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엄청난 흥행 이후 ‘자폐가족 현실’이라는 제목의 글이 한동안 인터넷을 달궜다. 아픈 형으로 인해 가족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동생 입장에서 묘사한 글은 ‘진짜 현실은 이렇게 비참한 것’이라고 뼈아프게 소리치는 듯했다. 익명으로 작성된 글의 진위를 가리기는 어렵겠지만, 장애인을 가족이나 친척으로 둔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드라마가 현실과 달리 너무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자폐장애인은 대개 부모의 보필을 받으며 살아가기에, 비장애인 형제, 남매, 자매는 상대적으로 부모의 관심 밖에 머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정관조 감독의 다큐멘터리 ‘녹턴’이 딱 그런 상황에서 불거지는 가족 갈등을 다룬 이야기다. 피아노 연주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지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을 겪는 자폐장애인 은성호 씨, 그런 큰아들의 음악적 성공을 위해 모든 힘과 열정을 쏟아붓는 엄마 손민서 씨, 그리고 두 사람을 지켜보면서 울화가 치미는 둘째 아들 은건기 씨의 시간을 오랫동안 쫓으며 영상으로 담아냈다.

▲ 영화 ‘녹턴’ 스틸컷.
▲ 영화 ‘녹턴’ 스틸컷.

엄마의 헌신이 형에게만 쏠리는 게 무척이나 서운하고 속상한 은건기 씨는 반항적인 청소년기를 보낸다. 이렇다 할 감정적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어른이 된 까닭인지, 성인이 된 뒤에도 자신을 갉아먹는 듯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엄마가 죽으면 네가 형을 책임져야 한다’는 지속되는 심리적 압박은 들을 때마다 부담스럽다. “너도 열심히 살아야지 이다음에 형을 맡기지, 너 능력이 있어야 돼.” “옛날엔 니 있으면 형이랑 너랑 둘이 놔두고 엄마 누구 만나러도 가는데, 요새는 전혀 그걸 못해. 니가 없으니까 나만 손해야, 손해.” 

은건기 씨는 기어코 해외로 훌쩍 떠나기에 이르지만, 그런다고 해서 손쉽게 독립적이고 성숙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족 내 갈등으로 좌충우돌 살아가던 습성은 성인이 된 뒤에도 인생의 곤혹스러운 ‘사건’을 여러 차례 야기한다. 자유로운 해외 생활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던 그가 돌연 한국의 병원에 입원해 몸져누워 있는 장면이 등장할 때쯤, 관객은 비록 다큐멘터리가 그 이유를 콕 짚어 드러내지 않더라도 그의 인생이 여전히 바람 잘 날 없는 시절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 가족의 지극히 현실적인 11년을 98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고농도로 농축한 ‘녹턴’은 일종의 ‘인류학 비디오’라고 부를 만한 다큐멘터리다. 장애인 당사자의 현실이나 보호자의 고통을 말하는 경우는 많아도 그 사이에 ‘낀’ 비장애인 형제의 상처와 고군분투를 이야기하는 작품은 흔치 않았기에, 그 자체로 한 명의 인간을 이해해볼 수 있는 입체적인 여정이기 때문이다. 

▲ 영화 ‘녹턴’ 포스터.
▲ 영화 ‘녹턴’ 포스터.

부모님에게 ‘만년 2등’일 수밖에 없는 비장애인 자식이 설움과 억울함을 떨치고, 가족으로부터 부여받는 책임에서 벗어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오롯이 탐구해 나가는 시간을 갖고, 그 끝에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 기나긴 시간을 지치지 않고 들여다본 정관조 감독의 끈질김이 감탄스럽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장애인의 형제로서, 남매로서, 자매로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이들에게 꾸준하고 지긋한 관심의 시선을 둔다는 점에서 ‘녹턴’은 누군가의 현실을 어루만져줄 귀한 치료제 같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