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실패’ ‘미신청’에 관심 쏠리며 정부도 ‘땜질처방’ 지적
“기초생활보장제도 문제 놔둔 채, 죽음 반복될 것”

“세 모녀는 월 1만원대 건강보험료를 16개월째 못 내면서도 긴급복지·생계비 지원을 신청하지 않았다.”
“정부의 현금성 복지 예산 규모는 110조원에 이르지만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지 못했다.”

수원에 거주하던 세 모녀가 난치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숨진 사건에 언론은 ‘정부는 왜 이들을 발굴하지 못했나’에 질문을 쏟아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60·40대 세 모녀가 주검으로 발견된 21일 이후 전국 주요 종합일간지와 방송사에서 이들을 ‘발굴’이란 열쇳말로 보도한 기사만 208건에 이른다.

그러나 사회보장제도 자체가 미비한 현실에서 세 모녀의 죽음 원인으로 ‘사각지대 발굴 실패’에 몰두하는 것은 ‘우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발굴 위주의 행정시스템 뒤엔 높은 선정 기준, 낮은 보장 수준, 근본적인 빈곤 대책 부족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빈곤사회연대는 지난 24일 세 모녀를 추모하는 성명에서 “많은 이들이 ‘왜 발견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질문하지만 우리는 이 질문에 수정을 제안한다”며 “이는 이들이 복지제도를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외됐다는 잘못된 사실에 뿌리 두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19년 8월 서울 관악구의 40대 북한이주민 여성과 6살 아들 모자가 아사한 채 발견된 뒤 빈곤사회연대는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관악구 모자 추모제를 진행했다. 사진=빈곤사회연대
▲지난 2019년 8월 서울 관악구의 40대 북한이주민 여성과 6살 아들 모자가 아사한 채 발견된 뒤 빈곤사회연대는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관악구 모자 추모제'를 진행했다. 사진=빈곤사회연대

‘발굴’ 또는 ‘사각지대’를 내세운 프레임은 세 모녀와 같은 빈곤층이 잘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단체는 “(세 모녀가) 복지제도를 신청한 사실이 없다는 것은 비극에 빠진 이들이 능동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암시하며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다”며 “(이를 강조하면) 빈곤층이 어딘가 숨어 있다는 착각을 안겨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이는 빈곤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했다.

‘발굴’되고도 지원 받는 경우 1.64% 그쳐

정부가 2년 전 마련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도 마찬가지 관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부는 2014년 송파 세 모녀의 죽음 이후 건강보험료, 수도와 광열비 등 체납정보를 수집해 위기 가구를 선정하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그러다 이번 수원의 세 모녀가 숨진 소식이 알려지자 위기징후 정보를 34종에서 39종으로 넓히고, 고위험군이 사는 곳을 알 수 없을 때 경찰을 동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빈곤사회연대는 이 같은 발굴 시스템이 실패를 거듭해왔다고 지적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는 임대료나 공과금을 체납하지 않았다. 지난 4월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지병으로 숨진 채 발견된 ‘창신동 모자’는 공과금을 체납했지만 집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제도 대상에 들지 못했다. 2019년 북한이주민 한모씨와 6살 아들이 아사한 채 발견된 관악구 모자는 재개발 임대아파트에 거주해 정보 수합 대상에서 빠졌다.

▲고물가་고금리་고유가 민생위기,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확대를 위해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 기자회견사진=참여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은 지난 7월19일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고물가་고금리་고유가 민생위기,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확대를 위해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참여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단체는 “우문에 의해 정부는 사회복지통합전산망에 통합하는 정보의 갯수만 늘리고 있다”며 “발굴하더라도 사회보장제도의 미비로 지원할 방도가 없다는 사실이나, 몇 개의 체납정보 합이 ‘누구의 빈곤이 더 심각한가’ 밝히는 기제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은 가려진다”고 했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2015년 12월부터 2016년 6월까지 빅데이터로 발굴한 취약계층의 숫자는 21만 명이었지만 긴급복지나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연결된 경우는 3444명, 1.64%에 그쳤다는 것이다.

언론이 ‘발견 실패’에 초점을 두면서 현행 복지 제도나 예산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일례로 조선일보는 24일 “올해 정부의 사회복지 분야 예산은 195조원에 이른다. 어마어마한 규모”라며 “촘촘한 취약 계층 찾기와 서비스망이 필요하다”고 했다.

큰 숫자로 보이지만 착시다. 195조원은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포함한 의무지출을 포함한 예산이다. 실상 OECD에 따르면 한국의 공공 사회 복지지출 규모는 2019년 기준 GDP 대비 12.2%로 OECD 평균치 20%에 크게 못 미친다.

발굴 프레임 뒤에 ‘부정수급 색출론’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빈공층이 소득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기 전에 공공 안전망을 이용하지 않는지’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이 행정복지센터에 찾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먼저 대출을 택하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빈곤사회연대는 지난 7월29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 독단་폐쇄 운영 규탄, 기준중위소득 대폭인상,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 요구”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사진=빈곤사회연대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은 지난 7월29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 독단་폐쇄 운영 규탄, 기준중위소득 대폭인상,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 요구”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사진=빈곤사회연대

그는 발굴 프레임 뒤에 ‘부정수급 색출론’이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붙는다고 지적했다. “민감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계속해 모으는 것이, 빈곤층이 자신이 쓸모 없고 무능력함을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것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빈곤사회연대는 “낮은 선정기준과 보장수준, 잦은 탈락 위기와 부정수급자가 아닌지 의심하는 시선은 빈곤층을 공격한다”며 “장애가 있거나 아픈 이들과 그 가족이 병원비와 돌봄 필요에 압사당하는 사회에서 이를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각종 사회보장제도 선정 기준으로 쓰이는 기준중위소득부터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준중위소득은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76개 사회보장제도의 선정기준으로 쓰이고 생계급여 규모를 결정하는데, 이를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최근 3개년 평균 인상률을 반영하도록 한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지 않고 임의로 낮게 책정해왔다. 서류상 가족의 부양능력이 없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생계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가 당면 과제라는 지적이다.

빈곤사회연대는 “빈곤층 복지제도가 ‘최소한’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역량 안에서 ‘가능한 최대로’ 발휘되어야 한다는 목표의 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마주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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