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와 북한 핵 무력의 법제화에 대한 국내 대중매체의 보도를 보면 흥미위주 기사에 매몰된 상업주의 언론의 특성이 심각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사망과 관련해서는 흥미위주의 뉴스가 쏟아지고 있는데 비해 북한의 핵 정책에 대해서는 미국이 주가 되고 한국이 종이 되는 식의 대책 강구라는 식의 의례적인 기사가 나왔을 뿐이다.

북한 핵문제는 미국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반도의 명운과 직결된 것이고 향후 평화통일 노력 등에 미칠 영향이 매우 큰 주제이다. 그러나 국내 대부분의 언론은 ‘북한의 의도가 00으로 보인다’는 식의 대북 보도 패턴에 맞춘 기사가 주를 이룰 뿐 현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나 그 해법, 향후 전망 등에 대한 보도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기사를 보면 주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여왕이라는 뉴스메이커의 사망과 장례절차, 왕권 승계 등에만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영국 입헌군주제와 무관치 않은, 지난 수백 년 간 지구촌식민지배라는 범죄를 자행한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 9월13일 오전 주한영국대사관에 마련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추모소. 주한영국대사관은 16일까지 조문객을 받을 예정이다. ⓒ 연합뉴스
▲ 9월13일 오전 주한영국대사관에 마련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추모소. 주한영국대사관은 16일까지 조문객을 받을 예정이다. ⓒ 연합뉴스

영국 제국주의는 자치령, 식민지, 위임통치령 등 다양한 형태로 16~18세기에 주로 이뤄졌고 세계역사상 최대 수준이었던 1913년에는 당시 전체 세계인구의 23%인 4억 여 명을 지배했다. 그 면적은 세계 전체 육지의 24%에 달래 ‘해가지지 않는 제국’으로 불렸다. 영국 제국주의는 식민지에서의 원주민 학살과 불법 지배를 통한 인권 탄압과 자원수탈, 노예무역 등의  추악한 짓을 저질렀다. 영국은 특히 인도에서 마약을 재배해 중국에서 판매하다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고 비판받는 마약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영국 과거 수 세기 동안 식민지 등으로부터 수탈한 부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인데 인도의 경우를 오늘날 달러로 환산할 경우 45조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대영제국이 세계 침략 과정에서 자행한 폭력과 갖가지 음모 등에 대한 영국 국왕 등이 직접 개입한 자료는 거의 없다고 하지만 그 책임이 전무하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영국 황실이 보유한 막대한 재산도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점되는데도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 1905년 8월12일 영국은 일본과 제2차 영일동맹을 맺어 일본의 한국 지배를 외교적으로 보장해주었다. 그에 따라 영국은 일본이 한국에서 정치·경제·군사상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일본은 영국의 인도 지배 및 국경 지역에서의 이익을 옹호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런 야합은 그 해 7월 일본의 총리 가쓰라 다로와 미국의 육군장관 태프트가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하고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승인한다'는 내용의 ‘가쓰라 - 태프트 비밀협약’을 맺은 직후 취해졌다.

한편 북한이 지난 8일 자위적 수단으로 핵 선제 타격을 명문화한 법령을 통과시킨 것에 대한 국내 언론 보도는 대체로 심층보도와는 거리가 멀다. 이번 북한 조치는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의 공세에 대해 공동보조를 취하는 조치를 가시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향후 비핵화 회담을 거부하는 의미로 해석되면서 향후 한반도 정세가 가팔라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남북의 평화통일 노력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으로 왜 이런 일이 벌어 졌는지에 대한 분석 등이 나와야 해법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지만 국내 언론 보도에서 그런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이번 조치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의 하나는 미국의 대북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세계평화를 위협한다거나 북한의 미사일 실험 등을 도발로 규정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 놓고 있는데 이런 조치는 미국의 선제타격 대상 국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1997년 이후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자 북한의 주요 핵시설을 공격하는 선제타격을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검토했지만 한국은  단 한 번도 사전에 논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중앙일보 2020년 9월19일). 이는 미국이 전략무기인 핵무기에 관해선 사용 계획을 동맹국과도 사전 협의하지 않는 법 체제 때문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북한을 향한 구체적인 핵 공격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가진 북한에 대한 핵공격에 한국의 허락은 필요 없다고 미 군사전문가들은 인식하고 있다(조선일보 2020년 9월16일).

