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잘 알려진 것처럼 고교 농구팀 북산에 소속된 송태섭의 이야기다. 이때 송태섭만큼의 비중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눈에 띄게 그려진 인물이 바로 산왕 정우성이다. 강백호, 채치수, 정대만, 서태웅 등 북산 주인공의 이야기는 모두 원작에서 알던 감동 그대로지만, 북산의 마지막 경기 상대인 산왕의 정우성은 조연 캐릭터 중 유일하게 보강된 서사로 관객 앞에 나선다.정우성은 원작 만화에서도 비교적 상세히 설명된 조연 캐릭터이긴 했다. 일본 내 최고의 농구 실력을 자랑하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치열하
‘아바타: 물의 길’을 보고 나온 뒤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3D로 관람한다면 돈이 아깝지는 않을 거라고 주변에 면피용 권유를 할 수는 있겠다. 두 번째, 다만 이번과 똑같은 방식으로 ‘아바타3’을 만든다면 그걸 보러 극장에 가라고는 더이상 권할 수 없을 것 같다.기대했던 새로운 영화적 경험은 없었다. 고래를 닮은 거대 생명체 툴쿤이 맹활약하는 등 수준급 3D 해양 액션 시퀀스가 종종 감탄을 불렀지만, 2009년 세계를 강타했던 ‘아바타’로 충분히 본 ‘아는 맛’이었다. 13년 전과 동일한 구조로 전개되는 예측 가능한
※ 주의 :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의 주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흥행 추리소설 집필로 가문을 일으킬 정도의 큰 부와 명예를 누린 주인공 할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죽음을 맞는다. 대저택을 찾은 유능한 사설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은 어딘지 미심쩍어 보이는 딸, 아들, 며느리와 손주들을 상대로 수사를 이어간다. 젊은 이민자 간병인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도 의심 대상에 오르는 건 물론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탐정 블랑의 시선을 쫓아가는 관객은, 등장인물이 흩뿌려 놓은 지난 행동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춰가며 끝내
올해 영화평론가 사이에서 두루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는 누가 뭐래도 ‘헤어질 결심’이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는 형사 해준(박해일)의 시점에서 한 번, 용의선상에 오른 서래(탕웨이)의 시점에서 다시 한번, 시차를 두고 벌어지는 독특한 사랑을 추리극의 형식 안에서 풀어냈다. “마침내”,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와 같은 유행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마니아 관객층도 형성했다. 다만 무려 18년 만에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닌 작품을 내놓은 박찬욱 감독이 공히 대중적 흥행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친 데 비하면, 189만 명이라는 관객은 분명 만족스러
친구를 꼬셨다. 학교 실습실에 있는 컴퓨터를 훔쳐서 팔자고. 그 돈으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서, 나는 꿈꾸던 예술가가 되고 너는 미항공우주국(NASA)에 취직하면 된다고. 아직 철이 덜 든 청소년쯤 된 아이들의 생각인가 싶지만, 실은 그보다도 어린 초등학생 두 명이 작당이 되어 벌이는 맹랑한 모의다. 한 명은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는 백인 어린이 폴(뱅크스 레페타), 다른 한 명은 아동보호시설 입소를 거부하고 은신 중인 흑인 어린이 죠니(제일린 웹)다.두 어린이가 받아들인 운명의 무게는 같지 않다. 그걸 깨닫는 과정의 성장통을 말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라는 영화의 존재를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알고는, 잘 잊히지 않는 특색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두 여자가 서로 같은 속옷을 입는다면 그건 어떤 사이일까. 여자로 태어났지만 자매 없이 살아왔고, 친구와 동거해본 경험도 없는 입장으로서는 퍼뜩 떠오르지 않는 답이었다.지난 10일 개봉한 영화를 뜯어보니, 관계는 다름 아닌 모녀다. 두 사람은 정확히 말하면 팬티를 같이 입는다. 50대 엄마와 20대 딸이 같은 팬티를 입는다면, 몇 가지 사실을 추론해볼 수 있다. 첫 번째, 중년이 된 엄마는 젊은 딸
