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 “어느 한쪽 죄악시해서는 해결 안 돼”
“조선업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기사를 통해 균형 잡아야”
조선일보, 독자위원회 회의 다음날 ‘집회 현수막 강제철거 장치 마련해야’
노동조합 시위 ‘불법’으로 규정한 독자 기고 지면에 실어

조선일보가 독자권익보호위원회(이하 독자위원회)의 거듭되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의 집회·파업을 비판하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조선일보 독자위원회는 지난달 회의에 이어 이달 8일 열린 회의에서도 노동조합 파업 보도를 할 때 구조적 문제를 진단해야 한다고 비평했다.

조선일보가 12일 공개한 8월 독자위원회 기사에 따르면 한 위원은 대우조선해양 파업 관련 기사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이 위원이 언급한 기사는 조선일보가 7월23일 작성한 ‘툭하면 ‘독’ 불법점거 뒤 생떼 되풀이.. 대우조선 위기 내몰았다’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파업으로 사측이 8000억원대 손실을 보았으며 손실을 복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일보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일보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이 위원은 “조선일보는 대우조선해양 파업이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손실액과 법적 책임 논란을 중심으로 기사를 쏟아냈다”며 “(사측) 손실액이 8000억원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갈등을 부추기는 듯했다. 노사 문제는 어느 한쪽을 죄악시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이 위원은 “원·하청 간 불공정 계약에서 비롯된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 등 조선업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기사를 통해 균형을 잡아야 한다”며 조선일보가 7월23일 작성한 ‘정규직·하청 임금차 2배.. 고용 이중구조 개혁해야 극단적 파업 막을 수 있어’ 기사를 모범사례로 들었다.

조선일보는 독자위원회 회의 다음날인 9일 사설 ‘욕설·비방으로 거리 뒤덮은 현수막 공해, 잘못된 법 때문’에서 노동조합이 집회 중 내건 현수막을 강제 철거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집회·시위의 자유도 다른 사람 인권을 침해하고 삶을 해치는 수준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며 “시위용 현수막 공해는 이제 선을 넘었다. 제한 규정을 만들고, 실제로 집회·시위가 열리지 않는 시간에는 현수막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관련 법령을 보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선일보는 법령을 위반한 현수막은 강제로 철거할 수 있도록 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조선일보는 지난 10일 노동조합의 시위를 규탄하는 독자 기고문을 지면에 게재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박동현씨는 기고문에서 “경찰이 최근 강원도 홍천 하이트진로 공장 앞 도로를 차단하며 불법 시위를 벌여온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 등 시위대를 강제 해산했다”며 “경찰의 이번 조치는 무너진 법치를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국민의 호응을 받았다. 국민들은 노조의 막무가내식 불법 시위에 신물이 날 정도”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툭하면 도로를 점거하고 공장 가동이나 제품 유통을 막는 행위는 근절되어야 한다”며 “불법 점거와 영업 방해로 수많은 손실을 끼친 노조에 면죄부를 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가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작성한 노동조합 파업, 집회 관련 지면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가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작성한 노동조합 파업, 집회 관련 지면 기사 갈무리

독자위원회가 조선일보의 노동조합 관련 기사에 균형감을 요구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독자위원들은 7월11일 열린 회의에서 △화물연대 파업 기사는 노사갈등을 부추기거나 통합을 저해하는 논조가 강해 보인다 △기획 기사도 노사 협력과 상생보다 갈등을 부추기는 느낌이다 △노사 간 건설적인 화합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피해액을 1조6000억이라고 표현한 것은) 잘못되었다. 1조6000억은 ‘생산 출하가 지연된 총액’이고 공중으로 날아간 돈이 아닌데, 피해라고 하면 노사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독자위원회는 8월 회의에서 조선일보가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 가져오는 정치적 함의를 분석하고, 정권 비판 보도를 할 때 ‘인용보도’를 넘어 적극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 위원은 “(조선일보는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관련해) 정책 혼선과 인사 실패, 개인적 스타일까지 다각적인 분석을 했다”며 “나아가 지지율 하락의 정치적 함의 등을 더 심층 분석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예컨대 대의민주주의에서 국정 지지율이 선거에 미치는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2024년 총선과 공천, 원내 역학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위원은 조선일보 정치기사가 ‘소재주의’에 빠진 것 같다고 꼬집었다. 조선일보가 정치적 현안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위원은 “기자가 이런 기사를 써야지가 아니라 특정 정치인이 한 말을 인용해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요즘 핫이슈는 포퓰리즘보다 무서운 네포티즘(자기 친족에게 관직·지위를 주는 일)이다. 그렇다면 기자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려야 하는데 야당이 얘기하는 것을 인용하는 식으로 보도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이 위기를 못 넘으면 지지율 회복이 어렵다’고 언론이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면서 “언론이 적극적으로 이슈를 제기하고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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