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비디오에 ‘스토리’ 접목…열악한 촬영환경에 직접 메이크업 담당도
성과 미진한 한국식 강요와 차별화 이룬 ‘현지화’ 전략, 성공으로 이어져

BTS의 ‘Heartbeat’, 멜로망스의 ‘욕심’ 등 뮤직비디오(뮤비)를 연출했던 정주 감독이 베트남에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다. 유튜브 누적 조회수가 1억2000만 회를 넘겼고, 지난 6월에는 그가 연출한 2곡이 나란히 현지 차트 1위를 겨뤘다. 정 감독은 뮤비에 스토리를 담는 특성과, 베트남 현지 스태프 고용 등 ‘현지화’ 전략이 주요했다고 말한다. 정주 감독을 24일 서울 한남동에서 만났다. 

▲ 24일 한남동에서 정주 감독을 만났다. 사진=박재령 기자
▲ 24일 한남동에서 정주 감독을 만났다. 사진=박재령 기자

정주 감독은 2019년 에이미(AMEE)와 비레이(B Ray)가 부른 ‘오빠 집이 어디에요(ANH NHÀ Ở ĐÂU THẾ)’로 베트남 활동을 시작했다. 곡의 뮤비는 30일 기준 유튜브 조회수 1억 2000만 회를 기록 중이다. ‘웹티비아시아어워즈 뮤직/광고 비디오 부문(WEBTV ASIA AWARDS)’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그레이디(GREY D), 에이미와 작업한 곡들은 지난 6월 각각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1위를 달성했다. 두 곡의 누적 뮤비 조회수는 도합 3000만 회가 넘는다. 

영화광인 뮤비 감독 … 스토리 힘으로 베트남 러브콜 불러

이 뮤비들은 한 눈에 들어오는 스토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오빠 집이 어디예요’ 뮤비는 여성의 적극적 구애와, 어색해 하던 남성의 심리 변화에서 연인이 되기까지의 맥락을 한 편의 로맨스 영화처럼 그렸다. 그레이디의 ‘사람을 변화시키는 몇 마디 말들(vaicaunoicokhiennguoithaydoi)’는 연인의 행복했던 순간과 멀어지는 장면이 교차하며 흐른다. 춤, 풍경 등 그 자체로 시각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뮤비들과 구별되는 것이다. 

▲ 30일 기준 조회수가 1억회가 넘은 에이미 뮤직비디오. 사진=유튜브 갈무리
▲ 30일 기준 조회수가 1억회가 넘은 에이미 뮤직비디오. 사진=유튜브 갈무리

정 감독은 자신을 ‘영화광’으로 소개했다. 이전에 한국에서 작업했던 뮤비들도 영화 같은 스토리가 장기였다. 노리플라이의 ‘집을 향하던 길에’는 영화 ‘이터널선샤인’을, 딕펑스의 ‘스페셜’은 영화 ‘ET’를 떠올리며 작업했다. 서사에 힘을 싣기 위해 안재현, 김재욱 등  배우를 섭외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BTS의 ‘Heartbeat’ 역시 ‘BTS 월드’라는 게임 OST로 게임에 필요한 멤버별 스토리가 가미돼 있다. 

이런 정 감독의 장점은 스토리 중심 뮤직비디오가 인기를 얻는 추세였던 베트남에서의 러브콜로 이어졌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의 시작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 감독은 “기본적인 것이 아예 구성돼 있지 않아 스토리를 넣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옷의 스타일, 메이크업, 영상 편집 방식 등이 너무 초기 단계라 퀄리티가 없었다”고 전했다. 

결국 하나하나 기초부터 쌓아 올렸다. 직접 메이크업팀을 교육하고 본인의 옷, 왁스를 빌려주기도 했다. 영상 비전공자로서 아트디렉터 등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 정 감독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데뷔 가수를 많이 맡아 이미지 메이킹 등에 자신이 있었다. BTS 작품 역시 뮤비만 찍은 것이 아니라 비쥬얼디렉팅과 이미지메이킹을 같이 했다”며 “우리 스태프들도 프로모션, 기획 등 관련 경험이 많아 기본적인 토대를 만드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식 강요하면 실패해, 동남아 문화 존중해야