미국에는 한국계 하원의원 4명이 있다. 2020년 미국 하원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국내 언론에서도 소식이 여러 차례 보도됐다. 대표적인 게 공화당 소속 영 김과 미셸 박 스틸 의원이다. 두 사람은 한인타운이 위치한 캘리포니아 제39지구, 제48지구에서 승기를 잡았다. 2021년 초 워싱턴 D.C.에서 열린 하원의원 선서 당시 두 한국계 중년 여성이 백인 남성들 사이에서 위풍당당하게 선 모습으로 촬영한 사진이 잘 알려져 있다.두 의원의 정치 성향은 공화당답다. 모두 자신들 삶에 영향을 받았다. 북한 출신 부모와 미국에 정착한 미셸 스틸
‘멀티버스’라는 말,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몰라 갸웃했던 적 있을 것이다. 한글로 풀면 ‘다중우주’다. 영화에서는 은하계의 무수한 행성에 '또 다른 나'가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으로 흔히들 활용한다. 마블 영화에서는 타노스와 맞서는 어벤져스 멤버들이 활약하는 주요 무대가 되기도 했다.양자경도 다중우주로 나섰다. 입소문이 이어지고 있는 신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통해서다. 다만 가상의 히어로 세계가 아닌,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아줌마 에블린(양자경)을 주인공으로 하는 지극히 보편적인 삶의 이
올해 극장가 흥행작은 모두 ‘속편’이었다. 팬데믹 이후 최초로 1000만을 넘긴 ‘범죄도시2’(1269만 명), 톰 크루즈 출연작 최고 매출을 경신한 ‘탑건: 매버릭’(816만 명), 한국 극장가 역대 최다 관객을 불러 모은 ‘명량’의 후속작 ‘한산: 용의 출현’(725만 명), 다니엘 헤니와 진선규의 합류로 재등장한 ‘공조2: 인터내셔날’(608만 명), 배네딕트 컴버배치의 두 번째 마블 솔로무비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588만 명)까지 박스오피스 1~5위에 오른 작품 뒤에는 모두 관객의 큰 사랑을 받은 ‘전편’이
지난 8월24일 개봉한 군대 배경 코미디 영화 '육사오(6/45)'가 3주 넘게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누적 관객 수 183만 명을 모으면서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160만 명도 거뜬하게 넘어섰다. 제작비 50억 원이 채 되지 않는 중저예산 규모의 한국 영화가 약 한 달 동안 극장가 차트 2위를 지키는 일은 결코 흔하지 않기에, 분석해볼 만한 현상이다.한국 영화계에서 박스오피스 1, 2위를 다투는 건 대개 제작비 150~300억 원 규모의 상업영화다. 올해로 치면 설 연휴 개봉한 ‘해적: 도깨비 깃발’, 여름 성수기에 공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엄청난 흥행 이후 ‘자폐가족 현실’이라는 제목의 글이 한동안 인터넷을 달궜다. 아픈 형으로 인해 가족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동생 입장에서 묘사한 글은 ‘진짜 현실은 이렇게 비참한 것’이라고 뼈아프게 소리치는 듯했다. 익명으로 작성된 글의 진위를 가리기는 어렵겠지만, 장애인을 가족이나 친척으로 둔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드라마가 현실과 달리 너무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자폐장애인은 대개 부모의 보필을 받으며 살아가기에, 비장애인 형제, 남매, 자매는 상
2018년 프랑스 파리에 갈 때의 일이다. ‘노란 조끼’ 물결이 시작되면서 프랑스 국적기인 에어프랑스도 파업에 동참했는데 그 대처가 좀 당황스러웠다. 특정 운항편이 취소될 수 있으니 대체 이동 방법은 ‘알아서’ 마련하라는 거다. 운 좋게 파리에 도착했지만 열차 역시 시간표 역시 들쑥날쑥했다. 궁금했다. 여러 업종의 동시다발적 파업이 벌어지는 이 도시의 일상은 과연 별 탈 없이 돌아가는 걸까, 사람들은 불평하지 않는 걸까?지난 18일 개봉한 에리크 그라벨 감독의 ‘풀타임’은 잊고 있던 이 궁금증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싱글
“난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 없어요. 한 번도요. 내가 느끼는 척 안 해도 기분 나빠 말아요. 더 이상은 안 할 거야. 남편 죽고 결심했죠. 다신 연기 안 한다고.”점잖게 차려입은 60대 중년 여인 낸시(엠마 톰슨)가 한에 맺힌 듯 지난 삶을 와르르 토해내고 있다. 지긋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 얘길 경청하는 건 누가 봐도 젊고 매력적인 외모의 20대 남자 리오 그랜드(다릴 맥코맥)다. 소파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은 성적인 서비스를 사고, 팔기 위해 만났다. 물론 사는 사람이 중년 여인 낸시고, 파는 사람이
