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 연출·극적 상황에 노출된 아동 출연자
사생활과 방송의 경계에 있는 관찰 예능…보호 법제 미비
근로자성 인정·샤프롱 제도 도입·가이드라인 실효성 강화 주문 나와

#1. TV조선의 이혼 예능 ‘우리 이혼했어요2’에 출연 중인 지연수, 일라이의 아들은 아빠와 헤어지기 싫다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빌었다. TV조선은 지난 4월 방송에서 이 장면을 편집 없이 고스란히 내보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5월 공식 블로그에서 “미성년자 아이의 그런 행동과 발언이 고스란히 방송된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 가수 개리는 2020년 3월 KBS 아동 관찰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만 2세에 불과한 아들을 옆에 두고 복싱 경기를 치렀다. 개리는 아들 앞에서 쓰러지는 연기를 했고, 하오는 “아빠 일어나, (우리 아빠)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연출된 장면이었지만 아동의 정서적 발달·성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행정지도 권고를 결정했다.

▲2020년 3월 방송된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사진=KBS 방송 화면 갈무리)
▲2020년 3월 방송된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사진=KBS 방송 화면 갈무리)

실제 생활을 기반으로 하는 관찰 예능(리얼리티 예능)에 출연 중인 아동·청소년이 자극적 상황에 노출되고 있다. 제작진이 시청률과 화제성을 위해 평범하지 않은 장면을 촬영하다 보면, 아동·청소년 출연자는 자극적으로 연출되거나 극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관찰 예능에 출연하는 아동을 보호할 방안을 어떻게 논의하고 마련해야 할까.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1일 발간한 한국방송학보 36권 4호에 게재한 논문 ‘리얼리티 예능의 아동 출연자 보호를 위한 법제 연구’에서 “(관찰 예능에 출연하는 아동의) 사생활과 초상권은 부모와 방송사 제작진에 의해 결정된다. 출연 이후 아동들은 세간의 평가와 관심을 감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체성 미흡한 아동 방송출연자 보호 법제…"근로자성 부여해야"

현행 법규는 아동 출연자를 보호하기에 구체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하 대중문화산업법)은 사업자가 아동 출연자와 계약을 체결할 때 학습권·건강권·인격권·수면권·휴식권·자유선택권 등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산업법은 각종 권리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가이드라인이나 표준계약서를 활용하더라도 실효성 있는 아동 권리 보장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동의 선택권이 제약되는 문제도 있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매니저는 8일 “제작진이 아동의 방송출연 의사를 확인했다고 해도 제작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생활 노출이 일어날 수 있다”며 “(현재 방송 구조가) 편집 과정에서 아동의 의사가 고려될 수 있는 체계는 아닌 것 같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동이 희화화되는 장면이 발견됐고, 방송사는 시청률 측면에서도 자유롭지 않다”라고 진단했다.

윤성옥 경기대 교수도 논문을 통해 “부모 동의만으로 아동의 사생활, 초상권을 허락한 것으로 볼 수 있을지도 문제이지만 만약 아동이 성인이 되었을 때 권리를 주장하고 싶어도 온전히 원상태로 회복불가능하다는 한계점”을 짚었다.

윤 교수는 이런 한계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관찰 예능에 출연 중인 아동을 근로자로 인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리얼리티 예능에서 아동 출연자는 ‘주어진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 행동한다’는 이유로 노동권 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재했다”며 “리얼리티 예능 특성은 성인 출연자나 아동 출연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리얼리티 예능의 아동 출연자에게 근로자성을 적극적으로 부여하고 법률로써 노동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윤 교수는 실효성 강화 차원에서 ‘근로계약서 승인제’ 도입을 제안했다. 윤 교수는 “아동의 경우 청소년과 달리 직접 판단하고 계약하기 어렵다”며 “법원이나 주무 부처의 근로계약서 승인제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사전승인제가 부담된다면 등록제를 도입해 시정권고를 내리는 형태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Gettyimages

방송사 재량에 맡겨진 아동 출연자 보호…핵심은 실행력 담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차원에서는 가이드라인 중심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지난해 1월 시행된 ‘방송출연 아동·청소년의 권익보호를 위한 표준제작 가이드라인’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방송사·제작사가 아동·청소년 출연자와 보호자에게 방송 기획 의도, 촬영형식 등을 미리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도록 하고 있다. 제작과정에서 적정 촬영 시간, 신체적 정신적 건강, 학습권, 휴식권 등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도 명시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방통위가 ‘아동 출연자 권익보호를 위한 표준제작 가이드라인 활용 적정성 평가’를 재허가·재승인 평가 항목으로 넣었다. 이에 따라 각 방송사는 아동·청소년 권익 보장과 관련된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방통위 관계자는 9일 통화에서 “(아동·청소년 관련 항목은) 재허가·재승인 때 10점이 배점되는데 이는 굉장히 큰 점수”라며 “방송사가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만 해놓고 활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담당부서를 지정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방통위는 제작진이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는지는 직접 점검하지 않는다. 아동 출연자 권리 보호는 오롯이 방송사에 맡겨져 있다.

김기홍 돌꽃노동법률사무소 공인노무사는 가이드라인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노무사는 9일 통화에서 “(가이드라인은) 사실상 권고 사항이고 강제성이 없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가이드라인 취지를 살리기 위해 규제를 통해 (실행력을) 강화하는 빙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제작 현장에서 아동 권리침해 감시하는 ‘샤프롱’ 도입해야”

방송 제작현장에 아동 권리침해 여부를 확인하는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영국 등의 공연계에는 아역 배우의 관리를 전담하는 스태프 ‘샤프롱’(Chaperon) 배치가 의무화돼있다.

국내에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대중문화예술 현장에 청소년인권보호관을 배치하도록 하는 ‘대중문화산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청소년 예술인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감독하기 위해 현장에 보호관을 배치할 수 있고, 현장 조사를 지시할 수 있다.

고우현 매니저는 “아동 출연자 노동환경이 어떠한지 감시하는 담당자가 현장에 파견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윤성옥 교수 또한 “아동의 정서나 감정 보호를 위해 제작 현장에 교육전문가 및 심리상담가를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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