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에서 인간이 단순한 수단으로, 객체로 전락할 때 그 표현은 부적절하게 선정적이다. 이는 특히 죽어가거나 육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공익과 독자의 정보 이익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보도되는 경우에 그렇다. 폭력과 사고 사진을 1면에 배치할 때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

독일 언론윤리강령 중 한 부분이다. 언론윤리강령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보도 등 사건 사고를 다룰 때 유의할 점이 상세히 명시되어 있다. 인간 존엄과 인격권 존중이 그 바탕이다. 독일의 언론윤리강령은 강제력도 법적 구속력도 없는 문장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이 가이드를 준수한다. 윤리강령을 의식해서가 아니다.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 절제와 품위를 알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에서 큰 사고가 두 번 있었다. 지난 6월 초 기차가 전복되어 5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다쳤다. 며칠 뒤에는 베를린 도심 인도에 자동차가 난입해 1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피해자 중에는 청소년들이 많았다. 독일 전역에서 탄식과 애도가 이어진 사고였다. 

관련 보도에서 사고 현장의 피해자 사진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유가족 취재도 없다. 대부분 사건 사고의 사실관계와 배경을 중심으로 보도한다. 사고 현장을 자세히 보고 싶으면 타블로이드지 빌트(Bild) 홈페이지로 접속하면 된다. 사고 직후 피해자나 감정적인 상태의 유가족 취재를 하는 곳도 타블로이드지뿐이다. 

한국의 보도 방식과 비교하면 다른 점이 명확하다. 한국은 큰 사고가 나면 앞다퉈 장례식장으로 간다. 유가족, 지인, 이웃을 찾아 피해자의 이야기를 찾는다. 죽음을 둘러싼 사연과 감정이 기사가 된다. 물론 어느 방식이 낫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독일 보도가 지나치게 건조하게 보일 때도 있다. 피해자나 유가족의 경우 언론에 호소하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을까? 죽음을 받아들이고 고인을 보내는 문화의 차이도 반영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보도의 목적이다.  

▲독일 디 차이트 (Die Zeit)의 부고 기사. ‘포퓰리즘 민족주의자‘라고 평가했다. ⓒzeit
▲독일 디 차이트 (Die Zeit)의 부고 기사. ‘포퓰리즘 민족주의자‘라고 평가했다. ⓒzeit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격을 받았다는 뉴스를 본다.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진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한국 포털이나 언론사 페이지에 들어가 어떤 기사를 클릭해도 그 사진이 함께 나왔다. 메인 화면에 걸린 곳도 많았다. 원치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뉴스를 보는 전 연령대가 그 장면을 보고 또 보았다. 

그 사진을 선택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죽어가는 사람의 사진을 싣는 것은 애도가 아니다. 탄식도 아니다. 인간을 도구로 쓴 것이다. 신경을 자극하며 클릭을 유도하는 도구다. 심지어 일본 전 총리 아베라니, 애도하지 않아도 괜찮은 대상이 아닌가. 기사 댓글 창은 영화의 ‘사이다’ 장면을 보는 듯한 감상평이 대다수다. 

그렇게 아베 전 총리의 공과와 평가보다는 마지막 모습만이 뇌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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