7~8월 두 달 동안 관객들은 ‘볼 만한 한국 영화’를 여러 편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극장가 대작이 줄개봉하기 때문이다. 20일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SF물 ‘외+계인’(CJ ENM)의 뒤를 바짝 쫓아 27일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한산: 용의출현’(롯데엔터테인먼트)이 관객을 만난다. 8월3일 한재림 감독의 재난물 ‘비상선언’(쇼박스)이 바통을 이어받고, 10일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를 알리는 액션물 ‘헌트’(메가박스(주)중앙플러스엠)도 출격한다. 배급사별 주력 상업영화가 틈새 없이 촘촘한 1주일 간격의 개봉일정을 확정
지난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무협 영화 ‘검치호’ 상영관에서 큰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관객과의 대화(GV)로 무대 앞에 나선 60세 주연배우 원진이 양손을 바닥에 짚고 엎드려 한쪽 발을 전갈 꼬리처럼 쫑긋 세워 올리는 ‘전갈 권법’을 모처럼 선보였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낯선 배우일 수 있는 원진은 1992년 국내 개봉한 홍콩 액션영화 ‘가자왕’에서 최초로 전갈 권법을 선보이며 흥행에 크게 성공했고, 당대 한국의 액션 배우로서는 흔치 않았던 시그니처 액션을 보유하며 명성을 얻었다.그날 자리에는 원진보다
명실공히 연기 잘하는 배우로 평가받는 문소리의 이름을 떠들썩하게 알린 작품은 2002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일 것이다. 그는 몸을 힘겹게 가누며 말 한마디 뱉는데도 꽤 시간이 걸리는 지체장애인의 모습을 ‘진짜처럼’ 연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안겼다. ‘배우’가 아닌 ‘여배우’로 불리는 게 더 흔하던 시절, 장애 없는 젊은 여자가 132분간의 러닝타임동안 ‘장애 표현으로 시작해 장애 표현으로 끝맺는’ 연기를 선보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태도와 능력을 동시에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오랫동안 한국 영화계에서 장애는 ‘연
“그때 탑건을 보고 아, 저기 활주로에 서서 손짓을 내는 사람 정도는 돼봐야겠다 싶었지.”30대 여기자와 50대 남부장 사이에는 업무 얘기 외에는 마땅한 대화 소재가 없는 편인데, 때때로 괜찮은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대화의 물꼬를 터주기도 한다. 요즘 같으면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이 딱 그렇다. 같은 날 당직을 선 부장은 젊은 시절 ‘탑건’에 출연한 톰 크루즈가 하도 멋있어서, 파일럿은 못 될지라도 이륙하는 비행기에 수신호를 내는 해군이라도 돼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날 대화는 꽤 이어졌다.‘탑건’은 1986년에 제작됐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Palme d'Or)의 주인공은 스웨덴 출신 감독의 신작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TRIANGLE OF SADNESS)였다. 영국 영화매체 스크린인터내셔널, 프랑스 영화매체 르 필름 프랑세즈 모두 박찬욱 감독의 미스터리 로맨스 ‘헤어질 결심’에 더 높은 점수를 줬기에 조심스럽게 ‘헤어질 결심’의 수상을 점친 언론도 있었지만, 황금종려상은 역시나 ‘보다 정치적인 영화’에 돌아갔다.칸영화제가 선호하는 정치적인 영화란 빈부격차와 계급, 전쟁과 난민, 성 소수자와 차별 등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사회적 현상을 바
“조국 사태를 판단하는 영화는 아니다.” 다큐멘터리 ‘그대가 조국’을 연출한 이승준 감독이 개봉을 앞두고 한 말이다. 그의 작품을 지지해왔지만, 이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영화는 정경심 교수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받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관련 판결문에 어떤 부당한 점이 있는지, 당시 조사받았던 동양대 조교가 어떤 압박을 당했는지 소상히 짚는다. 장경욱 교수, 박준호 씨 등 관련자 인터뷰도 비중 있게 다뤘다. 이 과정을 거쳐 ‘검찰과 언론이 주도한 조국 사태가 부당했다’는 또렷한 맥락을 형성한다. 조국 전 장관은 현재 자녀 입시
영화를 다 보고 며칠 내내 불편함이 가시지 않는 경우가 있다. 2019년 개봉한 ‘에이프릴의 딸’이 그랬다. 젊은 엄마 에이프릴(엠마 수아레스)이 어린 나이에 임신한 딸을 따돌리고 그의 남자친구를 빼앗는다. 예비 장서 사이로 봐도 될 사이의 성적인 장면까지 여과 없이 연출되더니 나중에는 딸이 낳은 자식을 빼앗는 전개로 이어진다. ‘엄마’ 하면 애정이나 헌신이 떠오르는 평범한 관객 중 한 명으로서 심리적 충격이 꽤 오래 이어졌다. 이 논쟁적인 영화로 미셸 프랑코 감독은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탔다.이런 작품이 권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