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사 번역저작물 무단전재한 EBS 수능교재 집필진, 손배 판결 났지만 EBS 홈페이지엔 여전히 활동
EBS 측 “고의성 입증되지 않아, 향후 계획 검토 중”…재판부 “EBS·집필진 모두의 과실 인정”

EBS 수능교재를 만들면서 한 고등학교 역사 교사의 저작물을 무단전재해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집필진이 여전히 EBS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BS 측은 무단전재의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재판부가 집필진들이 역사 교사였던 점 등을 고려해 저작권 침해의 과실을 인정했고 손해배상을 판결했는데 문제가 없던 것처럼 EBS에서 활동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EBS에서 펴낸 2010년 수능특강 세계사 교재에 세계사 교사 A씨의 번역저작물을 무단전재했다며 EBS와 수능교재 집필진 5명이 A씨에게 손해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집필진 중 한명인 B강사는 7월 현재에도 EBS 역사과목 강사로 이름을 올리고 EBS 수강생들이 B강사의 강의를 듣고 있다. 교육계에서 EBS 강사라는 이력은 그 자체로 유력한 ‘스펙’으로 작용하고 있고, 특히 B강사의 경우 대중적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법원에서 저작권 관련 불법행위로 판단이 났는데도 EBS가 감싸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 EBS '교사 저작물' 무단인용 인정 판결 어떻게 나왔나]

▲ EBSi 홈페이지 첫 화면 갈무리.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 EBSi 홈페이지 첫 화면 갈무리.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EBS 측은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소송에서 EBS가 패소한 것 관련해 EBS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A교사의 저작물을)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라 교과서와 모의고사 기출문제 등을(인용된 부분을 재인용) 간접 인용한 것에 따라 저작권 침해의 고의성은 인정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항소 여부에 대해선 “향후 계획은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EBS와 함께 패소한 EBS 수능교재 집필진 중에 여전히 B강사가 EBS 강사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EBS 관계자는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아 선생님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건 어렵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B강사를 두둔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사건 판결문을 보면 집필진들의 문제는 명확하다. 재판부는 저작권 침해의 경우 저작물을 만들 때 기존 저작물을 의거해(근거로 해) 작성했다는 사실이 직접 인정되지 않더라도 실질적 유사성 등 간접사실이 인정돼도 기존 저작물에 의거해 작성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교사 A씨의 서적을 EBS 집필진들이 직접 보고 인용하지 않았더라도 사실상 내용이 유사하면 인용한 것으로 보고 문제삼겠다는 뜻이다. 즉 ‘고의성’만 쟁점이 아니다.

재판부는 “교사 A씨의 교재는 (2000년) 발행 이후 EBS 수능교재를 발행하기까지 10년 가까이 각종 세계사 교과서에 그 내용이 상당수 인용되고 특히 수능 및 모의고사 출제 지문으로도 자주 활용돼 왔으므로 역사 과목 교사들이던 집필진들으로서는 EBS 교재 집필 당시 이러한 양질의 사료번역물 자료인 A씨 교재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한 ‘고의·과실 여부’에 대해서도 판단했다. 판결문을 보면 누구든지 타인의 저작물을 그 타인의 이용허락 없이 함부로 이용해 타인의 저작물을 침해하지 않을 ‘주의의무’가 있다. 재판부는 “모든 사정을 종합해보면 EBS 교재를 집필·발행하는 과정에서 A씨의 저작권을 침해한 데 대한 피고(EBS와 집필진들) 모두의 과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재를 집필하는 이상 당연히 저작자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용허락을 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며 “당시 교과서 출판사나 수능 및 모의고사를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을 통해 자료 인용 출처를 확인하는 것이 사회 관념상 전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했다고 보이지 않으므로 (중략) 정당한 면책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집필은 교사 출신의 집필진들이 했더라도 책을 펴낸 곳은 EBS였다. EBS에 대해 재판부는 “출판자 역시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한 책을 함부로 출판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다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며 “출판자의 책임이 당연히 면책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 교사 A씨와 EBS 측의 또 다른 저작권 소송이 진행 중이다. 사진=pixabay
▲ 교사 A씨와 EBS 측의 또 다른 저작권 소송이 진행 중이다. 사진=pixabay

교사 A씨는 이번 재판에서 법리적으로 이겼지만 손해배상액 책정에선 EBS 측 입장이 주로 반영됐다고 주장하며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재판은 2010년 수능교재 하나에 대한 소송으로 상대적으로 간단했다. A씨가 2008~2017년 EBS 교재와 2011~2018년 EBS 동영상 강의에 대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앞서 2018년 12월에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 EBS와 집필진들의 추가 불법행위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 미디어오늘은 여러분의 제보를 소중히 생각합니다. news@mediatoday.co.kr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