 펼쳤다.

젊은 벗들의 추모 글에 가슴이 애잔하다. 대견스럽기도 하다. 다만 의문이 남는다. 과연 우리는 ‘이한열이 꿈꿔오며 목숨 바친 세상’에 살고 있는가. 의대 현수막 옆에는 노동인들이 손수 만든 펼침막이 붙어있다. “저임금에 지쳐버린 우리는 노동자다.” 교정을 살피면 하나둘이 아니다. “어학당 등록금 수입 11% 증가, 어학당 강사료 500원 인상?! 장난합니까”라는 저임 강사들의 절망도 보인다. 학생회관에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걸개그림이 붙어 있던 6월 초순에도 회관 들머리에는 “동지를 믿고 나를 믿고 집단 교섭 승리하자”, “원청 학교가 생활임금 보장하라”는 펼침막이 달렸다. 땡볕에서 청소하는 노동인들이 건강을 지킬 샤워기를 마련해달라는 절규도 지난 3월말부터 걸렸다.

▲ 이한열 추모 걸개그림이 걸려있는 연세대 학생회관. 그 아래에 청소‧경비 노동인들의 호소가 펼침막으로 걸려 있다. 사진=손석춘 제공
▲ 이한열 추모 걸개그림이 걸려있는 연세대 학생회관. 그 아래에 청소‧경비 노동인들의 호소가 펼침막으로 걸려 있다. 사진=손석춘 제공

의문은 꼬리를 문다. 대학생들은 저 펼침막을 보면서 ‘세상이 바뀌었다’는 총동아리연합회와 의과대 주장을 어떻게 읽을까. 과연 총학생회 다짐처럼 민주화를 위한 이한열의 희생은 그의 후배들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을까. 그렇다면 어떤가, 연대 학생이 집회로 수업권을 침해받았다며 청소·경비 노동인들을 고소·고발한 해괴한 사건은, 몇 달 째 이어온 노동인들의 고통어린 호소엔 줄창 모르쇠를 놓더니 학생 하나가 고발하고 윤석열 정부의 경찰이 조사에 나서자 대뜸 보도하는 언론은.

우리는 그 ‘잘못 끼운 첫 단추’를 35년 전 그 날에서 찾을 수 있다. 이한열의 몸이 채 식지 않았을 때, 노태우는 ‘6·29선언’이라는 기만극을 벌였다. 그 시점에 어떤 언론도 그것이 기만임을 기사화하지 않았지만, 권력의 속성을 꿰뚫은 이라면 충분히 헤아릴 행태였다. 실제 ‘6·29는 속이구’라는 말이 당시 퍼져갔다. 모든 언론이 노태우가 전두환을 치받으며 직선제 수용을 결단했다고 대서특필했다. 쿠데타 주모자 노태우는 맞장구 언론을 통해 갑자기 민주화의 주역이 되었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진실은 대선 뒤 확인됐다. 노태우가 독자적으로 결단한 듯이 발표한 것은 전두환의 정권 재창출 기획이었다. 6·29선언에 들어있는 ‘김대중 사면’ 또한 그 전술의 하나였다. 사면하면 틀림없이 출마할 터이고 김영삼과 단일화 못하리라 내다봤다.

여기서 물음을 던질만하다. 전두환 머리에서 어떻게 그런 전략이 나왔을까. 답이 나와 있다. 6·29선언문을 서울대 정치학 교수들이 참여해 최종 완성했다는 증언이 그것이다. 그 ‘속이구 교수들’ 가운데는 지금도 자신이 마치 자유민주주의의 화신인양 행세하는 자도 있다. 그 ‘석학’들에게 들려준다. “이 땅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 한 발짝씩 온 것이다.”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님이 남긴 말이다. 보라. 서울대 정치학 교수들보다 민중의 한 사람이던 어머니의 민주주의관이 훨씬 튼실하지 않은가.

▲ 지난해 6월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이한열동산에서 열린 제34주기 이한열 추모식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인사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해 6월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이한열동산에서 열린 제34주기 이한열 추모식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인사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권력의 속이구에 맞장구 친 언론은 35년이 흐른 지금도 여론 형성에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 언론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과소평가는 위험하다. 그렇다면 정치는 어떨까. 자유민주주의를 부르대는 윤석열 정부가 맞장구 언론에 속지 않기를, 굴욕적인 대미 외교를 웃으며 펼친 이명박이나 노동개악을 개혁으로 박박 우겨댄 박근혜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면 환상일까. 그 회의를 끝내 떨치지 못하면서도 꾹꾹 쓴다. 민중과 이 나라를 위하여, 아주 작게는 자연인 윤석열을 위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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