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1369호 사설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이를 보도한 매체(MBC)의 책임론으로 확대되면서 정권과 언론이 확전 일로에 놓여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실과 다른 보도”라면서 진상을 촉구한 것은 자신의 말을 왜곡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을 어떤 식으로든 묻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권과 언론은 종종 불화를 일으켰다. 다만 권력 견제 역할을 하는 언론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는 정권에 부메랑이 될 수 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본보기를 만들어 본때를 보이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특히 “진상이 확실히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대통령의 말은 보도 과정 전반을 최고권력자가 직접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국민의힘은 법적 대응을 포함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 제소까지 총동원령을 내렸다.

여권은 MBC보도를 ‘조작왜곡보도’로 규정했다. MBC가 사실확인규율 의무가 부족한 보도를 내세워 정권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정당성이 없는 허술한 보도를 했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언론 보도 매커니즘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나올 수 없는 주장이다.

첫째, MBC보도는 제작자율성 측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보통 정권이 보도 유예를 요청하면 매체 데스크는 갈림길에 놓인다. 하나는 보도 유예 요청에 대한 명분을 충분히 헤아려 보도를 하지 않거나 보류하는 방안이다. 반대로 보도 유예 요청이 정권에 불리한 내용을 막기 위한 무력화 시도라고 판단하고 보도를 강행하는 것이다. 이번 MBC보도는 대통령실이 보도 유예를 요청하면서 오히려 보도를 결정한 ‘트리거’가 된 셈이다.

MBC에 따르면 관련 영상은 첫 보도 이전부터 현지에서뿐 아니라 정치부 기자들까지 급속히 퍼져 있었다. 이에 대통령실은 대통령실 기자들에게 공식석상 발언이 아니라면서 외교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비보도를 요청했다. 대통령실의 비보도 요청은 이미 영상이 퍼져 있는 상황에서 국민알권리를 막는 부당한 개입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MBC는 영상 출처(풀기자단 영상)가 확인됐고 대통령의 문제적 발언이 끼치는 파장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보도를 결정했다.

MBC가 처음 보도하긴 했지만 다른 방송이나 매체에서 영상 내용을 계속해서 무시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도 던져봐야 한다. 되려 MBC보도가 없었다면 언론이 대통령 발언을 회피하고 감싸돈다는 전국민적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대통령 발언 내용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지만 발언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다.

▲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이 9월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이 9월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둘째, 대통령 말 한마디에 MBC를 표적삼은 일련의 행태가 결코 보도 정당성을 훼손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언론을 탄압하는 모양새가 계속되면 대통령 비속어 논란을 희석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더 크게 의심받게 된다.

MBC보도 이후 대통령실 대응이 모든 걸 말해준다. 최초 대통령실이 비보도 요청을 하고 이어 해명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15시간이다. 최고권력자의 말이 잘못됐고, ‘동맹이 퇴색되는 위험’한 보도였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 걸쳐서 해명할 게 아니다. 15시간 동안 대통령을 위기에 빠뜨리고 방치한 것은 대통령실이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 발언 진위 공방을 일으키며 뒤늦게 언론 탓을 하는 건 ‘희생양 찾기’에 다름 아니다. MBC를 포함해 ‘불확실한’ 윤 대통령의 발언 진위에 대한 보도 책임이 있다면 언론사가 지겠지만 보도 정당성까지 훼손시키려는 움직임은 언론 찍어누르기라는 말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셋째, 윤 대통령의 말은 전체 언론에 대한 선전포고의 성격도 포함돼 있다. 미국 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을 향한 비속어라고 보도했던 모든 언론을 MBC보도를 따라서 베껴쓴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이 대통령의 비속어에 적대적인 조롱과 냉소로 일관하는 게 아니다. 외교 현장에서 나올 수 없는 발언으로 규정하고 평소 대통령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거기에 대고 ‘너희들 잘못이야’라고 외쳐버린 꼴이 돼버렸다.

검찰의 종편 심사위원 및 방송통신위원회 압수수색, YTN민영화설, 감사원의 KBS감사 등 언론계가 주목하는 굵직한 현안들이 모두 정권의 언론탄압이라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MBC표적설’도 다음 칸에 비워 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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