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엔 부잣집에서….”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리다 삶을 접은 수원 세 모녀의 빈소를 스케치한 중앙일보(인터넷판)가 머리기사로 올린 큼직한 표제다(8월25일). 몇몇 언론도 그렇게 보도했다. 기자와 편집자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세 모녀를 두 번 죽이는 행태다. 실제로 수원의 세 모녀만이 아니다. 8년 전 송파 세 모녀도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수원의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는 수첩에 적바림을 남겼다. “그냥 가려 했는데 한 자 적는다”며 경제 활동을 하던 오빠가 병사하고, 몇 달 뒤 아버지마저 숨진 사연을 담았다. 각각 난소암과 희귀병에 걸린 어머니와 언니를 책임져야 했던 정신적 고통도 담았다. 그냥 떠나려다가 유서를 적을 때 그 딸의 설운 심경을 헤아리면 콧잔등이 시큰해온다.

▲ 8월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암·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에 시민들이 찾아와 조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8월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암·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에 시민들이 찾아와 조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수원과 송파의 여섯 모녀 모두 이 땅의 딸들이다. 그 딸들의 서러운 죽음은 정치 현실을 되짚게 한다. 문재인 정부를 거쳤어도 민중이 살기다툼에 시달리는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촛불로 대통령은 물론 입법 권력까지 얻은 민주당이 무엇을 했는지 분노하는 이들에 공감한다.

그래서다. 대다수 언론이 ‘극렬 팬덤’ 따위로 조소하는 ‘개혁의 딸(개딸)’에 주목하고 싶다. 국힘당 기관지와 다름없는 언론이 흠집 내기에 앞장서 더 그렇다. 그 신문 출신의 여대 여교수 글이 압권이다. 여기서 ‘여교수’란 말은 성차별 의도가 아니다. ‘개혁의 딸’에 견준 말이다. 여교수는 조선일보에 기고한 ‘커피하우스 칼럼’(8월26일)에서 “개인을 숭배하는 이상한 무리가 ‘그 인간이 무조건 좋다’를 외치는 섬뜩함 위로 ‘윤석열 인간 자체가 싫다’는 김여정이 오버랩”된다고 쓴다. “단 한 사람의 ‘자유인’을 위한 일사불란한 매스게임을 보는 것 같다”고 강조한다. 지난 대선에서 노골적으로 특정후보를 지지한 여교수가 ‘이상한 무리’로 훌닦은 이들은 문맥상 ‘개딸’로 보인다. 케케묵되 교묘히 변주한 색깔몰이다. 아무리 글쓰기가 ‘자유’이고 더욱이 조선일보 기자출신이라지만 언론학자의 글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녀가 ‘공론장’을 들먹이기에 더 생게망게하다.

▲ 8월26일, 조선일보 ‘박성희의 커피하우스-자유라는 나무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 8월26일, 조선일보 ‘박성희의 커피하우스-자유라는 나무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내가 아는 개혁의 딸들은 ‘친문 의원’ 중심의 민주당이 기득권화 되었다고 비판한다. 문파들 가운데 개혁 성향 강한 지지자들이 새로 뭉친 셈이다.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을 혁신하기 위해 정치인 이재명을 지지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대선 직후에 꼬박꼬박 당비를 내는 당원으로 대거 가입했다.

개혁의 딸들은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이 문재인 정부를 거치고도 수원에서 재현되는 바로 그런 상황을 해결하려는 정치운동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삶이 서러운 이 나라의 딸들을 자살로 모는 한국 정치를 바꾸려는 결기다. 민주당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이유다. 한국 정치의 변화를 국힘당에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개혁의 딸들에겐 자신을 ‘김여정’이나 ‘일사불란한 매스게임’으로 색칠하는 언론은 개혁 과제다. 확인되지 않은 사안들로 집요하게 민주당 분열을 조장하는 언론권력에 비판 의식도 사뭇 강하다.

그렇다. “다음 생엔 부잣집에서 태어나라” 따위의 언론에 맞서 “부잣집에서 태어나라?”를 물어야 옳다. 다음 생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자살률 1위 출산율 꼴지’의 참극을 벅벅이 정치로 바꿔내야 한다. 그때 고통 받는 민중들이 살아갈 희망도 자랄 수 있다. 민주당 정권과 의원들이 촛불의 기대에 어긋났기에 제1야당 개혁은 시대적 요구다. 흠집이나 조소에 앞서 여성정치운동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개딸의 의미 있는 활동도 최소한 균형 있게 보도해야 한다.

개혁의 딸들은 철학이 없던 ‘대깨문’과 달라 보인다. 지금까지 보여준 문제의식과 현실 감각을 더 깊은 민주주의 철학으로 벼려 가리라 믿는다. 새로 선출된 이재명 대표와 개혁의 딸들이 민주당을 슬기롭게 바꿔가기 바란다. 삶이 서러운 딸들을 위해, 더 나아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딸과 아들을 위해 그렇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