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근 서울시의회에 TBS 설립 및 운영 조례를 폐지하는 안이 제출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TBS 문제는 시의회 교체로 인한 정치권력의 언론 압력 문제 혹은 공정성 시비를 바탕으로 한 저널리즘 가치 문제로만 인식하는 것은 결국 프레임 싸움 대립 구도의 관점에 따라 해당 사안을 협소하게 볼 위험이 높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언론장악’ 대 ‘공정방송’이라는 프레임 싸움을 넘어서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으로 출범한 TBS의 지역 공영방송 위상과 역할을 재고하도록 인식의 폭을 넓히고자 외부 필진의 글을 4편에 나눠 실습니다. - 편집자 주

 

2019년 10월15일. 조국 장관이 사퇴를 발표했던 다음 날 아침 7시였다. 95.1MHz TBS FM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조 장관의 육성으로 녹음된 ‘홀로 아리랑’의 음원으로 시작했다. 바로 이어진 뉴스 브리핑은 약 5분간 진행자 김어준씨의 사퇴 관련 언급으로 채워졌다. 그는 조 장관이 ‘가까운 취재 대상’이자 ‘원래 알던 지인’이라며 자신과의 관계를 내세운 후 조 장관의 심경을 언급했다. “‘검찰개혁은 조국만 할 수 있냐?’ 말은 쉽게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하는 사람 중에는 누구도 이런 상황을 버틸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거에요.” 이어서 그는 사퇴의 결정적인 배경으로 9월28일 시작된 촛불집회를 거론하며 조 장관에게 ‘감격과 위로’를 준 계기였다고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아, 시민들이 있구나. 시민들이 감시자가 계속 되어서 내가 없더라도 검찰개혁은 계속 이어지겠구나” 라는 생각을,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낀 거에요. 힘도 얻고 위로도 얻고 동시에 “아, 내 뒤에도 가능하다.” 그래서 ‘조국은 갔지만 내가 조국이다’ 이런 문장들을 사람들이 많이 말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임무의 완수를 시민들이 하지 않겠나. 감시자의 역할을 하면서. 

수백만 광장의 촛불로 정권을 이양 받은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을 법무부 장관 임명 문제로 협소화시켰을 때, 보수언론은 이를 서초동과 광화문이라는 대립항으로 틀 지웠다. ‘무엇이 검찰개혁인가’의 문제가 ‘누가 검찰개혁을 할 수 있나’라는 인물의 문제로 전환됐다.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큰 허점인 팬덤 정치와 미디어의 선정성이 만나기에 최적의 시기였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는 이 기간 동안 조 장관과의 사적 관계를 스스럼없이 공표했다. 급기야 조 장관이 사퇴한 다음 날, 그는 사태와 전혀 관련이 없는 8년 전 조 장관의 노래로 ‘뉴스공장’을 시작했고, 독심술사가 되어 조 장관의 심경을 대변했다. 김어준씨의 이런 화법은 조 장관의 지지층을 그와 동일시한 호명에서 극에 달했다. ‘시민이 감시자가 되어서 내가 없더라도 검찰개혁은 계속 이어지겠구나’라는 추론은 어떤 근거도 없는 상상일 뿐이었다.

▲ 김어준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사진=TBS 제공
▲ 김어준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사진=TBS 제공

정치적 편향을 넘어선 담론의 정치 행위

동시간대 라디오 청취율 1위 방송 진행자의 이 발언은 일군의 언론학자들이 말했던 ‘새로운 저널리즘’이나 ‘단 하나의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공정성’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김어준씨의 화법은 특정 정당에 대한 편향이 아니라 시민이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분열됐다고 말하는 보수언론의 틀짓기를 더욱 강화하고, 이를 통해 순교자와 같은 인물을 만들어 강력한 팬덤을 유지하는 담론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이는 ‘뉴스공장’이라는 시사 프로그램의 편성 문제가 아니며 보수언론과 같은 정파적 불공정성의 문제 또한 아니다. 김어준씨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긴급한 상황에서 “코로나19는 대구사태이자 신천지사태”라는 발언으로 방역 문제를 정치적 프레임으로 만들었다. 또한 그는 2021년 보궐선거를 앞두고 고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피해자가 가진 기자회견에 대해 “메시지의 핵심은 민주당을 찍지 말라는 것”이라며 2차 가해 논란을 불렀다. 팬덤 정치를 굳건히 하려는 김어준씨의 화법은 모든 이슈를 제도권 정치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블랙홀로 빨아들였다. 저널리즘에서 분석, 추론, 의견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이 또한 아무리 적더라도 입증된 사실에서 시작해야 한다. 지난 8년을 끌어온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에서 김어준씨가 영화까지 개봉하며 내세운 ‘고의침몰설’의 여파는 아직도 상흔으로 남아 있다. 청취율 1위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근거 없는 추론과 해석으로 만들어 낸 허위와 음모의 정치 담론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더라도 저널리즘이라 부를 수 없다.

