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지사 시절 성폭행으로 실형 확정된 안희정 출소, 하루에만 최소 300여건 보도
“성범죄 보도 가이드라인, 성폭력이 공표될 때 뿐 아니라 재판 이후에도 적용되어야”

최근 성폭행 혐의로 수감생활을 해온 정치인의 출소가 수백여 건의 기사로 전해졌다. 충남도지사 시절 수행비서를 성폭행해 항소심에서 3년6개월 실형이 확정된 안희정씨 소식이었다. 성폭행 가해자의 얼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가해자 중심적 보도 관행이 다시금 문제로 떠올랐다.

안희정씨 징역형은 2019년 9월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다. 이미 정해진 출소 시점이 기사화하기 시작한 최근의 계기로는 지난달 28일 동아일보 보도가 꼽힌다. ‘[단독] 안희정 前지사, 내달 4일 형기 마치고 출소’ 기사는 안 전 지사의 지인들이 출소일에 맞춰 여주교도소 앞을 찾아 그를 맞이할 거라 예고했다. 그렇게 한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던 ‘안희정’이란 이름이 이날 포털 다음 기준으로만 34건의 기사에서 등장했다.

이후 꾸준히 언론에 등장하던 안씨 보도, 그의 출소일인 4일엔 311건에 달했다. 뉴스통신사, 종합일간지, 방송사, 인터넷신문 등을 망라한 언론사들이 그의 출소 장면을 속보성으로 다룬 것이다.

교도소를 찾은 안씨 지지자와 측근들, 안씨와 이들이 얼싸안는 장면을 다룬 기사도 양산됐다. 더불어민주당 현역 정치인들의 모습도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두부 사들고 온 안희정 지지자들..“출소해 만나니 감개무량”(뉴스1) △‘수행비서 성폭행’ 안희정 출소..민주 의원 “마음 추스르길” 女지지자 “감개무량”(서울신문) △[르포] 지지자 환영 속 만기출소 안희정..심경 질문엔 ‘묵묵부답’(이데일리) 등이다. 안씨가 성범죄 가해자라는 점을 넘어 여전히 ‘정치인 안희정’으로서 그를 기다린 이들이 있다는 메시지가 고스란히 전해진 셈이다.

▲8월4일 다음 뉴스 갈무리
▲8월4일 다음 뉴스 갈무리

심지어 일부 정치인이 안씨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제목에 올린 기사들도 있다. 4일 뉴스1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온라인 소통 플랫폼(청년의꿈)에서 한 발언을 활용해 ‘안희정 만기출소→‘임종석 기획설’ 꺼냈던 洪 “安 아까운 사람..절제 못한 탓”’이라는 기사를 썼다. 기사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만기출소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후 안씨의 ‘정치 생명’을 논하는 보도들도 이어졌다. △자유 얻었지만..안희정, 정치생명 끝나나(파이낸셜뉴스) △‘노무현의 남자’ 안희정..정치 재기 가능할까(디지털타임스) 등의 기사들이다.

안씨 소식을 다룬 기사들의 댓글창에서는 안씨의 범행을 옹호하거나, 가벼운 일로 표현하거나, 가해자인 그를 동정하는 식의 반응에서 나아가 피해자 비난까지 이르는 2차 가해성 댓글이 확산되고 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가해자가 정치인이다보니 항상 언론에 많이 나오고 어디에서나 말이나 이미지가 유통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가해자가 구속된 동안 지지자라든지 정치적 세력이 그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댓글을 쓰고, 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등의 행위를 3년6개월간 해온 상황에서 법적 공간분리 기간이 끝났다”며 “이제 일반 사회에 나와 언론에 많이 노출되고 이동이 가능한 가해자에게 많은 지지자들, 현직 국회의원까지 찾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피해자에게는 굉장히 압박이 될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 성폭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항소심 법원 판결이 나온 2019년 2월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안희정은 유죄다'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 성폭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항소심 법원 판결이 나온 2019년 2월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안희정은 유죄다'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출소 소식을 다룬 다수의 언론은 “이 보도를 피해자가 어떻게 느낄지, 피해자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지 않다”는 평가다. 김 소장은 “댓글창에서 피해자에 대한 온갖 비난을 해왔고 출소 기사는 더더욱 그런 것이 예상되는 장이다. 댓글창의 주요 이용자 성별, 연령대, 이 사건에 대해 특히 포털 뉴스를 소비했던 주요 댓글 이용자들의 경향을 봤을 때 충분히 예상된 일”이라고 짚었다.

