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소식에 마음이 무너졌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왜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 일일까. 너무나 자주, 잔인하게, 이유없이 살해되는 여성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앞이 깜깜해진다. 이 일로 지하철 이용과 화장실 이용이 더 두려워질 여성들 그리고 스토킹과 불법촬영을 당하고도 보복이 두려워서 신고를 주저하게 될 여성들의 감정과 삶을 떠올려 보니 너무나 비참했다.

출근을 하자마자 연구소의 활동가들과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 활동가가 과거 직장에서의 경험을 나눠주었다. 직장 회식 후 같이 택시를 타고 가게 된 선배가 강제로 손을 잡아 불쾌감을 표출하며 택시를 세우고 먼저 내렸는데 따라 내리며 손으로 몸을 밀며 어두운 골목으로 몰아넣고 ‘벽치기’를 했다는 것이다. 겨우 빠져나왔고 이후 소속 부서장에 사건을 알렸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부서장은 가해자에게 구두로 경고조치를 했고, 가해자와 계속 함께 일해야 하는 피해자는 곤란해졌다. 피해자는 사표를 던지며 회사에 이 사건을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였다. 분리조치 등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나 공동체의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해자는 3개월 정직 처분이 내려졌지만, 피해자는 회사를 떠난 뒤였다. 퇴사 후에도 회사 사람들로부터 ‘그 사람이 너 죽인다고 하더라. 조심해라’는 말을 듣게 됐다.

왜 이렇게 수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피해를 당한 후에도 신고를 한 후에도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할까? 신당역에서 일하다가 자신의 근무지에서 살해당한 피해자는 가해자를 스토킹과 불법촬영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은 가해자를 긴급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불법촬영을 하고 350회 스토킹을 가해자를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우려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 영장을 기각하고 풀어줬다.

▲ 9월15일 오후 전 서울교통공사 직원 전모씨가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뒤쫓아가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쓰고 있다. ⓒ 연합뉴스
▲ 9월15일 오후 전 서울교통공사 직원 전모씨가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뒤쫓아가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쓰고 있다. ⓒ 연합뉴스

사건이 알려진 후 한덕수 총리는 곧바로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 방안을 찾아오라는 지시에 그쳤다.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관점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명확한 방안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총리의 “긴급지시”를 통해 과연 중앙부처들은 어떤 ‘효과적이고 단호한 대응방안’을 내놓을까?

2016년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2018년 미투운동 등을 계기로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며 직접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는 이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 젠더불평등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의 원인이라는 것을 직시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매일매일 수많은 여성들이 직장 내 성적괴롭힘, 등하교 출퇴근 길 성추행, 디지털 성범죄, 성폭행, 살인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는데 “평소”에는 그 누구도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다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큰 사건이 터지면 그제야 그에 대한 방안으로 늘 ‘처벌 강화’가 약속될 뿐이었던 것이 그간의 역사였다. 작년 10월 스토킹처벌법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 법이 생기기 전에는 스토킹에 대한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았고 처벌 역시 1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스토킹처벌법 시행으로 스토킹 가해자를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처벌수위를 높였다. 처벌수위를 높였지만 2022년에만 스토킹으로 검거된 스토커들이 3,412명이다(권인숙 의원실). 이 중 구속은 125건(6.2%), 1심에서 집행유예 된 비율은 31.2%다. 강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만들어 놓았지만 법원은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을 좀 쫓아다닐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판단하는 것인지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않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후의 대처와 처벌 뿐만 아니라, 사건이 최대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모든 사람들의 성평등과 인권 의식를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저 사람을 향한 나의 마음과 나를 향한 저 사람의 마음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기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다. ‘친밀한 관계’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평등한 관계 안에서 서로에게 동의를 구하고 거절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대화를 통해 적극적인 합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관계가 시작되기 전, 관계를 유지하는 중, 관계가 끝난 후 모든 시점에서 필수다. 국가와 지자체는 학교와 일터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을 통해 지역사회에 성평등/성교육, 인권/시민교육 시간을 통해 평등한 관계 맺기를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에게 제공해야만 한다. 이 최소한의 조치를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대만의 경우, 한 성소수자 청소년의 죽음을 통해 전 사회가 근본적인 문제를 찾고 반성하며 다시는 그러한 죽음이 없도록 포괄적 성교육을 공적 의무로 명시하는 법안(성교육 기본법)을 만들어 젠더에 기반한 폭력에 제도적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떠했는가. 대만과 유사한 사건들이 이어졌지만 한국은 성교육에 대해 어떠한 응답도 하지 않았다. 고 육우당이 ‘죽임’을 당한 이후(2003년)부터 지금까지도 수많은 성소수자의 죽음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매년 100명의 여성의 친밀한 관계의 남성들에게 살해 당한다. 살인미수까지 포함하면 매년 300명 이상이다(하루 한 명 꼴이다). 강간은 매년 5천 건 이상, 유사강간을 포함하면 6천 건이 넘는다. 강제추행은 1만5천 건이 넘는다(통계청). 성폭력 사건의 80% 이상이 면식범에 의해 일어난다(여성가족부). 모든 사람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하나의 인격체이자 주체로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성평등/성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우리는 ‘포괄적 성교육’, ‘모두를 위한 성교육’이라고 부른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대로 된 성평등/성교육이 도입을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끔찍한 사건들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몸은 남성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분절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거나 도구가 아니다. 마땅히 존엄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이렇게 무참히 끝내버리는 자는 누구인가. 이러한 일이, 단지 운이 나쁜 한 사람의 이야기도. 단지 소수의 악마로 인한 일들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인지해야만 한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 이슈들은 이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집단살해’다. 디지털성범죄의 피해자였고, 스토킹의 피해자였으며, 2차가해를 당해야 했고, 결국 ‘그 착하다는 사람’에 의해 살해당한 역무원의 죽음에 무거운 마음으로 애도를 전한다. 알아서 생존하도록 내던져진, 단지 운이 좋아 살아남은 여성들이 ‘몸뚱아리’로 소비되는 존재가 아닌 존엄한 인간으로서 그저 폭력의 위험 없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자신의 이권에만 눈이 먼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9월4일 오후 대구 중구 김광석 거리를 찾아 당원·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 방식으로 지역 당원들과 시민들을 만났다. ⓒ 연합뉴스
▲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9월4일 오후 대구 중구 김광석 거리를 찾아 당원·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 방식으로 지역 당원들과 시민들을 만났다. ⓒ 연합뉴스

이런 현실에도 당시 야당 대표였던 이준석은 ‘한국 사회가 여성들에게 위험한 사회라는 인식은 망상이다’라고 발언했고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윤석열은 ‘이제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윤석열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젠더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데 애를 쓰는 정치인들은, 끝끝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정치인을 믿고 시스템의 변화만을 기다리는 것이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남고, 살아가야 할까. 변화를 만드는 것은 어렵고 실현이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변화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힘을 보태고, 함께 목소리를 높여보자.

살아남기 위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국가는 다시 ‘성차별은 없다’고 대꾸할 것인가? 국가는 더 이상 죽이지 마라. 근본적으로 효과적이고 단호한 대응을 하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포괄적 성교육 기본법’의 시행을 국가의 의무로 명시해라. 여성과 성소수자 어느 누구도 젠더불평등으로 인한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지 않고, 부적절한 일이 일어난다면 사회가 함께 대응하는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성평등/성교육이 필요조건으로 선행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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