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진행·영상편집·CG제작, 오디오녹음 등 불법파견 판단
손배책임은 KBS 동종 업무 직원 임금의 절반만 인정
“원·하청 공동책임 인정 의미” 평가

KBS가 자사 뉴스진행, 편집, CG, 중계, 오디오녹음 등 방송제작·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 230여명을 불법파견 형식으로 사용해왔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KBS가 이들을 직접고용하고, KBS 직원보다 적게 받은 임금 약 24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홍기찬 부장판사)는 지난 23일 전·현직 KBS미디어텍 노동자 240여명이 KBS와 KBS미디어텍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KBS에 ‘원고 노동자들에 지난 10년 간 공사 직원보다 적게 받은 임금 차액 240억원을 지급하고, 미디어텍 소속 인원 50여명엔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라’고 판결했다.

KBS 미디어텍은 KBS의 완전자회사로, KBS의 방송 타이틀, 뉴스 영상 제작, 사운드 디자인, 특수 영상 제작 등을 맡고 있다. KBS가 비정규직으로 써왔던 방송제작과 지원 업무를 자회사 채용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2009년 설립했다. 문제는 이들 업무가 KBS 측의 관리·감독과 지시를 받아 이뤄져왔다는 점이다. 이들은 KBS 소속 노동자들과 방송제작 긴밀한 협업 아래 유사하거나 같은 업무를 해왔다.

▲KBS 본관. ⓒKBS
▲KBS 본관. ⓒKBS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은 2019년 6월 KBS미디어텍을 근로감독한 결과 미디어텍 소속 노동자 192명에 대해 KBS와 실질적 파견 관계가 인정된다며 KBS가 이들을 직접고용하도록 시정명령했다. KBS는 이에 ‘특정직’ 직군을 신설해 이들을 고용했다. KBS가 KBS미디어텍과 업무위탁계약만을 맺고 실질적으로는 파견 관계에서 지휘·감독을 행사하면서, 파견법상 각종 법적 책임을 회피해왔다는 얘기다. 나머지 50여명에 대해서는 시정지시가 아닌 권고에 그쳤다.

232명의 노동자들은 2019년 7월 KBS가 근로자파견사업 허가 없이 이들을 파견으로 사용해왔으며, 파견노동자란 이유로 동종·유사 업무를 한 KBS 직원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했다며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KBS의 뉴스진행 PD부터 뉴스 영상편집·CG 제작, SNG(위성뉴스수집)밴 운행, 오디오녹음, 특수영상제작, 사운드디자인 등 일을 하고 있다.

▲아침 출근길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을 지나다보면 한 무리 노동자들을 볼 수 있다. KBS를 상대로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KBS 미디어텍 노동자들이다. 사진=언론노조 KBS미디어텍지부
▲아침 출근길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을 지나다보면 한 무리 노동자들을 볼 수 있다. KBS를 상대로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KBS 미디어텍 노동자들이다. 사진=언론노조 KBS미디어텍지부

재판부는 이들의 업무가 뉴스 제작을 위해 필수적인 업무로, KBS 측의 관리감독이나 통제 아래 이들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고, 업무의 재량 여지가 거의 없었다고 판단했다. 또 뉴스진행과 뉴스영상편집, 스포츠중계 등 업무에서 KBS 직원과 같은 업무를 했거나 혼재돼 일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뉴스진행 업무에 대해 재판부는 “업무가 공사 담당 직원들과 공동작업을 통해 진행되고, 적정한 방송결과의 산출과 효율적 업무 수행을 위해 피고 공사 측의 구체적이고 세밀한 업무지시에 따라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며 “업무를 굳이 피고 공사로부터 분리하고 외부 위탁해 처리했어야 할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공사와 KBS미디어텍은 방송프로그램 제작업무 위탁계약을 체결했고 이는 파견법에서 정한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사측은 주장했다. 또 방송업 특성상 긴밀한 협조가 불가피했으며 이는 근로자 파견관계를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에 “근로자파견 사업이 방송업이라는 이유로 법률에서 정하는 허가 절차 없이 정당화될 수는 없으며 방송업 내부에서도 도급 형태의 업무방식을 상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재판부는 사운드디자인 업무를 한 노동자 5명의 청구에 대해서는 전문·기술성이 있고 업무에 상당한 재량이 있었으며, 외주 사업으로 인한 수입 비중이 크다는 점 등을 들며 기각했다.

손해배상액의 경우, 재판부는 이들을 KBS에서 동종·유사업무를 한 공채 직원보다 3직급이 낮은 7직급으로 판단한 결과 노동자들이 청구한 490억여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240억원만을 인정했다.

노동자들을 대리한 류재율 변호사(법무법인 중심)는 청구가 기각된 사운드디자인 업무에 대해 “업무 재량이나 KBS 지시를 받은 정도가 다른 직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재판부는 외주 사업에 대한 수입 비중이 크다는 점을 (불인정 근거로) 밝혔지만 그 부분도 도급계약에 넣게 돼있던 것”이라며 “제출자료를 꼼꼼히 보면 파견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류 변호사는 이어 “이번 소송은 원청과 하청인 KBS와 미디어텍이 모두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10년 동안의 임금 차액 전부를 손해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수십년 간 관행처럼 만연해 온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주요 방송사들이 전향적이고 책임있는 자세로 문제 해결에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KBS 측은 “판결 자체에 대해 말씀드릴 입장은 없다”며 “판결문을 송달 받으면 내용별 검토를 해 항소가 필요한지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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