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의 인기가 뜨겁다. N차 관람도 많다. 내 주변에는 10차 관람을 앞두고 있는 사람도 있다. 30년 전 수집해 놓았던 만화책을 다시 꺼내드는 사람, 만화책 전권을 주문하는 사람, 넷플릭스에서 예전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비디오 테이프 시절에는 속도감이 너무 느려서 보지 못했던 애니메이션 버전을 이제야 보기 시작했다. 1.5배속 재생 기능 덕분이다.‘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 - 사회운동가로 살고 있는 지금 다시 보는 슬램덩크는 학교 안 청소년 시절 보던 것과는 또 다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잘 알려진 것처럼 고교 농구팀 북산에 소속된 송태섭의 이야기다. 이때 송태섭만큼의 비중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눈에 띄게 그려진 인물이 바로 산왕 정우성이다. 강백호, 채치수, 정대만, 서태웅 등 북산 주인공의 이야기는 모두 원작에서 알던 감동 그대로지만, 북산의 마지막 경기 상대인 산왕의 정우성은 조연 캐릭터 중 유일하게 보강된 서사로 관객 앞에 나선다.정우성은 원작 만화에서도 비교적 상세히 설명된 조연 캐릭터이긴 했다. 일본 내 최고의 농구 실력을 자랑하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치열하
진행되던 서사가 끊기며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고 출연자는 진솔하게 자기 속내를 이야기한다. 리얼리티 예능에서 자주 보는 ‘독백의 방’(staged confession)이라는 연출 기교다. 잠재적 연애 파트너에 대한 호감이든, 우승을 놓고 다투는 경쟁자에 대한 견제든, 내 맘을 몰라주는 가족에 대한 서운함이든, 카메라가 켜지고 ‘독백의 방’에 들어서면 출연자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솔직해지며 차분히 스스로를 돌아본다. 마치 지금 하는 이야기가 카메라 뒤에 있을 연출자와 자신만이 아는 비밀로 남을 것이고, 그로인해 연출자는 자기를 지지하
이따금씩 어떤 유명한 연예인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를 아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연예인 덕질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서로의 덕력을 확인하며 함께 행복하게 덕질을 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내가 좋아했던 연예인은 누구였는지 생각해보면 한때는 핑클이었고 또 한때는 소녀시대였다. 나는 그들을 왜 좋아했을까? 돌이켜보면 방송에서 보여지기를 요구받은 모습만 보고 좋아했을 뿐, 실제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어떤 성격을 가진 인간인지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인격체가 아니라 껍데기만 보고 환호하며 ‘소비’했을 뿐이었다. 아이돌이었던 당시에는 자
전 세계 원유 생산량 1위 국가는 어디일까? 1위 미국, 2위 러시아 3위 사우디아라비아, 4위 캐나다, 5위 중국이다. 5위권 내에 중동 국가는 3위 사우디아라비아밖에 없다. 그런데 왜 석유로 부강해진 나라로는 중동 국가가 떠오를까? 세계 1위 미국이 석유로 부자가 된 나라일까? 정답부터 말하면 미국은 석유 때문에 부자가 된 나라는 아니다. 월드뱅크 자료를 인용한 통계청 ‘천연자원 GDP 기여도’’ 통계에 따르면 석유가 미국 GDP에 미치는 영향은 0.2%에 불과하다고 한다. 반면 이라크는 GDP 대비 32%, 쿠웨이트 32%,
흔히들 설날을 비롯한 명절에는 최대한 가족이나 친척, 아니면 이웃끼리 덕담을 나누라는 말이 있다. 고단한 생활 속에서 설날 같은 명절만이라도 우울하거나 힘든 이야기를 말하는 대신, 화목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자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그러기는 참 쉽지 않다. 명절 때마다 친척끼리 모인 자리에서 사소한 말다툼이 크게 번지는 일이 적지 않은 것처럼, 365일 중에 단 하루라도 좋은 것만 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한국 문화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러 작품들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다시 어떤 작품은 해외에서 상까지 받아오는 일이 계