성범죄 보도와 관련한 여러 가이드라인을 놓고 봐도 일련의 보도는 문제적이다. 한국기자협회·국가인권위원회가 2012년 마련한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은 언론이 성범죄를 보호할 때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권을 존중해 보도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한국기자협회가 여성가족부와 2014년 마련한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은 성희롱·성폭력 사건 및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사회통념이 언론보도를 통해 확산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고, 가해자로 지목된 자의 재능 및 업적 등 사건과 무관한 긍정적 부분을 부각하는 보도는 그 자체로 범죄 행위를 희석하는 효과가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최이숙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자들이 성범죄 보도 가이드라인에 나와 있는 2차 피해 가능성을 출소 상황에서는 별로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며 “성범죄 보도 가이드라인은 성폭력 사건이 공표됐을 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재판 과정, 판결 이후 발생하는 상황에 있어서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 교수는 “성범죄 보도는 향후 이런 성범죄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기사로 인해 2차 피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지향해야 하는데 출소 소식을 전하는 것이 성범죄 보도의 원칙에 비춰볼 때 적절한지 보도에 앞서 질문해봐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만약 뉴스 가치가 있는 일이라 판단한다면 보도 양태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데 마치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제대 기사와 유사하게 기사를 쓰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2018년 11월21일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 직장 성폭력사건 2심 대응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11월21일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 직장 성폭력사건 2심 대응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일부 언론이 성범죄 보도 윤리를 고민하면서 시행한 사례들은 고무적인 변화로 평가되고 있다. 안씨 출소 자체를 보도하지 않은 한겨레가 대표적이다. 이정연 한겨레 젠더팀장은 8일 칼럼(그 댓글 창은 닫아야 했다)을 통해 “(안씨가) 교도소 문을 나서자 ‘속보’를 달고 기사가 쏟아졌다. 한겨레는 안씨 출소 기사를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팀장은 이어 “언론이 호들갑을 떤 결과는 뻔했다. 댓글 창에는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차고 넘쳤다. 댓글 창은 성폭력에 대한 오래된 오해와 왜곡, 피해자 인신공격, 밑도 끝도 없는 정치적 음모론까지 더해진 2차 가해 집합소였다”며 “중요한 건, 이런 2차 가해는 언론이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포털 네이버가 언론사 결정에 따라 댓글창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는데 KBS만이 ‘댓글 오프’ 기능을 썼다는 점도 덧붙였다.

실제로 KBS는 네이버를 비롯한 다음 등의 포털, 자사 홈페이지, 유튜브 등 기사가 유통된 플랫폼의 댓글창을 모두 닫았다. 안씨 소식을 다룬 기사는 온라인 단신으로 처리하고 메인 TV뉴스에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최초 보도 이후 2차 가해성 댓글이 달리자 일선 취재진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뤄진 조치라고 한다.

▲8월8일 한겨레 기사 및 KBS 기사 댓글창
▲8월8일 한겨레 기사 및 KBS 기사 댓글창

김현석 KBS 통합뉴스룸국장은 9일 통화에서 “3월부터 기자나 보도 대상에 대한 악성 댓글이나 인격 침해, 명예훼손성 댓글이 많이 달릴 경우 취재부서에서 요청이 이뤄지면 댓글창을 닫고 있다”며 “기자 보호 차원이기도 하고 취재원에 대한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KBS는 최근 감염병(원숭이두창) 보도와 관련해서도 혐오성 댓글 우려에 따라 댓글창을 닫은 바 있다.

김혜정 소장은 “피해자는 어쩔 수 없이 2018년 직접 자신의 ‘미투’를 생방송에서 하는 선택을 했다. 고소를 바로 앞두고 어떤 일이 있을지 너무 우려를 해서 한 일인데 이를 활용한 2차 가해도 많아졌다. 3~4년간 반복적으로 2차 가해의 장이 열렸다”며 “언론사들이 제목을 어떻게 달 것인가, 뭘 인용할 것인가, 어떻게 설명하고 쓸 것인가 고민을 했어야 할 때가 이미 지났다”고 강조했다. 성폭력을 비롯한 범죄 보도에 대한 전문성을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이어 “그동안 (문제적 보도를 한) 언론사에 공문도 보내고 삭제 요청도 해왔다. 삭제를 해주신 곳도 여전히 안 한 곳도 있다”면서 “앞으로 고민을 하겠다고 답변을 주는 곳들을 보면서는 개선하려 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런 긍정적인 변화도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이라고 짚었다.

※ 알려드립니다
미디어오늘은 범죄 피해자가 언급되거나 등장해 2차 가해가 우려되는 보도의 댓글창을 비활성화할 수 있다는 보도 가이드라인에 따라 내부 논의를 거친 결과 해당 기사의 댓글창을 운영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사에 관한 의견은 news@mediatoday.co.kr로 남겨주시면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디어오늘 보도 가이드라인 : http://www.mediatoday.co.kr/com/com-5.html

2022년 8월10일 오후 17시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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