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한국언론학회, ‘좋은 기사의 조건’ 세미나
“언론, 독자들이 어떤 유형의 기사 보는지 신경 써야”
한국일보 기자 “발제부터 노력하고 데스크도 실험 독려해야”
동아일보 기자 “내러티브 형식 소송 가능성, 기자들 교육 필요해”

“(연구에 참여한) 독자들이 이런 유형의 기사를 본다는 걸 공급자들이 신경 써서 기사를 쓸 필요가 있다. 뻔한 기사는 안 된다. 젊은 독자들은 다양성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 뻔한 기사, 프레임에 갇힌 기사는 좋은 기사가 아닌 천대 받는 기사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종 또는 단독 기사를 보고 좋은 기사라는 평가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특종 단독 기사도 좋은 기사지만, 더 잘 써야 한다. 지금처럼 기계적으로 쓰면 독자들의 칭찬 못 받는다. 그런 기사는 언론계에서만 칭찬받고 만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20일 오후 한국언론학회 저널리즘특별위원회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좋은 기사의 조건’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는 박재영 고려대 교수와 안수찬 세명대저널리즘스쿨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20일 오후 한국언론학회 저널리즘특별위원회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좋은 기사의 조건’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한국언론학회.
▲20일 오후 한국언론학회 저널리즘특별위원회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좋은 기사의 조건’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한국언론학회.

독자의 기준에서 좋은 기사는 △기사 구조·문장 형식 등에서 몰입하게 만드는 기사 △기자의 열정 또는 노력이 확인되는 취재 방법에 바탕을 둔 기사 △다양한 정보와 관점이 제공되는 기사 △이슈나 사안에 대한 이해와 능동적 사고를 높여주는 기사 등으로 요약된다.

먼저 독자들은 ’흥미로운 주제‘의 기사들에 반응을 보였다. ‘[기후변화의 증인들] ①일상 속 기후변화 ‘피부’로 증언한다’ (2020년 6월22일 경향신문) ‘사라지는 목욕탕, 원정 떠나는 사람들… “아픈 다리 원없이 담가봤으면”’ (2022년 2월12일 조선일보) ‘“걷다보면 길이 보일까요”… 마포대교서 24시간 국민일보 기자가 만난 사람들’ (2015년 12월11일 국민일보)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2월12일자 조선일보 기획 3면.
▲지난 2월12일자 조선일보 기획 3면.

소개된 조선일보 기사는 목욕탕이 줄어드는 세태를 말하려, 기자가 직접 시골에 사는 주민들을 만났다. 기사 속에서 기자가 찾은 동네 주민들은 추운 겨울 주거 시설이 열악해 온수가 나오지 않거나, 실외나 다름없는 개방된 공간에서 씻어야 하는 사람들로 동네 목욕탕이 꼭 필요한 이들이다. 2020년엔 코로나19까지 덮쳐 동네 목욕탕이 설 자리를 잃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목욕탕 수는 2000년 대비 35.3%가량 줄었다. 국민일보 기사는 기자가 종일 마포대교를 걸으면서 만난 재수생, 대학생, 전역한 군인, 여의도 빌딩 청소원, 계약직 콜센터 직원 등을 만나 어떤 생각을 갖는지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이 기사들에 대해 독자들은 “거대담론으로 여겨질 수 있는 주제를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냈다. 주제를 구현하는 방식에서 탁월함이 돋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런 일까지 벌어진다는 생각이 가장 처음 들었다.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 미처 관심이 닿지 않았던 부분에 관심을 두게 도와줬다” “이런 내용 나올 거라 생각한 게 안 나오고 다른 내용 나와서 좋았다. 예상치 않은 길로 갈 때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범한 것이나 자주 접하는, 반복적 주제라도 새로운 시선에서 본 기사를 보면, 좋은 주제를 다룬 기사로 느껴진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또한 독자들은 ‘몰입할 수 있는 전개’의 기사들에도 호평했다. ‘“웃고 나가더니 왜 이렇게 돌아왔니… 추웠지? 무서웠지? 엄마한테 와”’(2014년 4월21일 조선일보) ‘‘미아리텍사스’ 약사 이미선씨 “언니들 얘기 들어주는 것, 그게 치유”’(2019년 9월7일 경향신문) 등의 기사다. 경향신문 기사는 성매매업소 밀집지역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이미선씨(58)를 인터뷰해 그의 삶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에 대한 화두를 담게 됐다.

▲2019년 9월7일자 경향신문 8면.
▲2019년 9월7일자 경향신문 8면.
▲2019년 9월7일자 9면.
▲2019년 9월7일자 9면.