한국 언론이 위기 불감증에 사로잡혀 있다. 기자들과 김만배 사이에 억대의 돈이 오갔고 누군가는 명품 가방을 챙겼다. 언론다운 언론을 이룰 역사적 소명을 지닌 신문의 기자까지 들어있어 충격은 더 컸다. 김만배가 여러 언론사 기자들과 골프를 칠 때마다 100만 원 또는 수백만 원 봉투를 무시로 돌렸다는 말까지 ‘정치 검찰’은 솔솔 흘리고 있다.새삼 위기를 들먹이기도 남우세스럽다. 이미 많은 이들이 언론 위기를 진단해왔다. 문제는 언론개혁운동에 대해서는 물론 언론을 살리자는 호소까지 다름 아닌 언론이 뒤틀어온 데 있다. ‘한국 언론의 현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사회운동을 다룬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이 상영중이다. 서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공고한 성차별, 나이차별, 외모차별 등이 어떠한 문제인식도 없이 다뤄지는 것이 불편했지만 사회운동가로서 부당한 억압을 끝내기 위해 싸웠던 삶은 숭고했다. 이 영화가 끝나자 뒷좌석의 한 어르신이 이런 말을 했다.“저런 분들이 있었으니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는 거야”독립운동가 조마리아와 그의 아들 안중근을 비롯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일제에 맞서 힘겨운 운동을 이어
‘아바타: 물의 길’을 보고 나온 뒤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3D로 관람한다면 돈이 아깝지는 않을 거라고 주변에 면피용 권유를 할 수는 있겠다. 두 번째, 다만 이번과 똑같은 방식으로 ‘아바타3’을 만든다면 그걸 보러 극장에 가라고는 더이상 권할 수 없을 것 같다.기대했던 새로운 영화적 경험은 없었다. 고래를 닮은 거대 생명체 툴쿤이 맹활약하는 등 수준급 3D 해양 액션 시퀀스가 종종 감탄을 불렀지만, 2009년 세계를 강타했던 ‘아바타’로 충분히 본 ‘아는 맛’이었다. 13년 전과 동일한 구조로 전개되는 예측 가능한
최근 읽은 두 편의 논문은 경희대 이기형 교수의 (2010)와 숙명여대 박사과정 임소현이 석사학위 논문을 정리하여 지도교수 양승찬과 함께 쓴 (2022)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두 논문 모두 ‘저널리스트에게 현장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살폈는데, 사뭇 다른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이기형의 분석대상은 의 심층탐사보도 “노동OTL” 연작 기사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
※작품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지난 4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이 심상치가 않다. 개봉 이전 10년 넘는 공백 끝에 개봉한 제임스 카메란의 신작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바타 : 물의 길’과 동명의 유명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윤제균의 JK필름과 CJ ENM이 합작한 ‘영웅’이 다투던 극장가에 또 다른 거센 물결이 일어났다. 계속 1위를 ‘아바타 : 물의 길’이 차지하는 가운데 ‘영웅’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거센 대결을 벌이고 있는 국면이 벌어지고 있다. 1월 11일 현재로서는 ‘영
건강검진은 연말이면 꼭 하는 숙제다. 직장인 건강검진은 산업안전보건법에 정해진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의 의무라 사업장·직종에 따라 1년, 또는 2년마다 꼭 수검을 해야 하는데 MBC의 경우 모든 직원이 매년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1년 내 언제든 하면 되는데, 꼭 미루고 미루다 연말에 “미수검시 과태료 부과” 같은 공지사항을 보고 나서야 부랴부랴 검사 예약을 하게 된다. 지난해에도 결국 마감을 열흘 앞두고 겨우 검진을 받았다. 아직 30대 중반인 나는 대부분의 지표가 양호하게 나왔는데, 한 가지 항목에 형광펜으로 표시가 그어져 왔
고1 아이가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고 한다. “아니 넌 전혀 살찌지 않았는데 왜 다이어트를 하니?” “내가 5년 전보다 몸무게가 29% 급증했단 말이야.”5년간 29% 몸무게가 늘었으면 ‘급증’한 것일까? 도대체 ‘급증’의 정의가 무엇일까? 다른 아이들 몸무게 평균 증가율을 조사해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에 다른 아이들 몸무게 평균 증가율이 29%보다 크면 우리 아이 몸무게가 ‘급증’했다고 할 수 없다. 29% 증가 사실만으로 다이어트를 주장하면 안 된다.조선일보 12월28일 1면 및 5면 기사다.
