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오락실’은 과감하고 도전적인 이은지, 미미, 이영지, 안유진의 캐스팅으로 큰 기대감을 주었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최근 시즌 3 까지 마친 ‘식스센스’ 역시 오나라, 전소민, 제시, 이미주의 캐스팅이 신선했지만 유재석이 이들을 ‘철없는 여고생’으로 취급하는 장면이 많았고 자막 역시 유재석을 ‘인솔 교사’로 여기게 한 것이 아쉬웠다. 지구오락실에는 유재석 같은 남성 메인 MC 를 두지 않았다는 점이 좋았지만 앵글 밖에 나영석 PD 가 그 역할을 하는 측면이 있었다.

동시에 지구의 모든 곳을 오락실로 여기고자 했던 나영석 PD 의 기획은, 모두를 포함하는 모습을 갖추지 못한 채 누군가를 배제하는 모습을 보이며 어그러졌다. 나영석 PD 가 진행했던 수많은 예능에서 등장했던 두 가지 게임이 지구오락실에도 소환됐다. 시각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단지 우스꽝스럽게 소비하게 만드는 고깔모자 게임, 청각장애인이 마주하는 구조적 현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청인 중심으로 ‘들리지 않음’을 웃음소재로 만들어버린 고요속의 외침 게임이 지구오락실에도 등장한 것이다. 지구오락실은 비장애인들의 오락실이며 지구오락실이 말하는 지구인은 비장애인임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 tvN ‘뿅뿅 지구오락실’ 포스터
▲ tvN ‘뿅뿅 지구오락실’ 포스터

시청각장애를 현실로 마주하고 살아가는 장애인과, 구조적으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해야한다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이 두 게임은 지극히 차별적이다. 장애로 인해 가지게 될 수 있는 특성을 웃음의 소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출연진이나 모든 스텝들은 결국 PD 가 의도하는대로 게임의 진행과 촬영에 집중할 뿐, 어느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이는 어떠한 문제의식도 갖지 못한 채로 방영되었다. 방송업계에서 PD 가 갖는 독보적인 권력때문일 수도, 혹은 출연진이나 스텝들 중 어느 누구도 이러한 게임에 대해 어떠한 문제의식도 갖지 못했을 가능성도 높다. 여전히 유튜브에서 이 두 게임을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들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아무 문제의식없이 소비되는 것을 보면 그럴 확률은 높아진다.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게임은 1984년에 시작해서 2년이나 방송했던 장수 프로그램인 ‘가족오락관’의 대표적인 게임들 중에 하나였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고요 속의 외침’에 대한 비판은 종종 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유튜브에 ‘고요 속의 외침’을 검색하면 상당히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신서유기’, ‘아는형님’, ‘출장 십오야’의 영상들이 나온다. 이 중 두 개가 나영석 PD 의 프로그램이다. ‘고깔모자 게임’ 역시 ‘신서유기’, ‘출장 십오야’에 동일하게 등장한다. 나영석 PD 가 기획하는 프로그램 마다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게임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 장애를 “체험”하게는 하지만, 당연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조차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위험함이나 불편함이 발생하는 것이 비장애인 중심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지는 못한다. 이런 모습은 일부 잘못된 장애인인식개선 교육이 떠오르게 한다. 일부 ‘장애인식개선’ 교육은 장애 체험 교육이라며 잠시 휠체어를 타고 스스로 경사로를 올라가게 한다든가, 깁스를 하고 목발을 사용해서 계단을 내리오르게 한다든가, 시야를 가리고 걸어보게 한다든가, 귀를 막고 옆 사람과 대화를 해보게 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장애 체험 교육은 ‘장애인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혹은 ‘감사하다’와 같은 소감을 나누게 할 뿐 장애인이 처한 상황을 구조적으로 인지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장애인들이 목숨걸고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을 체험하고 비장애중심주의 사회의 구조의 문제를 깨닫기 위해선 최소 하루 이상은 “장애 체험”을 해야 한다. 휠체어를 타고 깁스를 하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버스도 타고 전철도 타고 학교도 가고 직장에도 가봐야한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삶이 어떻게 완전히 달라지는지 체험한다면 그 체험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체험이 될 수 있다.

▲ 텔레비전 시청. 사진=gettyimagesbank
▲ 텔레비전 시청. 사진=gettyimagesbank

여전히 많은 장애인식개선 교육은 비장애인 중심주의 사회의 구조가 만들어 내는 장애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인식하게 하기 보다는 ‘불편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와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마치 성교육과 성평등교육을 인권교육이 아닌 인성교육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장애인인식개선을 통해 지극히 시혜적인 태도로 ‘안쓰러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착한 사람’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부터 문제인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은 ‘장애인 인권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인권교육이 아닌 동시에 “너도 언제 장애를 갖게 될지 모르니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식의 접근이나, 본인의 오토바이 사고 등을 언급하며 “장애인이 되면 이렇게 불편하다. 위험한 짓 하지마라”는 접근방식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접근들은 장애인을 주체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도움이 필요한 대상’ 혹은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벌을 받는 사람’으로 전락하도록 만들며 타자화한다. 이는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경험하는, 그리고 실재하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예능 PD 들 중 가장 영향력이 큰 PD 라고 여겨지는 나영석 PD 는 자신이 늘 즐겨 사용하는 게임이 어떤 차별과 연결되어 있는지조차 생각해보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차별을 재생산하고 있다. <지구오락실>은 네 명의 유쾌하고 자기 표현에 거침없는 여성을 주체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유의미했지만 어떠한 모습으로 이 지구상에 존재하든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지 않으며 즐겁게 예능을 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는 못했다. 풍자는 낡고 오래된 ‘특권’을 가진 이들을 향해야 하며, 장애 등의 소수자성은 우스꽝스러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꼼꼼하게 모든 존재를 살피며, 모든 지구인을 위한 오락이 가능한 ‘지구오락실’의 다음 버전이 공개되는 날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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