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국가가 만든 지옥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 중 하나다. 그런데 여성은 시민에 포함되지 않는걸까? 국가가 여성에 대한 대한 폭력의 근본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를 포기하면서, 많은 시민들을 지옥으로 밀어넣고 있다. 특히 여성살해와 성폭력, 성착취의 사안은 근본적인 문제를 인지하고 장기적인 해결을 위한 법적, 제도적, 문화적 노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애초 진짜 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없는 국가는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2016년 강남역살인사건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야 했던 여성살해(femicide) 사건이지만, 국가는 ‘성별이 구분되지 않은 공용화장실’을 사건의 원인으로 규정했다. 문제를 잘못정의하니 여성살해를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여성을 '몸뚱아리'로만 여기며 당당히 여성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서사를 책으로 냈던 사람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전관으로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했던 2017년 문재인 정권 내내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그의 임명을 반대하는 정당한 문제제기는 문 정권에서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서울여성회에서 마련한 '강남역 살인사건' 5주기 온라인 추모 공간. 사진=서울여성회
▲서울여성회에서 마련한 '강남역 살인사건' 5주기 온라인 추모 공간. 사진=서울여성회

2018년, 웹하드에서는 피해자들의 불법촬영물을 팔고, 피해자들에게는 돈을 받고 불법촬영물을 지워주는 디지털장의업체를 운영했던 양진호의 '웹하드 카르텔'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에도 양진호의 갑질만 부각이 되었을 뿐 불법촬영물을 통한 성착취와 피해자들의 '죽음'은 그 다음이었다. 수많은 평범한 여성의 몸이 돈벌이가 되었던 이 웹하드카르텔의 중심에 있던 양진호는 단지 5년 형을 선고받았다. 불법촬영물을 소비하며 이 범죄를 완성한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문제의식도 가질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다.

2019년 여성 연예인에게서 주체성을 빼앗고, 욕망의 대상으로만 남아야 한다는 억압에 의해 여성 연예인이 '죽임'을 당한 사건도 있었다. 가부장제 자본주의에서 여성의 몸은 욕망의 대상이 되고 돈이 되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산업에 의해 여성의 몸은 주체성은 삭제된 채 상품화되고 도구화된다. 말 잘듣는 움직이는 ‘인형’으로 존재하는 여성이 되길 요구받으며, 주체로서 자신을 드러내거나 혹은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순간 타락한 존재로 낙인되고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충격적인 연예뉴스로 소비되고 사라졌다. 이중 취약성을 가진 여성 연예인에 대한 문제해결을 위해 나섰던 것은 2021년이 되서야 비로소 서지현 검사가 닻을 올렸던 디지털성범죄TF에서였다. 걸그룹 출신의 가수가 TF위원이 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 마저도 윤석열 정권 이후 서지현 검사를 TF에서 내쳤고 이후 폐지되었다. 

2020년 N번방사건은 여성이 성적 대상과 도구로 인지되는 사회에서 불법촬영물을 ‘국산 포르노’로 명명하며 이를 생산하고 공유하며 즐기고 심지어 천문학적인 돈까지 벌 수 있었던 한국사회의 문화와 구조 가운데서 등장했다. 그러나 이 역시 구조의 문제는 외면된채 몇몇 “악마”들에 의한 사건으로 규정되었다. 이 사건으로 조주빈, 문형욱 등을 잡았고 ‘N번방 방지법’을 만들었지만, 처벌중심적인 해결방식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여성을 성적욕구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것이 허락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형태나, 성교육과 인권교육을 별개의 것으로 여기는 교육부나,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범죄를 방조하는 텔레그램과 같은 무책임한 해외기업은 변화 없이 그대로였다.