미국 정부가 선제타격을 거론할 때는 미국 헌법 2조와 ‘무력사용 권한(AUMF)’ 두 개를 법률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도 이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은 한반도 전면전을 의미하고 그로 인한 남측의 인명 피해만 해도 천문학적인 숫자가 되는데도 미국은 선제공격 기획 단계부터 한국을 배제하고 있다. 이는 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군사작전에 외국의 동의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행한다는 자국 이기주의적 발상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배타적인 핵 무장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해체 당시 미국, 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 규모의 핵  보유국 이었다. 구소련이 미국과 서유럽을 겨냥해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배치했기 때문인데, 당시 보유했던 핵탄두만 1,700여 개,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도 170여 개에 달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러시아, 미국, 영국과 '부다페스트 각서'를 체결하고 비핵화에 나서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안전보장과 경제 원조를 약속받았다.

하지만 정작 지난 2014년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합병할 당시 미국과 영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각서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2022년 또다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 등 서방진영의 무력 대응이 우크라이나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핵을 포기하면서 안전 보장 약속을 받았지만 그 후 강대국의 침략 위협과 같은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은 비핵화 요구를 받고 있는 북한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북한이 최고 지도자에 대한 외부 공격에 대해 핵무기로 응수하겠다고 밝힌 것은, 한미연합군의 대북전략에 포함된 ‘참수작전’은 물론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신형무기를 개발하는 식으로 테러집단 지도자들을 제거하는 작전을 지속한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 7월 말 ‘닌자 폭탄’으로 불리는 초정밀 암살용  ‘R9X’ 미사일로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수괴로 알려진 아이만 알자와히리(71)를 사살했다. 이 미사일은 폭약이 터지지 않는 대신 날카로운 칼날 6개가 공격목표로 지목된 사람만을 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형 무기로 알려졌다(연합뉴스 2022년 8월2일).

▲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회의 2일회의가 지난 9월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권 붕괴라며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천명했다. ⓒ 연합뉴스
▲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회의 2일회의가 지난 9월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권 붕괴라며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천명했다. ⓒ 연합뉴스

북한의 핵무장 강화에 대해 남한의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해보이지만 미국만 바라보고 따라하는 형국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 대상으로 검토할 경우 한국을 배제하는 상황이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윤석열 정부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북한과의 대화통로를 만들고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를 만들어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할 것이다.

영 제국주의 범죄 생략된 여왕 보도나 북핵 적극적 해법 외면한 보도 문제

이상에서 영국 여왕 사망과 북한 핵무력 법제화에 대한 보도 경향을 살펴보았는데 대중매체가 어떤 식으로 보도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공익과 공공의 선에 대한 내용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21세기에 기이한 입헌군주제에 대해 단순히 흥미위주에 몰두하면서 한국도 피해를 입은 식민지 역사를 외면하거나 남북한 문제 해결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 외면하는 것은 대중매체의 소임을 다 하는 것으로 보기 힘들다.

국내언론은 영국 여왕이 70년 동안 재위한 최장 집권 군주이면서 영연방의 수장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대영제국이 저지른 역사적 범죄와 영국 왕실의 관계 등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흥미위주의 기사를 남발하는 상업주의에 매몰되었다는 비판을 자초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오는 19일에 열리는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향후 여왕에 대한 보도가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북한이 핵무기를 법제화하면서 남북관계는 과거와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남북 간에 불통상태가 장기화되는 것도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과 해법 제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한미일, 북중러로 양분되어 대결하는 식의 냉전이 심화되면 평화통일은 더욱 어려워진다. 한반도 문제는 주변 강대국이 노리는 이해관계와 차원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언론은 이 문제에 집중해서 정치와 학계, 시민사회를 의식화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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