동남아는 쉽지 않은 시장이다. K팝 열풍이 불고 있지만 고유문화 색깔 또한 강하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이전에도 여러 한국인 감독들의 뮤비가 있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SM, YG, 하이브 등 대형기획사들도 동남아와 협약을 맺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들었다”며 “뮤비가 업로드 된 유튜브 댓글에는 ‘한국을 너무 따라했다’는 식의 악플도 많이 달린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동남아 공략에 실패하는 주요 원인으로 ‘한국식 강요’를 꼽는다. 한국인 스태프와 일하고, 한국인 관계자들을 불러와 한국에서 촬영하는 식이다. 프로모션, 아트디렉팅, 이미지세팅 등 하나부터 열까지 감독이 직접 챙겨야 하는 베트남식 현장에 적응하지 못했을 거란 지적도 있었다. 분업이 확실한 한국에서는 감독이 연출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감독은 “한국인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이 가장 잘못하기 쉬운 것이 문화를 '정복'하려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스템 안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일하기를 원하다”면서 “그런 방식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 내가 가진 것을 베트남 사람들이 습득하게 하는 것이 더 좋다. 그 과정에서 새로움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 에이미 '일사병'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에이미 '일사병'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베트남 현지에선 특히 한국의 특성과 동남아 고유문화를 잘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위해 정 감독은 베트남 현지 촬영을 원칙으로 두고, 베트남 현지인 위주로 스태프를 고용해 차별화를 뒀다. 

“워낙 한국인들 사이에서 일하다 보니까 일부러 베트남 스타일리스트와 아트디렉터를 고용했다. 베트남 촬영할 때는 한국인 스태프가 4명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감독님들은 한국인을 주로 쓰려고 한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잘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가져온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어도 다시 수정하고 교육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베트남 사람들이 습득이 빨라 이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뮤비에도 베트남 현지가 주로 등장한다. 조회수가 1200만 회를 넘는 에이미의 ‘일사병(Shay nắnggg)’ 뮤비는 베트남 ‘달랏’ 등 녹읍이 무성한 현지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직접 발로 뛰며 분위기에 맞는 장소를 찾아냈다. 해당 영상 댓글에는 “에이미의 목소리는 물론 좋지만, 뮤직비디오 칭찬을 안할 수가 없다.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을 보는 것이 즐겁고, 베트남을 꼭 방문하게 만든다. 감독을 칭찬해야 한다”는 댓글이 달려 있다. 

동남아는 K팝 열풍의 주인공, 글로벌 스탠더드 만들겠다

동남아 내 한국 인기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7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 중 동남아 지역의 아세안(ASEAN) 국가 비중은 32.5%에 달했다. 전체 외국인 여행객 22만여 명 중 4만명 이상이 동남아 관광객이었다. 중국을 포함한 중화권(대만·홍콩·마카오)은 1만여 명에 불과했고, 일본 관광객 수도 5855명에 그친 것과 대비됐다. 

정 감독은 동남아 시장이 K팝 열풍의 시작이자 주인공이라고 전했다.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 순위를 보면 1등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이다. K팝 열풍이 동남아, 브라질서부터 시작했다고 봐도 된다. 우리가 10년, 20년 전에는 외국 팝을 멋있어했듯, 동남아 지역에서 K팝을 동경하는 상황이다. 틱톡, 인스타그램 등 한국에서 사용하는 미디어 방식도 똑같이 흡수하고 있다.” 

지난달 데뷔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걸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는 베트남 출신이다. 글로벌 걸그룹 ‘블랙핑크’ 리사가 태국 출신인 것은 이미 유명하다. 각국 교류가 이렇듯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정 감독은 동남아 도전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가진 K팝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듯이 베트남의 ‘V팝’이 어디에서도 세련됐다고 평가받는 것이 목표다. 

“내가 베트남에 가서 잡아놓은 일정한 퀄리티의 틀이 베트남 뮤비 시장에 영향을 줬다고 믿는다. 동시에 내 것과 비슷한 뮤비를 보면 오히려 뿌듯하다. V팝을 어디에 내놓아도 K팝과 같은 글로벌 스탠더드 느낌을 주도록 이끌고 싶은 것이 내 꿈이기 때문이다. 또한, K팝 출신 제작자로서 K팝 양식을 세계에 전달하는 책임감도 느낀다. K팝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는 것을 후방에서 돕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앞으로 더 열심히 영상을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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