지역이 없는 지역, 서울과 TBS

수많은 학계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실현가능한 지역 저널리즘 모델은 아직 제시되지 못했다. 도리어 올해 초 시작된 지역 언론사의 네이버 입점 경쟁이 보여주듯, 지역 언론은 중앙정치와 전국 뉴스 아이템을 통해 ‘독자의 탈지역화’를 유일한 대안으로 삼고 있다. 산단으로 중심으로 하는 지역 자본, 협소한 계층에 국한된 지역 정치와 정책, 각종 축제와 대규모 행사를 홍보하는 지역의 상품화가 지역 저널리즘의 현주소다.

그러나 서울은 전혀 다른 지역이다. 천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25개 자치구로 나뉘어져 있고, 부동산 정책에 따라 진출입이 반복되는 유동하는 도시다. 사람들은 이 중 어떤 곳에도 뿌리내리지 못하지만,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자본은 도시 정비와 주택 공급 정책으로 호시탐탐 진입을 노린다. 오직 주택과 토지를 가진 이들,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받아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는 이들만이 ‘시민’으로 대접받는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서울을 지역으로 삼는 TBS가 빠지기 쉬운 유혹이 여기에 있다. 오래된 지역 자본은 부재하고 시민이 참여할 지역 정치의 공간은 산재되어 있다. 시민들이 아파트 시세에는 민감해도 자치구장과 의회 비리는 관심 밖인 이유다. 서울이 곧 한국이라는 ‘서울 공화국’은 서울시민에게 일상의 공동체보다 중앙정치, 입시제도, 부동산정책이라는 탈지역 의제에 더 민감하게 만든다. 서울시 사업소 소속이었던 tbs가 시정홍보 매체였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역의제를 만들어야 할 보도국은 서울시 교통생활정보 전달에만 몰두하고 다른 프로그램은 명확한 청취자층을 찾지 못하는 지역 없는 지역 방송이었던 것이다.

▲ TBS 사옥. 사진=TBS
▲ TBS 사옥. 사진=TBS

TBS 지역 저널리즘의 책무

지역을 찾지 못하던 tbs에게 2016년 말 마주한 촛불정국은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특히 같은 해 9월26일 첫 방송된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정체성을 찾지 못하던 tbs에게 킬러 콘텐츠가 되었다. 몇 개월을 이어진 촛불의 광장과 여의도 국회란 다른 지역방송은 뒤쫓기 힘들었던 인접한 취재원이었다. 대통령 탄핵 이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그리고 총선까지의 국면은 모든 지역 방송사가 바라던 지상파 방송3사의 영향력에 근접한 지위를 tbs와 구성원들에게 안겨주었다. 재단 출범 이후에도 TBS가 <뉴스공장>을 비롯한 시사 콘텐츠가 중앙정치와 의제에 집중한 것은 스스로가 ‘서울 공화국 방송’이라는 탈지역화의 인정이기도 했다.

오세훈 시장의 공약과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의 조례안 발의로 맞게 된 TBS의 위기는 지역 없는 지역방송의 한계이자 중앙에 종속된 한국의 지역정치가 처한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뉴스공장’ 등 시사 콘텐츠는 재원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못한 TBS의 거의 유일한 수익원이었고 인지도 확보의 가장 빠른 전략이었다. 이런 전략은 역설적으로 서울시 예산 폐지라는 단 몇 줄의 통보만으로도 흔들리기 쉬운 약점이 되었다. 

TBS 위기의 중심에는 ‘뉴스공장’ 등 탈지역화된 정치 콘텐츠가 자리하고 있다. 위기의 해법은 어렵지만 분명하다. 팬덤 정치에 종속된 시민에서 벗어나 삶의 정치에 참여할 시민의 구성이 그것이다. 서울시 의회의 왜곡된 대표성을 보완하고 중앙정치와 지역정치의 연관성을 냉철하게 설명하는 책임이 곧 TBS 저널리즘의 책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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