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자유. 국제무대까지 선보였다. 유엔총회 11분 연설에서 ‘자유’를 21번 부르댔다. 같은 자리에서 칠레 대통령 가브리엘 보릭이 ‘사회 정의’를 강조하며 “부와 권력을 더 나은 방식으로 분배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제안한 연설과 참 대조적이다.

한국 대통령의 연설은 감응을 주었을까. 아니다. 자유를 외치는 그의 연설은 ‘신자유’ 이데올로기조차 외면 받는 세계적 흐름에서 ‘미국의 아바타’ 수준으로 읽혔을 터다. 기실 그의 낡은 자유론은 케케묵은 냉전에 찌든 철학 또는 정치학 교수 출신들이 그의 주변에 있기에 필연적이다. 자유 아니면 전체주의로 정치체제를 단순화하는 미국의 냉전논리를 2020년대에도 되풀이하는 윤똑똑이들의 모습은 19세기 이 땅을 지배했던 주자학자들과 다를 바 없다.

▲ 윤석열 대통령이 9월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9월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낡았을 뿐만 아니라 현실 설명력도 없는 정치철학의 귀결은 어떤가. 주자학자들의 조선은 망국을 불러왔다. 다행히 그때와 달리 민중의 힘이 무럭무럭 커져있다. 다만 국제무대에서 그가 내세운 허접한 자유론은 모멸스러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보라. 윤석열의 자유는 정말 자유롭잖은가. 나는 한국 대통령이 영국 여왕을 꼭 조문하러 가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세금 들여 조문하러 가서 못했으면 무엇 때문인지 성찰해야 옳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변명의 자유다. 일본이 연 행사장까지 찾아가 ‘약식회담’을 하는 것도 자유일까. 그나마 일본은 ‘약식회담’도 아닌 ‘간담’으로 낮췄다. 정상회담 일정 조율 중에 일방적으로 불쑥 발표한 자유가 불러온 참사다. 결국 회담 또는 간담에 아무런 성과가 없다. 강제징용 현안에 진전도 없으면서 비웃음 산 꼴이다.

미국과의 ‘정상 회담’은 어떤가. 순방 전에 미국도 흔쾌히 정상회담에 응했다고 과시했다. 당연히 ‘전기차 문제’를 협상하리라 기대했다. 결과는 48초 만남이다. 더구나 바이든 앞에 온갖 웃음 짓던 대통령은 바로 ‘사고’를 쳤다. 그는 미국 의회를 “XX”라 부르고 바이든은 “X팔려 어떡하나” 따위로 조롱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사적 발언”이라고 되레 눈 홉떴다. 15시간 만에 내놓은 해명은 더 가관이다. 홍보수석 김은혜는 대통령의 욕설이 “한국 국회에 대한 우려”라고 언구럭 부렸다. 바이든과 전기차 협상을 해야 마땅했던 대통령이 못하고 한국 국회를 싸잡아 욕설한다? 그 또한 공분할 일이다. 그런데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는 해명이 정부 차원의 거짓말이라면? 우리를 개돼지로 여기는 작태와 다름없는 엄중한 사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행사장을 나오면서 막말을 한 장면이 포착됐다. 사진=MBC 영상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행사장을 나오면서 막말을 한 장면이 포착됐다. 사진=MBC 영상 갈무리

언론이 책임지고 목소리 식별을 비롯해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한다. 우리가 지켜보았듯이 대통령도 그의 참모들도 생각과 행동은 물론 정책까지 욜랑욜랑 가볍다. 민중의 고통에 감수성이 없어서다. 지금 물가와 환율로 민생과 경제 두루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기득권 세력에 치우친 정책을 무람없이 추진하며 언죽번죽 민생을 내건다. 궁금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걸까.

나라 안팎에서 곰팡내 나는 자유를 부르대는 대통령에게 권한다. 이렇다 할 학술논문이나 전공 저서도 없는 ‘석학’들에 매몰될 때가 아니다. 성악의 조수미, 빙상의 김연아, 방탄소년단,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촛불혁명의 민중들이 한국인의 품격을 높여온 상황에서 윤석열의 자유는 너무 낡았고 그의 껄렁껄렁한 언행은 국격을 떨어트렸다.

앞으로도 국제무대에서 자유를 들먹이려면 최소한 현대 과학의 성과를 담은 민주주의 철학을 살펴보기 바란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면 대통령실에 요약본을 요청해서라도 신문‧방송복합체들이 마구 퍼트리는 구린 자유론에서 벗어나 제대로 민생 정책을 펼 일이다.

자신 때문에 한국인의 품격이 계속 추락하기를 그도 바라지는 않을 터다. 그런데 어떤가. ‘협치’를 비롯해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에 절실한 제안들을 “XX”라며 내팽개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딴은 그 또한 ‘윤석열의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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