이 기사들에 대해 “공장에서 만드는 것처럼 기사 많이 쓰고 빠르게 쓰는 경우 많은데 이렇게 열정 담아 구성하면 티가 난다” “다른 이들이 못 본 영역을 썼으니 현실과 더 가깝고 좋은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렇게까지 돌아다니 실제 들은 얘기라고 표현할 수 있으면 그건 기사 신뢰감을 형성할 수 있다” “얼마나 애정을 갖고 토픽에 대해 썼는지 한 문단만 봐도 알 수 있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성실한 취재물’에 대해서도 반응을 보였다. ‘숨 멈춰야 해방되는 곳… 기자가 뛰어든 요양원은 ‘감옥’이었다’(2019년 5월13일 한겨레) ‘이 비상구만 보였더라면… 여탕 20명 앗아간 ‘가려진 비상구’’(2017년 12월23일 동아일보) 등이다. 이들 기사에는 “직접 겪은 일을 세세히 묘사해 몰입감을 높이며 통계 자료를 넣어 객관적 증거까지 보충했다” “현장 증인들의 살아있는 목소리는 보고서상의 객관화된 수치보다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이 외에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담겼을 때 독자들은 기사를 더 신뢰했다. ‘사기당한 ‘MB 자원 외교’… “석유보다 물 더 퍼내” 뒷돈과 조작의 신화’(2015년 1월18일 한겨레)기사가 대표적이다. 이 기사는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탐사기획 시리즈 기사의 첫 번째 보도였다. 2009년 2월 한국석유공사가 콜롬비아 석유공사와 함께 사들인 페루의 석유회사가 인수합병했는데, 너무 비싸게 샀다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겨레는 남미에 기반을 둔 독립언론 기자,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3급 비밀문서, 페루 대학교의 교수 등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 기사에는 ‘취재원과 취재 자료가 다양하고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신뢰할 수 있는 뉴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5년 1월19일자 한겨레 1면.
▲2015년 1월19일자 한겨레 1면.

학계는 2019년부터 최근까지의 연구에서 △직접취재 않기 △베껴쓰기 △사실검증 생략 △형식적 객관주의 △전문직주의 붕괴 등으로 ‘취재보도 역량이 악화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안수찬 세명대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오히려 기자들은 탐사성과 정확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신속성과 흥미성을 중시하는 기자 인식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심층 취재해 정확하게 보도하려는 기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학계에서 좋은 기사들을 소개한 가운데, 토론자로 참석한 현업 기자들은 좋은 기사가 나오려면 필요한 현장의 조건들에 대해 말했다.

2020년 ‘증발’ 시리즈를 보도한 이호재 동아일보 기자는 “기사를 쓸 때 새로운 형식상의 도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내러티브로 쓰면 주관적 시각이 담길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소송의 위험성이 생긴다”며 “증발 시리즈 기사를 쓸 때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내러티브로 쓴다는 건 그 사람의 마음을 멘트가 아니라 글로 풀어쓰는 건데, 이 사람 마음을 기자가 100%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호재 기자는 이어 “소송을 막으려면 기사를 미리 보여줘야 하나? 기사를 미리 보여주는 게 취재 보도 윤리에 적합한가? 고민이 됐다”며 “당시 저는 사실 기사를 미리 다 보여줬다. 기사를 쓰며 취재원에 치중되긴 싫어 검사와 판사 등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혹시 너무 과하게 주관성을 드러내 소송의 위험성이 두려웠던 부분이 있었다”며 “앞으로의 연구 진행에선 이런 기사가 좋다고 소개하며 이런 기사를 보도할 땐 이런 부분들을 기자들이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는 “뉴스룸에서 기사의 유형을 말하며 ‘어젠다 세팅을 강화해야 한다’ ‘단독을 발굴해야 한다’ 등 여러 이야기를 한다. 종합지의 경우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언론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는 이어 “많은 저연차 기자들이 실험할 수 있는 뉴스룸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관대한 뉴스룸의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발제 단계에서부터 기자 개인이 그런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데스크와 관리자도 그런 실험을 독려해 줘야 한다”며 “처음엔 의욕이 넘치지만, 여러 번 꺾이는 경험을 하다 보면 모든 기자가 동질화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도 어떻게 다르게 썼냐를 겨루는 게 아니라 다 비슷하게 쓰는 건 비극이다. 여의도나 서초동에서만 팔리는 기사가 아닌 벽이 없는 기사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입사 1~5년차 기자 10~15명이 지난해 7월부터 17차례 만나 좋은 기사라고 판단되는 기사 213편 중 40편을 선별하고, 그중 연구자들이 20편을 선별한 기사 중 언론학 전공 학부생 27명과 대학원생 26명 총 53명이 기사를 평가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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