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국 프리랜서 기자 라파엘 라시드
한국 언론 받아쓰기에 “왜 진실 궁금해하지 않나”
윤 대통령의 엘리자베스 2세 추모글 문제 지적도

11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영국 출신의 라파엘 라시드는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한국 언론에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다. 2020년 엘르코리아에 기고한 ‘한국언론을 믿을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 칼럼, 지난 7월 발간한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 책은 한국 사회에 대한 그의 관점을 보여준다. 그가 10여년간 바라본 한국 언론의 고질적 문제는 무엇일까.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라시드 기자를 만났다.

▲ 한국에 11년째 거주 중인 라파엘 라시드 기자. 사진=본인 제공
▲ 한국에 11년째 거주 중인 라파엘 라시드 기자. 사진=본인 제공

라시드 기자는 2011년 한국에 들어와 2014년 미디어 스타트업 ‘코리아 익스포제(Korea Expose)’를 창간했다. 지금은 뉴욕타임스, 더 가디언, 닛케이 아시아 등 유수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다. 2020년 3월에는 그가 뉴욕타임스에 ‘신천지가 한국에서 정치적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주장을 담아 기고한 글이 큰 파장을 불러 모았다.

“아직도 그 기사의 후폭풍을 겪고 있다. 나는 신천지와 아무 관련이 없고 기사의 주장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반적 내용이지만 모두 나를 극단적 사람으로 몰았다. 심지어 대부분은 기사를 읽지도 않은 사람들의 비난이었다. 당시 언론은 신천지를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데에만 집중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지적을 놓치고 있었다. 그것이 이해가 안 됐을 뿐이다.”

“똑똑한 국민들을 ‘조종’하려 하는 한국언론”

라시드 기자는 한국 언론이 “대중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편인데, 언론이 위에서 ‘조종(manipulate)’하려 한다는 것이다. 최근 부산엑스포 유치로 인한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사는 “대중이 의심 없이 받아들이리라 생각하는” 사례다. 부산시가 61조원의 엑스포 경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발표하자 대부분의 언론이 이를 받아 썼다.

“부산엑스포가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로 모든 언론이 ‘60조 원’을 얘기한다. 하지만 이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수치다. 일본 오사카 엑스포의 기대 효과가 ‘20조 원’인데 부산이 60조라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 하지만 이것을 따지는 언론은 없다. 비용을 점검하는 것이 아닌 ‘엑스포 유치는 당연히 좋은거지’라는 식의 기사만 양산되는 것이다.”

▲ 라시드 기자가 쓴 "한국이 엑스포를 과잉홍보하고 있다"는 기사. 닛케이아시아 갈무리
▲ 라시드 기자가 쓴 "한국이 엑스포를 과잉홍보하고 있다"는 기사. 닛케이아시아 갈무리

익명을 자주 쓰거나, 온라인커뮤니티 이슈를 그대로 옮기는 언론의 관행도 대중을 무시하는 태도다. 국내 언론은 ‘익명의 소식통’,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등 신원을 밝히지 않은 취재원을 자주 등장시킨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는 기사도 흔해졌다.

라시드 기자는 “해외 유력 매체는 정말 취재원이 죽을 수도 있다는 정도가 아니면 익명을 거의 쓰지 않는다. 신뢰도와 직결되기 때문”이라며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온라인 커뮤니티 이슈도 일부 타블로이드가 아니면 기사화하지 않지만, 한국은 큰 매체까지 전부 기사화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유력 매체들은 삭제 및 수정 내역을 대부분 공개한다. 그리고 수정하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기사 수정은 너무 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홍보회사 다니며 언론의 횡포 목격…‘포털 종속’ 우려도

라시드 기자는 한국 홍보회사에서 일했던 3년을 떠올리며 국내 언론의 ‘횡포’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한다. 언론이 컨퍼런스, 포럼 등의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기업에게 돈을 요구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자신들과 협약을 안 맺었다는 이유로 근거 없는 비방 기사를 쓰는 매체도 있었다.

