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아나운서로 복귀하기 위해 회사와 싸우던 동안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전태일재단 같은 노동계부터, 촛불문화재 무대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으던 박진 인권활동가, 법률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연대해 준 직장갑질119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그리고 애정 어린 마음으로 MBC를 시청하는 시민들도 힘을 모았다. 이들은 아나운서들에게 연대한 건, “언론사 MBC가 그래선 안 된다”는 이유였다. 

(관련 칼럼 : [이선영의 시선] ‘나는, 계약직 아나운서’)

그 중 A는 언론사 지망생인 대학생이었다. 아나운서들의 가처분 소송 때 그는 A4 용지 두 장 분량의 탄원서를 제출하며 연대했다. 복귀 후에도 그는 우리의 방송 활동을 응원하는 마음을 SNS로 전하며 종종 자신의 소식을 전해왔는데, 그러다 1년 전 “한 지역 신문 기자가 되었다”고 글을 올렸다. 안 그래도 축하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메시지가 왔다. 정규직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최종 합격 통보를 받자 6개월 계약직(수습 기간) 후 전환을 통보받았다며, 뭘 준비해야 하느냐고.

나는 그가 앞으로 있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나름 내가 회사 밖에 있었던 2년 동안 알게 된 것들을 이야기 해주었다. 부디 그가 내 조언을 따를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그의 피드에 회사의 부당한 결정에 대한 실의가 담긴 글이 올라왔다가 지워졌다. 그는 첫 직장에 대한 대응은 접어두고 다시 언론사 입사를 준비 중이다. A는 유달리 운이 없어 ‘나쁜 언론사’에 채용됐던 걸까.

지난달 미디어오늘 기사에 비슷한 일이 실렸다. 신입 기자 최종 면접에서 지원자를 전부 떨어뜨려 놓고, 1년 계약직으로라도 기자를 해보겠냐는 연락을 돌린 한 언론사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해당 언론사는 마땅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도 않았고, 내부 고발 당사자들에 대한 후속 취재도 어렵다고 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이 곳뿐일 리 없다. 포털에 ‘계약직 기자’를 입력해 넣으면 익히 보고 들은 대형 언론사부터 소규모 인터넷 언론사까지 숱한 채용 공고들이 뜬다. 부당함에 대한 항의를 포기한 채 다시 언론사 채용의 문을 두드리는 A는, 아마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8월8일, MBC 아침뉴스 <뉴스투데이> 팀에서 9년간 일하다 해고됐던 작가 두 명이 2년이 넘는 법정 싸움 끝에 복직했다. 그러나 MBC는 이들의 첫 출근 날, 정규직 복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승소하면 꽃길일거란 희망은 이들에게 애초에 없었다. 작가들이 투쟁하는 동안, 언론계는 알게 모르게 보도국 작가 수를 줄여버렸다. 나아지자고 한 일이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키자 방송 작가 권리 투쟁에 앞섰던 한 작가는 아예 업을 그만두고 노무사 공부를 시작했다. 얻을 것 없는 싸움 대신 차라리 새롭게 다른 문을 두드리는 A처럼.

(관련 기사 : 복직한 방송작가에 MBC “정규직은 안 돼”)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전태일재단, 한국여성노동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MBC 보도국에서 일하다 해고된 방송작가들의 복직 첫날인 지난 8월8일 서울 상암동 MB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에 정규직 채용과 사과 등을 요구했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전태일재단, 한국여성노동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MBC 보도국에서 일하다 해고된 방송작가들의 복직 첫날인 지난 8월8일 서울 상암동 MB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에 정규직 채용과 사과 등을 요구했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내가 겪었던 불행 속에 여전히 누군가 끊임없이 내던져지고 있다. 특히, 타인의 권리를 위해 주저 없이 연대하며 곧은 목소리를 내던 이들조차 결국 같은 불행 앞에 속수무책인 모습을 볼 때마다 앉은 자리가 따갑다. 나는 운이 좋았다. 대다수는 싸움 자체를 포기하거나, 싸움 끝 온전한 화해가 요원한 채 바뀌는 것 없는 현실을 마주한다.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문제는 오래도록 우리 사회 노사가 접점을 찾지 못한 문제다. 그 문제를 때마다 언론사가 꼬집어 왔다. 모든 노동자가 정규직일 순 없다고 해도, 비정규직이기에 처하는 부당한 상황만은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 자본 논리로 비정규직 채용을 일삼으며, 불안정한 신분을 이용해 어떤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그동안 언론이 일관되게 꾸짖어 온 내용이다.

정권에 따라 노동 정책 기조가 바뀌고, 경제 상황이 급변해 고용 환경이 점점 더 삭막해져도 적어도 언론은 고독히 흙탕물을 털어내며 깨끗하고자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언론도 하지 않는 일을 세상이 따갑게 들어 줄 리 없으니까 말이다.

▲이선영 MBC 아나운서.
▲이선영 MBC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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