절대로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것으로 여겨졌던  N번방 사건은, 조주빈이 잡히던 당시에도 이 사회를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 이어졌다. 더 악랄하고 교묘해지는 가해자들은 대범하게 범행을 계속했다. 포털사이트의 질문코너에는 조주빈의 형량이 과도하다며 불쌍하다는 의견들이 올라왔다. 조주빈에 공감하며 안타까워하는, ‘꼴랑 채팅한 것 갖고 범죄조직이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최진성 감독은 그의 다큐멘터리 <사이버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를 통해 N번방을 사이버지옥으로 호명한 것처럼, 협박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처참한 사이버지옥을 만들어내는 자들은 조주빈과 문형욱이 감옥으로 간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자리를 꿰차 다른 피해자들 만들어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제공

범죄로 돈을 버는 자본의 면죄부

이러한 피해가 양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보안을 이유로 하여 텔레그램과 같은 업체들은 그 범죄를 방기하고 조장하며 돈을 벌고 있다. 범죄자들은 텔레그램과 같이 범죄를 '안전'하게 저지를 수 있는 앱들을 계속 찾아내고, 추적이 어려운 유령IP들을 만들며 범죄를 이어나간다. 국제적으로 범죄수사 공조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애초에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확인이 어려운 유령IP만 건내지고 수사는 미제사건으로 등록되고 있다.

애초에 이러한 사이버 범죄가 많고, 국제수사공조가 중요하지만 공조가 잘 되지 않고 어떠한 정보도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보니, 일선의 경찰에서는 피해자가 신고를 하더라도 ‘나중에 신고철회를 하러 방문하셔야 할수도 있다’는 말을 하기까지 한다. 이것이 오늘날 사이버 성폭력 범죄의 현실이다.

잡힐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잡히더라도 피해자들이 자신의 죄를 충분히 밝히지도 못할것이라 자신하는 가해자들은 너무나 당당하다. 조주빈도 그랬고, 문형욱도 그랬다. L은 계속해 텔레그램 아이디를 바꿔가며 자신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대범하게 범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자본에게 주어지는 면죄부를 끝내야 한다. 철저하게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며 범죄에 방조하는 기업이, 그러한 선택을 지속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국제적으로도 목소리를 모아야 겠지만, 소비자로서도 그러한 기업을 거부해야 한다.

두려움을 틈탄 잘못된 성교육의 상품화

국가가 손을 놓아버린 성교육은 이 ‘사이버지옥문’을 완성했다. 국가의 무관심과 무지로 인해 공교육 내의 성교육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학교 곳곳의 소수의 훌륭한 교사를 만난 청소년들만 ‘우연히’ 좋은 성교육을 경험했을 뿐이다. 양육자가 내 자녀가 성범죄자가 되지는 않을까, 내 자녀가 성범죄 피해자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된 사이 성교육은 좋은 ‘상품’이 되었고, 소비자가 되는 양육자의 선호에 따라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성교육이 팔리는 사회가 되었다. 그렇게 황당하게도 성교육은 인성교육이 되었고, 엄마는 아들의 성교육을 할 수 없다는 잘못된 이야기가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동시에 철저하게 남성중심의 자본 논리로 지배되는 사회에서 상품화할 수 있는 여성의 몸, 보호의 대상이 되는 여성의 몸을 구분하여 인식되게 만들었고 여성의 주체성은 삭제되었다. ‘피해자가 되지 않게 조심하라’는 교육이나 “순결”을 강조하는 교육은 신체적 접촉이 없이도 일어나는 디지털성범죄에 대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취약한 위치에 놓이면서 동시에 주체성까지 삭제된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이 사회를 안전하게 여기지 못하며 불안감이 일상이 되는 지옥으로 떠밀린다.

성교육은 인권교육이어야 한다

N번방 사건과 같은 류의 성범죄에서 발견하게 되는 가장 무서운 점은, 사회적 취약성이 높을수록 더 구체적으로 더 가까이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확인된 피해자 6명이 모두 청소년(미성년자)로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에 따르면 이들은 장시간 협박을 통해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며 스스로 사진과 영상을 찍도록 만들고 있다.

