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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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늑시라는 말이 있다.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이 안 가는 시간을 뜻한다고 한다. 아직 빛이 충분히 밝지 않아 어슴푸레할 때, 저 멀리 보이는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늑대라면 도망가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예산에도 개늑시가 있다. 바로 예산안 보도자료가 나오고 아직 예산안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다. 8월30일에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 편성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한다. 그리고 국회에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하는 시기는 9월3일이다. 결국, 예산안을 보지 못하고 예산안 보도자료만 보고 기사를 써야 하는 것이 기자의 숙명이다. 정부는 어쩔 때는 내년도 예산안은 순하디순한 개라고 주장한다. 또는 무섭고 적극적인 늑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그 둘을 구별하기는 어렵다. 정부 주장을 그냥 검증 없이 충실히 쓸 수밖에 없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최소한 정부 주장의 근거가 맞는지는 검증해야 한다.

정부의 예산안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3년 예산안은 “재정 기조를 전면 전환”하고 “주요세목 세입기반 확충”에 따라 총수입은 16.6% 증가했으며,”역대 최대 규모의 지출 재구조화” 등을 통해 국가채무 비율은 전년 대비 개선되었다고 한다. 이 주장이 맞는 말일까? 검증해 보도록 하자.

첫째, “재정기조를 전면 전환”의 의미는 지난 정부는 줄곧 확장재정을 펼쳤으나 이번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로 전환한다는 의미다. 그 근거로 정부는 정부별 ‘총지출 증가율 평균’자료를 선보인다.

▲ 각 정부별 총지출 평균을 통해 작성한 보도자료
▲ 각 정부별 총지출 평균을 통해 작성한 보도자료
▲ 2010년 이후 연도별 총지출 증가율
▲ 2010년 이후 연도별 총지출 증가율

왜 구태여 ‘정부별 총지출 평균’이라는 복잡한 개념을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평범하게 연도별 총지출 증가율을 보자. 내년도 예산안 5.2%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예외적인 높은 지출 증가를 제외하고는 예년 수준이다. 실제로 2010년부터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까지의 총지출 증가율 산술평균값은 5.2%다. 특히, 16년 17년 낮은 증가율이 눈에 띈다. 그런데 17년 예산안이 발표될 때, 정부와 언론은 한 목소리로 역대 최대 ‘슈퍼 예산’이라고 주장했다.

▲ 정부 보도자료에 따라 2017년도의 ‘긴축예산’을 ‘슈퍼예산’이라고 표현한 언론들
▲ 정부 보도자료에 따라 2017년도의 ‘긴축예산’을 ‘슈퍼예산’이라고 표현한 언론들

즉, 2017년도 3.7% 증가한 예산안에 정부가 ‘슈퍼예산’이라는 서사를 보도자료에 넣으면, 언론은 이를 ‘슈퍼예산’이라고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2023년 5.2% 증가한 예산안에 정부가 ‘긴축예산’이라는 서사를 보도자료에 넣으면 언론은 이를 ‘긴축예산’이라고 표현한다. 늑대가 개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올해 추경보다 적은 예산안을 편성하는 것은 “13년만에 처음”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13년씩이나 갈 것도 없이 올해 문재인정부가 편성한 올해 예산안도 전년 추경보다 적다.

[관련기사 : [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내년 예산 13년 만에 감축 언론보도, 사실일까?]

둘째, ‘주요 세목의 세입 기반 확충’으로 내년도 세입이 증대한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 세제개편의 특징은 ‘엄청난 규모의 감세’다. 정부는 5년간 13조 원 줄어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5년간 줄어드는 금액은 13조 원이 아니라 60조 원이다. 

[관련기사 : [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정부 세제개편안 발표, 세수 감소는 13조? 60조?]

특히, 정부는 세입예산안을 발표할 때는 항상 올해 추경예산 기준으로 내년도 세입 증가율을 계산해왔다. 세입예산은 세출예산과는 달리 자원의 배분(allocation)이 아니라 추정(estimation)이다. 추경을 통해 추정치가 변경되었으면, 변경된 수치를 기준으로 증가율을 계산하는 것이 맞다. 내년도 세입예산안을 실제 세입규모인 추경 규모가 아닌 정부가 과소 추계한 올해 본예산 기준으로 13%가 늘었다고 말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 내년도 세입이 본예산 대비 증가한 이유는 세입기반 확충이 아니라 올해 본예산을 실제와 다르게 과소추계했기 때문이다.

셋째, ‘역대 최대 규모의 지출 재구조화’를 한다고 한다. 이는 상당 부분 코로나19 일시적 지출을 줄인 측면이 크다. 특히, 융자사업을 이차보전으로 전환한 부분도 크다. 기재부가 집계하는 ‘총지출’기준은 융자사업 전액을 정부지출 규모에 포함시킨다. 이는 우리나라 기재부만 취하는 매우 독특한 방식이다. 즉, 정부가 1조를 빌려주고 약간의 이자까지 쳐서 1조를 돌려 받으면서 정부지출 규모가 1조 원 증대되었다고 통계에 포함시킨다. 이런 1조원의 융자사업을 이자만 지원하는 이차보전 사업으로 전환하면, 경제적 실질은 아무 변화 없이 정부 지출 규모 통계는 크게 줄어든다.

넷째, 이러한 재정 개혁 등을 통해 국가채무 비율은 전년도(올해) 보다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나 이도 사실이 아니다. 올해 본예산 국가채무 비율은 GDP 대비 50%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2차 추경을 통해 총지출 규모를 무려 55조 원 증대했으나 국가 채무 비율은 오히려 49.7%로 낮아졌다. 이는 본예산 세수를 지나치게 과소추계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 채무 비율은 올해 2차 추경 49.7%보다 49.8%로 다소 높아진 것이 맞다.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월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월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는 예산안 발표전에 예산안 보도자료를 통해 서사를 만든다. 예산안을 확인할 길이 없는 개늑시 동안에는 정부의 서사를 충실히 따르는 언론보도가 많다. 그러나 개는 개고 늑대는 늑대다. 예산안을 보지는 못했지만 정부의 설명의 빈틈을 정확히 찾아내는 언론 보도를 기대해 본다. 정부는 앞으로는 예산안과 예산안 보도자료를 동시에 발표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최소한 예산안 보도자료 제목을 ‘예산안’이라고 쓰지는 말자. ‘예산안 설명 보도자료’라고 정확히 쓰자. 물론 9월3일 두꺼운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다고 하더라도 그 두꺼운 예산안을 꼼꼼히 분석해보는 기자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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