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신문방송 모니터 보고서]

▲ 9월30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 9월30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섰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정책금리를 지속해서 큰 폭으로 올리며 긴축을 시사하자,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는데요. 한국 역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400원을 돌파한 환율을 비롯해 코스피 2300선이 무너지고, 무역수지가 넉 달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고환율·고금리·고물가에 무역적자까지 악화 하며 복합적 경제위기 우려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언론에도 경제위기를 강조하는 보도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고환율 책임을 국민에게 돌리는 언론보도 문제를 살펴봤습니다.

환율 급등, 달러 사재기하는 국민 탓?

9월23일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은 SNS에 “1997년 외환위기 때 금을 모아서 나라를 구하자고 나섰던 국민들이 이번에는 한국물을 팔고 떠나는 외국인보다 더 맹렬한 기세로 달러를 사들이기에 바쁘다”고 비판했습니다. 연합뉴스는 <전 기재차관 “위기때 금 모으던 국민이 외국인보다 달러 더 산다”>(9월26일 박용주 기자) 가장 먼저 김 전 차관의 발언을 보도했는데요. 김 전 차관이 “투기적 목적으로 달러를 사재기하는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했다”며 그의 이력을 자세히 덧붙였습니다. MBN <김용범 전 기재차관 “위기 때 금 모으던 국민, 외국인보다 달러 더 사”>(권지율 인턴기자) 역시 김 전 차관이 “지금 국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달러를 사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라 꼬집었다며 “달러 사재기를 하는 국민”과 이를 “제한하지 않은 당국 역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했습니다.

▲ 9월26일부터 27일까지 고환율을 국민 탓으로 돌리는 김용범 전 기재차관의 발언을 보도한 기사.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9월26일부터 27일까지 고환율을 국민 탓으로 돌리는 김용범 전 기재차관의 발언을 보도한 기사. 표=민주언론시민연합

뒤이어 김 전 차관의 발언을 인용해 환율 상승을 국민 탓으로 돌리는 언론보도가 나왔습니다. 세계일보는 <사설-“원화, 아시아에서 가장 취약” 경고 허투루 들어선 안 돼>(9월26일)에서 김 전 차관의 발언이 “정책 당국자들과 국민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고 주장했고, 한국일보 <사설-환율 1430원도 뚫려, 이 판국에 내국인 달러 사재기>(9월27일)는 김 전 차관이 “‘검은 머리 외국인’의 준동을 경고했다”며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환투기를 제어해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한은에 따르면 지난 8월 비거주자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순매입 규모는 60억 8000만 달러(잠정치)까지 늘어 투기수요 유입이 뚜렷이 나타났다”며 “내국인 거래든 환투기 제어용 비상조치까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 9월27일, 환율 상승을 국민탓으로 돌린 한국일보 사설
▲ 9월27일, 환율 상승을 국민탓으로 돌린 한국일보 사설

연합뉴스 <연합시론-환율 급상승 속 아시아 제2금융위기 우려도, 선제 대응해야>(9월27일)도 김 전 차관이 달러를 사들이는 국민을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며 해외 투자자들의 달러 매입과 함께 정부가 “환율시장을 교란하는 투기성 행위를 신속하게 차단”하고, “가용한 모든 수단을 재빠르게 동원”해 “선제 대응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개인 달러 자산 감소’, 사실관계 바로잡은 보도 4건뿐

김용범 전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의 발언은 환율 상승을 국민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주장입니다. 국민이 달러 사재기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기업이나 국가가 운용하는 금액에 비하면 턱없이 낮고, 환율을 관리해야 할 주체는 국민이 아닌 정부입니다. 그러나 문제의식 없이 첫 보도한 연합뉴스를 따라 복붙(복사-붙여넣기) 기사가 이어졌는데요. 총 22건의 기사 중 김 전 차관의 발언을 지적한 기사는 4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김 전 차관의 발언을 지적한 첫 보도는 조선일보 <“금모으기했던 국민들, 달러 사기 바빠” 금융위 전 부위원장 발언 역풍>(9월26일 유소연 기자)로 “국민들이 달러 사재기에 나섰다고 할 상황이 아니어서 지나친 주장”이라 지적했는데요. 한은이 발표한 [거주자 외화 예금 동향]에 따르면, “8월 국내 달러 예금 잔액은 기업(84.1%) 비율이 개인(15.9%)보다 월등히 높”고, “개인의 달러화 예금 잔액 비율은 지난 1월(20%) 이후 올 들어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라고 전했습니다. 덧붙여 “올 들어 환율이 오를 때 개인들은 이익 실현을 위해 달러를 팔았는데, 추가 상승을 기대한 기업들은 달러를 보유하려는 경향”이며, “외환 자유화 시대라고 하면서 달러 예금 등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한은 관계자 발언을 실었습니다.

한국경제 <‘달러 사재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 상승했다고?…사실일까-조미현의 외환·금융 워치>(9월27일 조미현 기자)는 “개인의 달러화 예금은 119억 4,000만 달러로 전달보다 5억 5,000만 달러 감소했”고, “2016년 8월(15.7%) 이후 6년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며 “예금 잔액으로 보면 개인의 달러 사재기 움직임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은 상황으로 개인들은 오히려 이익 실현을 위해 달러를 팔았다는 한은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다만, 해외투자 급증에 따라 달러 매입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며, 개인 투자와 국민연금 등 연기금 투자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한국은행과 국민연금이 통화스와프를 맺은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국제정세 핑계 대며 환율 손 놓은 것은 정부

그동안 정부는 환율 상승을 대외적인 영향 때문이라며 손 놓고 지켜봤습니다. 중앙일보 <환율 무대응이 능사인가>(9월17일 황정일 기자)는 “원화 가치 하락세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공포 그 자체”로 “과거 정부가 환율에 기민하게 대응하던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무대응에 가깝다”며 킹달러가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나, 이것이 정부가 손 놓고 있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김용범 전 기재부 차관은 갑작스레 그 책임을 국민에게 돌렸습니다. 언론은 비판 없이 그의 이력에 기대 SNS를 받아쓸 것이 아니라, 발언의 진의를 살펴 잘못된 주장엔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과거 국민일보 <‘IMF는 국민 탓’ 가르치는 초등학교…네티즌 “적반하장” 분노>(2016년 10월10일 정지용 기자)는 1997년 외환위기를 “방만 경영을 일삼은 재벌과 관리 감독에 손 놓은 정부의 합작품”이 아닌 ‘근검절약하지 않은 국민 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주장을 비판하는 여론을 전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닌지 언론은 사실이 아닌 잘못된 주장을 잘 살펴 감시하고, 환율 관리 주체인 정부에 제대로 된 대책을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9월26~27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김용범’으로 검색한 관련 기사 전체. 2022년 9월14~27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7>(평일)/<뉴스센터>(주말),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된 ‘환율’ 관련 기사 전체

※ 미디어오늘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민언련 신문방송 모니터’를 제휴해 게재하고 있습니다. 해당 글은 미디어오늘 보도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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