“포럼 등 행사 입장료도 내라 하면서 쓸모없는 팸플릿의 광고 비용으로 1000만 원을 요구했다. 행사 참여 안 한다고 했더니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부정적인 기사를 쓰겠다고 협박했다. 한 지역지가 갑자기 고객사에 대해 말도 안 되는 거짓 기사를 쓰길래 알아봤더니 몇 년 동안 고객사가 광고를 안 줬기 때문이었다. 이런 거짓 기사가 하나 나오면 다른 매체가 모두 받아쓴다. 법적 대응이 어려운 것을 보고 언론의 횡포가 심각하다고 느꼈다.”

한국 언론의 여러 문제가 ‘포털’에서 시작돼 굳어졌다는 문제 의식도 보였다. 그는 “한국에서는 포털 웹페이지를 나갈 필요가 없다. 언론사 홈페이지를 갈 필요가 없게 만든다. 수십 개의 언론사가 모여 경쟁하는 포털의 배치 구조는 언론이 더 자극적으로 변하게끔 만든다”며 “해외에서는 포털에서 뉴스를 본다는 개념이 없다. 모두 ‘아웃링크’ 형식으로 언론사 웹페이지를 가야 뉴스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렇게 포털에 종속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여러 언론 매체들은 구독, 후원을 비롯한 여러 모델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라시드 기자는 “지금 상태로는 쉽지 않다”면서,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먼저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모두가 같은 기사를 쓴다. 한 이슈에 대해 관련 기사를 보면 내용이 다 똑같다. 제목만 자극적으로 달라진다. 한국언론을 구독할 ‘동기’가 없다. ‘기레기’라며 사회 인식도 안 좋지 않나. 유료구독을 유지하고 있는 해외 언론사들은 자문할 전문가들도 다수 두고, 하이퍼링크를 통해 자료 출처도 확실하게 밝힌다. 퀄리티 자체가 다르다. 한국언론은 유료구독 이전에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

‘한국은 정상성 중독의 나라’, 대통령실의 ‘폐쇄성’ 또한 문제

쓴소리의 바탕엔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다. 그는 유망한 분야로 꼽히는 ‘컴퓨터 공학’ 대신 ‘한국학’을 공부하기 위해 학교를 바꿨고,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그는 “한국은 늘 변화하고 역동적이다. 한국만큼 교육 수준이 높고 모두가 똑똑한 나라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동시에 ‘정상성 중독’ 사회에서의 불행이 안타깝다고 라시드 기자는 말했다.

“한국에서는 특히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것, 다른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이면 사회가 다름을 ‘판단(judge)’하기 때문이다. 설령 실제 판단이 없더라도 모두가 판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정상이 되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것 같다. 유난히 한국이 연예인들에게 엄격하고, 사이버괴롭힘(Cyber Bulling)이 심한 것도 그런 ‘정상성 중독’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 8월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인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 8월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인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현 정부 들어서는 ‘폐쇄성’ 문제도 지적했다. 이는 언론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라시드 기자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2세를 추모하며 밝힌 입장문의 오타를 지적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입장문엔 엘리자베스(Elizabeth) 철자가 ‘Elisabeth’로 잘못 적혔고, 행동이라는 단어 ‘deeds’에서 ‘s’를 빼놓았다.

“이전 정부에서는 영어 메시지 하나에 여러 검증 체계를 거친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떤 방식인지를 모르겠다. 만약 대통령실과 접촉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면 그렇게 공개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실 출입 기자를 두어 번 신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명한 외신조차 처음에는 출입 허가가 안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CNN 특파원이 외신에 더 개방적일 것을 약속해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그렇게 요청한 이유가 있다. 처음부터 외신 대응을 거의 안 했기 때문이다.”

라시드 기자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당분간은 한국에 머무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직도 한국에 대해 쓰고 싶은 글이 산더미처럼 많기 때문이다.

“세계가 한국을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 초기 수준이다.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글을 쓰는 외신은 몇 없다. 지금도 들어오는 외신 기고 요청을 보면 한국에 대한 이해가 정말 없구나를 느낀다. 아직도 해외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성형수술, K팝, 북한 등 단편적인 것들에 그친다. 서방이 가지고 있는 동양의 ‘스테레오 타입’도 견고하다. 그런 것들을 깨면서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그 이상의 큰 계획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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