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국익 중 어느 것이 우선인가요?”
“진실이 우선이죠. 궁극적으로 국익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4년 개봉한 영화 <제보자> 대사 중 일부다. 영화는 2000년대 초, 줄기세포 연구 성과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과 불법 난자 채취 행위를 고발한 MBC <PD수첩>의 취재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당시 MBC는 ‘국가적 인재의 연구를 방해했다’, ‘국익에 저해되는 보도를 했다’며 융단 폭격을 맞았다.

▲2005년 말 PD수첩은 ‘인간 배이줄기세포를 확립했다’고 발표한 황우석 교수가 난자를 매매하거나 연구원 난자를 사용하고, 없는 줄기세포를 있는 것처럼 논문 조작한 사실을 밝혔다.
▲2005년 말 PD수첩은 ‘인간 배이줄기세포를 확립했다’고 발표한 황우석 교수가 난자를 매매하거나 연구원 난자를 사용하고, 없는 줄기세포를 있는 것처럼 논문 조작한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2022년. MBC의 ‘윤석열 대통령 막말’ 보도가 다시금 국익 논란의 중심에 섰다. 현재 대통령실은 이를 ‘허위’로 규정한 상태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은 ‘짜깁기’, ‘조작’을 운운하며 MBC에 대한 법적 조치까지 예고했다. 하지만 해당 발언은 대통령실 출입 영상기자단에서 촬영한 풀 영상에 담긴 것이고, MBC 보도 전 영상기자단 소속 전체 언론사에 이미 배포된 상태였다. MBC가 자의적으로 허위, 조작, 짜깁기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타깃이 MBC로 특정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해당 보도를 겨냥해 “동맹을 훼손하고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정미경 전 국민의힘 최고의원이 YTN <뉴스N이슈>에 출연해 말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송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한 마디로 MBC 보도로 인해 한미 동맹이 훼손되고 국가 안보가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대통령실이나 국민의힘의 호들갑처럼 국가안보나 국익에 현저한 위험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가리켜 ‘이 XX’라고 한 발언은 ‘idiots(멍청이)’ 혹은 욕설인 ‘f**kers’라고 번역돼 현지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데, 공화당 소속 미시간주 하원의원인 피터 마이어는 “이봐, 우리만 그렇게 말할 수 있어”고 장난스레 대꾸했고, 민주당 소속 하와이주 하원의원인 카이알리 카헬레는 “지지율 20%. 존경하는 대통령님, 당신 나라에 집중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라고 비판했다. 여야 상관없이 비꼼에 가까운 농담이지, 심각한 어조는 아니다. 백악관 역시 “노코멘트하겠다”고 밝히고 “한미 관계는 여전히 굳건하다”고 밝힌 상태다.

한미 동맹은 선출직 임기제 지도자인 대통령의 실언 한 마디에 흔들릴 만큼 유약하지 않다. 설사 해당 발언이 보도돼 한미 동맹이 훼손되고 국가 안보가 위험해졌다면 그 책임은 언론이 아니라 대통령 당사자가 져야 마땅하다.

MBC 보도의 핵심은 ‘대통령이 비속어를 썼다’, ‘미국 대통령과 미국 의회를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 그 짧디짧았던 외교 무대에서조차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세와 태도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행사장을 나오면서 막말을 한 장면이 포착됐다. 사진=MBC 영상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행사장을 나오면서 막말을 한 장면이 포착됐다. 사진=MBC 영상 갈무리

행사장을 빠져나오던 대통령이 참모들과 이야기 나누던 도중 나온 대화인 만큼 ‘사적 대화’였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엄연히 여러 나라에서 온 언론사 카메라가 모여있던 공식 현장이었고, 외교 무대의 한복판이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한 사람이, 사석에서나 나눌 비속어를 사용해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에 적절한 장소는 아니다.

우리 국민은 우리 대통령이 그 정도 분별은 있는 사람인지, 외교 무대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 권리가 있다. 그리고 언론은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윤 대통령이 실언했다는 ‘진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다시 영화 <제보자>의 대사로 돌아가 보자. 진실보다 우선하는 국익이 있을까? 국익을 위해서라면 자국 대통령의 허물쯤은 덮어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일까? 그렇게 해야만 국가 안보와 국익이 지켜지는 나라를 온전한 국가라고 볼 수는 있는 것일까? 진정 참담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의회를 향해 비속어를 사용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그 자체가 아닌, 여전히 진실보다 우선하는 국익이 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다. 황우석 사태가 벌써 20년 전의 일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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