[안전안내문자] 4호선 삼각지역 상선 당고개방면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타기 불법시위로 무정차 통과하고 있습니다. 열차 이용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서울교통공사가 재난문자로 총칭되는 안전 안내 문자를 발송했다. 휠체어이용인이 지하철을 타는 것이 시위의 방법이 될 만큼, 휠체어이용인이 자유롭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현실은 말끔히 지워졌다. ‘대중’을 위한 교통수단이지만 휠체어이용인은 ‘대중’이 아니었다. 휠체어이용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비장애인중심주의 사회에 의해 ‘재난’으로 규정되었다. 누구나 대중교통을 안전하게 이용
한 해의 끝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지난 12월 30일, 쇼미더머니 시리즈의 최신 시즌인 ‘쇼미더머니 11’이 결승전을 방영하며 마무리되었다. 시즌 11의 우승을 차지한 래퍼 ‘이영지’는 역대 쇼미더머니 시리즈 중 사상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여성 래퍼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2019년 엠넷의 고등학생 연령대의 래퍼를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 ‘고등래퍼’ 시즌 3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영지는 다시 3년 만에 엠넷에서 기획한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것도 엠넷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의 메인을 차지하는 프로그램에서 우승의 영광을 누리게
새해 첫날이다. 덕담이 미덕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위기’를 쓴다. 먹고 사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는 기득권층과 달리 우리 민중에 드리운 먹장구름이 너무 짙다. 새해이되 새해가 아니다. 민주, 민생, 안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세 부문 두루 위기가 무장 커지고 있다. 위기는 윤석열 정권의 시대적 역행이 불러왔다. 국정에 임하는 자기 생각이 있는지 의문마저 든다. 기득권을 대변하는 편향 보도를 일삼으면서도 마치 국민을 위한다는 듯이 늘 행세해온 ‘신문방송복합체’들이 그와 대통령실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포함의 언어, 배제의 언어“Merry Christmas(메리 크리스마스, 축 성탄)”라는 인사는 모두를 포함하는 언어일까, 아닐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모두를 포함하는 언어와 그렇지 못한 언어의 차이점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모두를 포함하지 못하는 언어는 크게 두 가지 특성이 있다. 첫 번째 특징은 어떤 그룹의 사람들이 소외나 배제를 경험하게 만드는 언어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두 번째 특징인데 어느 한 그룹의 사람들만이 그 사회에서 “중심, 정상, 표준”으로 여겨지게 하는 언어다. 그렇다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지만, 한동안 한국 관광을 독려하는 캠페인 문구로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가 사용된 적이 있었다. 10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빠르게 개발과 발전, 성장을 일구어낸 한국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었으리라. 그러나 ‘다이나믹’하다는 것은, 다시 말해 ‘역동적’인 상황은 결코 긍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로는 분명한 기준과 원칙을 확립하거나 다질 시간을 만들지 못하고,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따라가기 바쁠 수도 있음을 넌지시 드러내는 모습
※ 주의 :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의 주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흥행 추리소설 집필로 가문을 일으킬 정도의 큰 부와 명예를 누린 주인공 할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죽음을 맞는다. 대저택을 찾은 유능한 사설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은 어딘지 미심쩍어 보이는 딸, 아들, 며느리와 손주들을 상대로 수사를 이어간다. 젊은 이민자 간병인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도 의심 대상에 오르는 건 물론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탐정 블랑의 시선을 쫓아가는 관객은, 등장인물이 흩뿌려 놓은 지난 행동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춰가며 끝내
법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그의 저서 에서 증인을 개념화하는 라틴어의 계보를 짚고 그 여진을 오늘의 영단어에 대응시키며 진실의 다층성을 살핀다. 그중 첫째는 증언(testimony)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testis’로, 이는 경합하는 당사자들 간의 재판이나 소송에서 제 3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둘째는 ‘superstes’로 이는 생존자(surviver)로 승계되는데, 어떤 일을 끝까지 경험해 그 일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세 번째는 작가(author)에 흔적을 남긴 ‘auctor’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