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1361호 사설

우리 언론의 노동보도 한계는 명확하다. 일방적으로 반노동 시각을 관철시켜 노동자 처지를 지워버리는 문제로 나아갈 필요없이 ‘반짝’ 보도에 그친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노동자들은 한 달 넘게 파업을 벌였지만 중앙 언론은 유달리 조용했다. ‘대우조선 파업’ 키워드로 지난 3개월 간 보도 내용을 검색한 결과를 보면 하청노동자들의 고용 보장과 임금 인상 촉구 소식을 지역 언론이 최초 보도했다. 이후 대우조선 협력사의 파업 중단 요구와 함께 파업 책임 공방을 중심으로 처리하는 보도가 나왔다.

중앙 언론에선 지난달 22일 세계일보가 “도크 중단 초유 사태까지… 대우조선 하청업체 노사 임단협 두고 갈등 격화”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후 도크 점거로 인한 피해액을 우려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한겨레는 지난 6월29일 “습도 95%에… 가로세로 1m 감옥, 최정예 용접공이 갇혀 있다”라는 제목으로 스스로 철창에 갇힌 22년 경력 조선소 용접노동자 유최안씨의 이야기를 다뤘다. 일주일 뒤 지난 6일 “이 거대한 유조선에서… 보름째 스스로를 가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라는 제목으로 파업 쟁점을 다룬 경향신문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불법’ ‘체포영장’ ‘피해액’ ‘극한 대치’라는 대결 구도의 프레임에 맞춘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7월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을 방문해 조선소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면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7월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을 방문해 조선소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면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리고 지난 14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선박 점거 행위는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경고하고, 18일 긴급 관계장관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우조선해양 파업 문제를 윤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합동 담화문을 발표하자 언론 보도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산업 현장의 불법 상황은 종식돼야 한다”고 했고, 다음날 공권력 투입 문제에 대한 질의를 받고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까지 말하자 언론은 ‘불법 파업’이라며 강경대응을 천명한 정부의 메시지를 스피커처럼 확산시켰다. 공권력 투입 문제를 대대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경남도민일보가 지난 4월21일부터 93건의 보도를 통해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면서 관심을 촉구한 반면, 중앙 언론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가만히 있다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에 맞춰 하청노동자를 악으로 규정한 보도를 쏟아낸 것이다.

딱 20년 전에도 비슷했다. 2003년 1월9일 한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는 대규모 인원 감축에 반대해 파업에 동참했고, 이에 사측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가압류를 걸었다. 다음날 10일 그의 급여통장엔 2만5천 원이 찍혀 있었다. 가혹한 손배 가압류 문제에 언론도 주목하긴 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후였다.

언론노조 등 8개 언론단체는 “노동자가 죽어야만 형식적 관심을 보이는 언론의 ‘노조 죽이기’ 보도 행태에 노동자들이 타살됐다”며 당시 보도 양상을 분석한 바 있다. 2002년 손배 가압류 기사는 120건이 나왔지만 대부분 분쟁 사업장의 현황을 짚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2003년 1월 배달호 분신사망 이후 400여 건의 보도가 쏟아졌다.

그의 죽음 이후 김주익 씨 등 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는데도 반짝 관심을 기울일 뿐 보도 양상은 바뀌지 않았다. 김주익 씨는 유서에서 “입사한 지 21년이 됐는데도 기본급이 100여만원에 불과하다… (중략) 그런데도 보수언론은 마치 노동조합(의 지나친 요구)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난리를 친다”고 했는데 20년 후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정권과 자본이 파업의 불법성을 들춰내면 덩달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보도하지만 정작 노동자 생존권과 노조 탄압 문제엔 눈을 감는다. 일례로 대우조선해양 파업 노사협상 타결 소식을 전하면서 “상처만 남긴 대우조선 파업… 임금 4.5% 더 받자고 8100억대 손실”이란 제목의 보도가 대표적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자신의 SNS에 해당 기사를 걸고 “이 기사의 제목은 ‘임금 4.5% 더 주지 않겠다고 8천1백억 원대 손실’이라고 뽑는 게 옳다. 철저한 주주자본주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참 무능하고 어리석은 경영진”이라고 꼬집었다.

▲ 리영희 선생. 사진=리영희재단
▲ 리영희 선생. 사진=리영희재단

리영희 선생은 기자를 ‘펜을 휘두르는 깡패’라고 부르는 건 가혹하다면서도 “권력과 금력 앞에 무력해진 기자가 강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안간힘을 다해야 고작 희화나 야유 정도이고 언론의 칼에 얻어맞아 목숨을 잃는 것은 약자뿐인 상태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대학교육을 받은 젊은이보다는, 차라리 공장노동자나 농사꾼이나 지게꾼이 뭣인가를 느끼고 분발해서 기자가 될 수 있는 길이 트여 있었다면 우리의 기자 풍토가 오늘과 같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노동 보도에 대한 변화가 없는 건 ‘엘리트 계급’에 기반한 기자 사회 때문일 수 있다는 통찰이다.

한국 언론엔 ‘노동보도’는 없고 ‘파업보도’만 있다. 당장 ‘불법 파업 노동자’라는 규정이 익숙한 것은 별생각 없이 받아쓰는 언론 탓이 크다는 지적부터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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