가해자의 심리적 압박이 유효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순결'을 요구받는 여성이면서, 의존적인 상황에 놓인 경제적 지위와, 수동적인 위치에서 스스로 사고할 능력을 제거 당한 청소년이라는 여러가지 취약성 때문이다.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보호'에 머물 때, 주체성이 삭제되는 여성 청소년은 이러한 범죄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국가도 자본도 문화도 이 취약성을 충분히 이해하지도 이해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이 상황은 비참하게 느껴진다. 이 잘못된 구조는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

성교육은 인권교육이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주변인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호기심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성’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평등한 관계맺기로 성을 배우며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여 성적인 도구로만 여기는 강간문화를 무너뜨려야 한다. 한국다양성연구소는 다양성훈련을 중점적으로 함에도, '모두를위한성교육'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국가와 교육부가 성교육에 놀라울 정도로 '무대응'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피해자 탓하기를 당당하게 ‘국가 수준의 성교육 표준안’에 담았던 교육부는, 이에 대한 사과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여전히 성교육과 인권교육을 구조적으로 분리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성교육은 학생건강정책과에서 다루며 보건교사가 성교육을 다루도록 하고 있다. 유네스코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만 보더라도 성교육은 마땅히 인권교육이어야 하지만, 그런 고려는 없다. 반면 인권교육은 민주시민교육과에서 ‘인성교육’과 함께 별도로 다뤄지고 있다. 인권은 교육부가 아닌, 법무부와 국가인권위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관례 때문인지 조직도에서 인권교육이란 표현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이처럼 성교육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생물학적으로 존재하는 몸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로 한정되어 교육부에서 다뤄지고, 인권교육은 국가인권위 등 다른 부처에서 다뤄지며 ‘성교육은 인권교육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외면되고 있다. 이 가운데서 정부부처 중 가장 적은 예산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는 윤석열 정권에 의해 폐지 로드맵을 스스로 마련하고 있다.

기술은 차별과 폭력을 확대 재생산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이야기를 처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너무나 슬프다.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는 N번방 사건 이후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문화가 원인이 되는 이 사건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인지해야할 진짜 문제를 제시했고, 비영리단체로서 국가가 하지 않는 역할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나 국가는 역시나 계속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외면했다.

L사건으로 불리는 더 악랄해진 N번방 사건이 다시금 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 국가는 공고한 남성카르텔과 성착취를 끝내기 위한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앞세워 당선된 대통령은 이 사건을 해결할 생각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국가의 철저한 외면으로 유지되는 폭력의 구조 속에서, 자본주의는 돈이 되는 차별과 폭력에 더욱 힘을 싣고있는 데다, 함께살아갈 의지를 상실한 사람들에 의해 이 사회는 다시 한 번 지옥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윤석열은 ‘여성가족부를 속히 없애라’고 할 때가 아니다. 눈치만 보며 나다움책을 회수하는 등 여가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던 이전 정권의 모습에서 벗어나 성평등 사회 건설에 나서야 한다.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지위를 격상시키고 제대로 된 여성부(혹은 성평등부)로 만들어야 한다. 기술의 발달에는 반드시 인권과 성평등의 문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가 현재 마주한 지옥은 '기술'이 인간사회의 차별과 폭력을 확대, 강화하는 형태다. 우리는 이미 AI시대에 진입했고, 그 이상의 기술의 시대에 살게 될 것이다. 모든 종류의 차별과 폭력을 끝내지 않는다면 기술성장은 모든 소수자를 ‘죽임’으로 내몰게 될지도 모른다. 

처참한 현실이 우리의 주변을 어둠으로 뒤엎는 이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희망을 이야기해야할까. 너무나 분명한 할 일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하여금 고통받고 있을 피해자와 연대하며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다. 우리는 함께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 사안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연대를 이어가는 불꽃의 단, 이름을 걸고 보도를 이어가는 언론사의 기자들, 문제의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모으는 단체들에 특별히 감사한 마음이다. 최진성 감독은 N번방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모를지라도 세상에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으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제안하고 싶다.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서, SNS에 글을 올리는 것, 기자회견이나 집회현장에서 목소리 높이는 것, 내가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 단체들에 후원회원이 되는 것, 그래서 교육과 제도를 바뀌는 것까지 당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주기를 부탁드린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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