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생각하는 청소년 비율의 증가

암울한 통계청의 자살률 발표가 나왔다. 이미 OECD 평균 자살률의 두 배가 넘는 세계 최악의 ‘자살 공화국’이 된 지 오래지만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고 있다. 이 수치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전 년에 비해 1.2%나 더 증가했으며, 매일 36.6명이 자살로 사망하고 있다. ‘인구절벽’에 대응해 출생률을 높여야 한다는 정치인들은 많은데, 왜 스스로 죽음을 고민하고 선택하도록 만드는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않는 걸까.

한국 10대의 사망원인 1위(43.7%)는 자살이다. 10대만이 아니다. 20대는 사망원인 중 절반 이상인 56.8%, 30대도 40.6%로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40대와 50대는 암 다음으로 자살이 가장 많다. 65세 이상도 암, 심근경색, 뇌경색과 함께 자살이 가장 많은 사망원인 중 하나다. 10대를 제외한 다른 나이대는 자살률이 소폭 감소했지만 10대는 오히려 더 증가했다.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 봤다는 청소년도 증가하고 있다. 2020년 질병관리청의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4명 중 1명이 우울감을 경험하고, 청소년 10명 중 1명이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미안한 현실

39분에 한 명 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은 ‘인구절벽’과도 연결되어 있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행복감을 줄 때 “자녀”라는 존재와 그 행복을 함께 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시스템의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동시에 모든 존재의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승자독식의 구조를 갖고있다. 이러한 사회는 대부분의 구성원에게 행복감을 주기 어렵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답”이 정해져 있는 ‘정답사회’다. 획일적인 기준에 따르지 않고 자기 자신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성실함이 부족하고 ‘노오력’을 하지 않아 ‘루저’가 되는 사람 정도로 취급된다. 자본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국가는 시민들을 자본에 그냥 던져둔 세상,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죽임’으로 내몰리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우리의 자녀가 태어나게 하고 싶을 수 있을까.

▲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네거리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연합뉴스
▲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네거리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연합뉴스

행복감은커녕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며 그럭저럭 생존해내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에서,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는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에서는 도저히 살고자 하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 태어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도록 내몰리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세상에 아이가 자라도록 하는 것이 미안해 출산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누구나 존엄하게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을

이렇게 많은 자살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요인을 분석해서 제거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이미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우울, 경제생활, 질병이다. 10대는 학업(성적)이다. 모두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을 평가하는 방식 그리고 그로 인한 관계의 단절 때문이다. 즉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죽지 않게 해야 한다. 막을 수 있는 문제들을 막지 않아서 죽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 이 문제가 사회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시작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매년 800명 정도가 노동하다가 노동재해(산업재해)로 사망한다. 어쩔 수 없는 “사고”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의 목숨 값이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비용보다 싸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자살과 노동재해로 인한 사망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분명히 가능한 일이다. 경쟁과 성장중심의 자본주의가 만드는 불평등과 차별을 없애야 가능한 일이다.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사람들을 실패자로 간주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하는 현실이 지속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된다면 지금의 상황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한국은 소멸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소멸한다’고 한다. 출생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적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런데 걱정하지 마시라. 한국은 소멸하지 않는다. 출생률이 줄어들면 한국이 소멸한다는 생각은 순혈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올 때가 많다. 한국은 소멸한다기 보다 선주민과 이주민의 비율 등 인구 구성이 조금 바뀌게 될 것이다. 국가를 운영해야 하고 인구를 통제하고 이용해야 하는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은 방법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상컨대 그 방법은 이주민들의 이주를 더 많이 허용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걱정은 인종차별이다. 현 상태를 근거로 추측해 보자면 이주민의 비율은 늘어날 것이고 이주민들은 불안정한 저소득의 일자리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국에서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라며 정부에 ‘외국인 육아 도우미’ 정책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팩트 자체도 틀렸지만, 오세훈의 돌봄노동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와 이주노동자를 통한 저렴한 노동력의 확보라는 철저한 착취기반의 자본논리를 보여준다. 한국의 인종차별과 경제력에 대한 차별이 만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미 우리는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례로 확인했듯, 출신국가와 피부색으로 계급이 만들어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오늘날 최소한으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인종차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9월2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에서 열린 ‘더 맑은 서울 2030’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오세훈 서울시장이 9월2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에서 열린 ‘더 맑은 서울 2030’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각자도생이 아닌 모두를 살리는 세상

어느 누구라도 존엄하게 평등하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생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과 제도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공정”이라는 이름의 “각자도생”을 끝내기 위해서는 입시만 남고 교육이 사라진 공교육이 완전히 변해야만 한다. 공교육은 기본적으로 나를 탐구하고 다른 사람을 알아가고 협력을 연습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또한 사회적 불평등을 인지할 수 있는 관점과 해결을 위한 실천을 하는 사람들로 성장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

이 사회는 차별과 억압이 공고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충분히 긍정하지 못한다. 그 어느 누구도 잘못 태어난 사람은 없다. 다만 이 사회가 잘못되었을 뿐이다. 자살률과 출생률을 걱정한다면 모두에게 행복할 기회를 주는, 생존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라. 만연한 차별과 억압을 끝내고, 어느 누구도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