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1358호 사설

지난 6월 30일자 조선일보 노동조합 노보를 보면 ‘고뇌’가 느껴진다. 노보는 인플레이션 악화를 막기 위해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주장이 조선일보 사설 내용과 일치한다면서 조선일보 직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건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이 나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물가를 따라잡지 못한 실질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조선일보 언론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독자 입장에선 이중적 행태로 느껴질만하다. 그간 조선일보는 최저임금 결정에 줄곧 재계의 편에 서 있었고, 대기업 임금인상이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보도를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통장에 찍히는 월급액 첫 자리가 최저임금 월급과 같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은 조선일보 직원의 의견은 1등 신문 조선일보조차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처지에 놓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관련 기사 : “임금인상=물가상승” 조선일보 사설에 기자들도 “착잡하다”)

▲ 6월8일 조선일보 사설.
▲ 6월8일 조선일보 사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 오른 시간당 9620원으로 결정되면서 우리 언론의 평가는 극과극을 달렸다. 최저임금 인상액이 결정될 즈음 반복되는 보도 패턴이다. 그나마 최악의 경제 상황 속 최저임금이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더욱 크게 주목을 받게 된 건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최저임금 인상액에 호들갑스럽게 떠들기보다 일찌감치 언론이 제 역할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분명 기회는 있었다. 지난 대선 당시 한국 사회 노동 소득 문제 일환으로 최저임금에 관한 입장을 집요하게 캐묻고 사회적 대타협 테이블에 올릴만큼 논쟁을 부쳤다면 구조적 해법도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 사이 최저임금 문제가 ‘을들의 전쟁’에 머물게 된 요인은 우리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 최저임금 수준이 후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면 갈수록 대기업 갑질에 휘둘리는 플랫폼 노동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며, 소상공인 생존권 문제를 해결할 수 방안은 최저임금 인상을 막는 게 유일한 것인지도 따져 물을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일보 언론 ‘노동자’들이 사측을 향해 고통만 호소할 게 아니라 언론인으로서 최저임금 문제를 얼마나 한국 사회 중요한 의제로 다뤘는지 뒤돌아볼 일이다. 

근로빈곤층 문제를 가족사로 풀어낸 ‘워킹푸어 가족의 가난 탈출기’라는 책은 그래서 언론이 참고할만하다. 저자 강은진은 가방 공장 사장을 꿈꿨지만 IMF이후 20년 동안 오토바이 퀵 서비스 기사로 일하는 아빠, 아르바이트를 3년 하다 114 전화 안내원으로 취업(계약직)에 성공해 정규직이 되고 현재 전업주부인 언니1,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약회사 경리로 일하다 결혼과 함께 퇴사한 뒤 현재 다마스 퀵 서비스 기사를 하는 언니2, 고등학생 때부터 배달일을 시작해 현재 호텔 아르바이트를 하고 조카를 인터뷰하고 250페이지 분량의 글로 풀어냈다.

언론사와 게임회사 등을 거친 15년차 화이트칼라 직장인 저자는 가족의 노동 수난사를 넘어 '근로빈곤층'의 구조적인 문제를 놓치지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유정(가명) 언니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다 담임 교사 추천으로 중소기업 경리로 취직했다. 당시 계약직 같은 개념도 없이 3개월 후 수습을 마치고 정직원이 됐다. 그리고 아빠 소개로 제약회사로 이직했다. 1994년 당시 월급은 60만원이었고 보너스는 600퍼센트였다. 결혼하면 관두는 분위기 탓에 같은 회사 직원과 결혼하고 직장을 그만뒀다.

▲ 워킹푸어 가족의 가난 탈출기_저자 강은진
▲ 워킹푸어 가족의 가난 탈출기_저자 강은진

결혼과 육아로 8년의 공백을 거쳐 들어갈 수 있는 직장은 많지 않았다. 핸드폰 조립 공장 야간조로 들어가 두달 만에 그만뒀다. 파트타임 일들은 최저시급 수준이었다. 청소노동자였던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한 달 250만원으로 간병인을 고용할 수 있었지만 가족 중 누구도 그만큼 돈을 벌지 못해 "가족 중 한 사람이 엄마를 돌보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엄마에게도 이로웠다"고 한다. 유정 언니는 엄마의 병간호를 맡았다. 아빠는 언니에게 생활비로 120만원 주고, 언니는 파트타임으로 30~40만원을 벌었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엄마, 아빠, 언니, 조카 등 5명이 한 집에 살았는데 당시 5인 가구 평균 최저생계비는 170만 정도였다. 유정 언니는 두 아이 육아 문제로 하루 4~6시간 일할 수 있는 김밥집, 일식집, 중국집, 백반집에서 일했다. 보통 일한 기간은 6개월에서 1년이었다. 가게 사정이 어렵고 영세한 탓이었다.

현재 유정 언니는 월 고정비 80만원 들고 하루 10시간 이상씩 일하는 퀵 서비스를 한다. 저자는 언니의 노동을 연결고리로 해서 "누가 퀵 서비스 기사의 배달비를 가로채는가"라는 글을 통해 플랫폼 노동 문제를 고발했다. 

저자는 “글을 쓰며 가장 많이 찾아본 자료가 매해 최저시급이다. 최저시급보다 얼마나 더 버느냐가 우리 가족 벌이의 기준이었다”며 “최저시급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일반 근로자보다 수백 배의 연봉을 받는 CEO는 일반 근로자보다 수백 배의 능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유정 언니는 파트타임으로 일할 때 최저시급만을 받았지만, 다마스 퀵 서비스를 해서는 세 가족이 살 수 있을만큼 돈을 벌었다. 급여는 개인의 능력과 성과가 아닌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했다.

“더 오래 일하고, 더 힘든 일을 하고, 더 위험한 일을 했다. 하지만 버는 돈은 최저생계비 수준이다. 열심히 일하는데 왜 가난한 걸까? 노동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일하는 자의 가난은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의 산물이다”라는게 저자의 결론이다.

최저임금과 같은 문제는 한국 사회 노동의 뿌리에 맞닿아있다. 언론 '노동자'들이 좀 더 치열하게 사회 문제를 다룰 때 세상이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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