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연인 간 범죄처럼 묘사…현재는 삭제
유가족 측 “선정적 보도 자제해 달라” 당부하기도
스토킹범죄 본질 가리는 ‘원한’, ‘보복’ 등 지양해야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벌어진 스토킹 살인 사건에 대해 언론은 선정적 보도를 멈추지 않았다. 성차별적 보도, 범죄 본질 흐리는 제목, 비극에 ‘단독’을 붙이는 관행 등 수차례 지적된 사안이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15일 오전 ‘[단독] 신당역 화장실서 女역무원 피살, 스토킹하던 前동료 범행이었다’ 기사에서 “(가해자가) 영상과 사진을 전송하며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촬영물 내용을 특정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연인관계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기사는 피해자 유가족들의 항의를 불렀다. 15일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가족 측은 “선정적인 보도는 안 했으면 좋겠다. 자제해 달라”며 “마치 둘이 사귀면서 가해자가 같이 지냈던 영상을 유포한다고 협박했다는 식의 내용을 조선일보 보도에서 봤는데 그건 얼토당토 않은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 9월15일 오후 전 서울교통공사 직원 전모씨가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뒤쫓아가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쓰고 있다. ⓒ 연합뉴스
▲ 9월15일 오후 전 서울교통공사 직원 전모씨가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뒤쫓아가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쓰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 조선일보 기사에선 문제의 부분이 삭제됐다. 조선일보 측은 16일 “2차 가해에 대한 우려 때문에 기사가 나가고 내부적으로 수정 절차를 거쳤다”고 밝혔다.

자극적이고 피해자에게 책임 지우는 표현들 사용돼

제목에서 자극적 표현을 쓴 보도들도 넘쳐나고 있다. △서울신문(신당역 여 역무원 살해 30대…‘흉기 들고, 샤워캡 쓰고’ 1시간 기다렸다) △인사이트(‘신당역’ 여자화장실서 끔찍한 사건 발생...20대 여성 역무원이 살해됐습니다) △위키트리(신당역 여자화장실서 살해 당한 20대 역무원, 가해 남성과 ‘뜻밖의 관계’ 드러났다) △YTN(자막뉴스/늦은 밤 울린 비상벨...여자화장실서 벌어진 일) 등. 민주언론시민연합이 16일 2차가해성 선정적 보도로 분류한 매체별 기사 제목들이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고, 스토킹 범죄 심각성을 가릴 수 있는 ‘원한’, ‘보복범죄’ 등의표현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15일 머니투데이는 “신당역 여 역무원 살해범, 위생모 쓰고 범행…“보복살해 한 듯”, 뉴스1은 “‘신당역 살인 사건’ 전말, 재판 과정서 원한 “오래전 계획, 70분 기다려””라는 제목을 썼다.

조선희 민언련 미디어감시팀 활동가는 통화에서 “자극적인 키워드를 기사에서 언급하면 범죄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아닌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보이게 된다”며 “명백한 혐오범죄인데 연인 간 범죄처럼 묘사될 가능성이 있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라파엘 라시드 영국 프리랜서 기자 트위터
▲ 라파엘 라시드 영국 프리랜서 기자 트위터

조 활동가는 이어 “이제는 무엇을 보도하느냐보다, 무엇을 보도하지 않느냐가 기자의 역량에 있어 중요한 시대 같다”며 “아무리 경찰에서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단어의 의미와 미칠 파장을 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릭 유도 수단이 된 [단독] …“기자들, 뽐내고 싶어한다”

비극적인 사건에 ‘단독’을 붙이는 경향도 고질적 문제다. 15일 SBS는 ‘[단독] 신당역 화장실서 칼부림…역무원 1명 숨져’, TV조선은 ‘[단독] 신당역 20대 역무원 살해 남성은 '역무원 입사 동기'’라는 기사를 냈다. 세계일보 역시 ‘[단독] 신당역 역무원 살해한 30대男, 위생모 쓰고 범행…계획범죄 무게’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뉴시스, 뉴스1, KBS를 비롯한 매체에서 ‘단독’을 붙여 기사를 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알려지는 사안들에 [단독]을 붙여 클릭을 유도하는 관행이다. 

이를 두고 영국 출신의 라파엘 라시드 기자는 15일 트위터에서 “한국 언론은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하려고 서로 하이에나 마냥 몰려든다”며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도 사건이 아닌, 자신이 얼마나 잘난 기자인지 뽐내고 싶어한다”고 비판했다.

▲ 한겨레는 앞으로 유사 사건에 대해 '스토킹 범죄'로 표기할 것을 밝혔다.
▲ 한겨레는 앞으로 유사 사건에 대해 '스토킹 범죄'로 표기할 것을 밝혔다.

일부 매체는 잘못된 표현을 사용하지 않겠다며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겨레는 15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 범죄를 보도하며 ‘스토킹 범죄’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며 “보복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당한 만큼 그대로 갚아준다’는 것이어서,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지우는 한편 강력범죄 전조가 되는 스토킹 행위의 심각성을 가린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주요 일간지 중에서는 한겨레, 한국일보만이 ‘속보’, ‘단독’의 단어를 신당역 사건 보도에 사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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