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모씨’, ‘30대 직장인’ 뉴욕타임스는 실명 등장
외신은 고향, 꿈, 미담 등 일반인 피해자의 삶 집중 조명
메인에 길이 긴 종합보도, 한국은 가십성 기사 전면 배치

지난달 29일 밤 서울 이태원 참사에 한국 언론은 물론 외신도 연일 소식을 전하고 있다. 외신은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워싱턴포스트(WP), CNN 등 외신의 이태원 보도를 분석했다.

김서정, 정솔, 만라파즈…27명의 실명 쓴 NYT

뉴욕타임스(NYT)는 29일 이후 약 10건의 이태원 참사 기사를 썼다. 해당 기사들에서 등장하는 실명은 총 27개다. 현장 목격담을 전하는 취재원 중 ‘익명’은 없었다. 이모씨, 김모씨 등 익명 취재원을 사용한 한국 언론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NYT는 현장 소식을 전하며 김서정, 정솔, 베네딕트 만라파즈, 자넬 스토리, 아하메드, 세틴카야 등 실명 취재원을 사용했다. 각각의 취재원은 짧게 소비되지 않고 최대한 자세하게 경험을 전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김서정 씨는 NYT에 “오후 8시 골목에 들어섰을 때 이미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한 발짝도 내딛기가 어려웠다”며 “한 시간 뒤에 포기하고 돌아서서 집에 가려고 했지만 반대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없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사람들이 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자넬 스토리 인스타 갈무리.
▲ 자넬 스토리 인스타 갈무리.

영어 교사 자넬 스토리 씨는 NYT에 “참사가 일어났던 그 골목의 코너에서 10시 30분경 엄청난 인파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것을 봤다”며 “처음에는 만취한 사람들의 무질서라고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온 후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NYT는 그녀의 목격담을 증명할 수 있게끔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사에 첨부했다.

NYT 외에 다른 주요 외신도 마찬가지다. 영어교사 파머 씨는 CNN에 “거리의 사람들에게 압도돼 술집으로 들어갔다”고 말했고 조수아 씨는 “사건 이전에 인원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10개가 넘는 기사 중 CNN이 사용한 익명 취재원은 1명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필라테스 강사 김지애 씨와 대학생 이태훈 씨를, 워싱턴포스트(WP)는 장주아 씨를 실명으로 기사에 실었다. WSJ에서 김지애 씨는 친구가 응급 구조원에 빨간 립스틱을 빌려줘 사망자 배에 표시할 수 있도록 도왔고 의상의 일부로 입었던 하얀 수건을 시신을 가리는데 사용했다며 “창백한 얼굴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 대부분의 현장 취재원을 ‘익명’으로 처리했다. 조선일보는 31일 지면 3면에서 현장 소식을 전하며 20대 이모씨, 또 다른 이모씨, 28살 김모씨, 상인 A씨 등으로 현장 소식을 전달했다. 중앙일보는 일부 실명을 사용했지만, 김모씨, 30대 직장인, 권모씨 등 익명이 다수였고 한겨레 역시 동아무개, 지아무개 등 익명이 자주 등장했다.

유명인 대신 일반인 피해자 생애 조명

일반 한국인 피해자의 생애를 조명한 기사도 눈에 띄었다. NYT는 박가영 씨를 포함한 4명의 삶을 조명했다. NYT는 30일 기사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딸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다(‘How can I explain it in words?’: A mother mourns the loss of her daughter)’ 기사에서 “박가영 씨는 캐나다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는 것이 꿈이었던 19세 대학생이었다”는 부제목을 달았다.

▲ 30일자 NYT 보도. 일반인 피해자 박가영 씨의 삶을 조명했다.
▲ 30일자 NYT 보도. 일반인 피해자 박가영 씨의 삶을 조명했다.

이어 NYT는 “한국 홍성이라는 시골 마을 출신인 그녀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도시 대전의 목원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캐나다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었다”며 “딸과의 마지막 대화는 유학 준비에 관한 것이었다”는 피해자 어머니의 발언을 전했다.

이외에도 NYT는 고등학생 2학년 김동규 군의 사망을 보도하며 “삼성전자에 취직해 할머니에게 용돈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학생 시절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옷을 사줬다”는 미담을 전했다. WP는 29일 기사에서 최보성 씨의 사진과 함께 “생일을 맞아 절친 두 명과 함께 축하하기로 한 날”이라고 보도했다. 피해자와 유족들 모두 실명으로 보도됐다.

한국에선 유명인의 사망 소식이 화제에 올랐다. 지난달 30일 각 언론사의 네이버 ‘랭킹뉴스’에는 프로듀스101 출신 배우 이지한, 치어리더 김유나 씨의 사망 소식이 순위권에 포진됐다. 일반인 피해자의 사망 소식은 익명으로 처리됐다.

한 기사에 모든 것 담는 종합 보도…가십은 없었다

주요 외신은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하나의 기사에 모두 포함하고 있다. 현장 증언, 피해 규모, 핼러윈의 의미, 한국의 치안, 유족 인터뷰, 당국의 대비 부족 등의 내용이다. 사안별로 구분해 보도하고, 가십성 기사를 쏟아내는 한국 보도와 구별된다.

NYT는 메인에 이태원 참사 기획으로 4가지 섹션(어떻게 축제는 끔찍하게 변했나, 피해자들, 피할 수 있었던 재앙, 몰려드는 인파 속에서 해야 할 일)을 두고 있다. 모두 한글 기준 3000자(공백포함)가 넘는다. 종합기사 성격을 띠고 있는 첫 번째 섹션(어떻게 축제는 끔찍하게 변했나) 기사는 5000자가 넘었다. 현장 분석부터 관리 인력이 부족했던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사태를 짚었다.

▲ WP의 이태원 참사 보도. 기사 왼편에 시간 순으로 확인된 사실이 나열돼 있다.
▲ WP의 이태원 참사 보도. 기사 왼편에 시간 순으로 확인된 사실이 나열돼 있다.

CNN 역시 하나의 기사를 클릭하면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이 시간순으로 정리된 ‘종합기사’로 넘어간다. 길이는 8000자가 훌쩍 넘는다. 29일 사건 당일의 속보부터 현재까지 ‘확인된’ 사항을 정리했다. WP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기사를 클릭하면 전체적인 흐름을 볼 수 있다. “거리가 오전 3시 40분에 정리됐다”는 현지 특파원 속보와 함께, 전문가 인터뷰, 도미노 효과(domino effect), 21세기 재난 현황 등 사건에 대한 분석이 한 기사에 모두 담겨 있다.

쉽게 종합적인 흐름을 알 수 있는 외신과 달리 한국에선 이러한 정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네이버 뉴스에서 각 언론사 메인에 걸려 있는 기사는 대부분 자극적인 단건 보도다. 1일 오전 기준 조선일보의 뉴스 페이지에는 ‘이태원 참사 조롱? 베트남 핼러윈 코스프레 논란’과 ‘내 친구 죽어가는데 웃고 노래했다’는 기사가 메인에 배치돼 있다. 국민일보는 ‘숨진 美대학생, 연방 하원의원 조카였다…“가슴 무너져”’, ‘다리 전체 피멍…“압박 이정도” 이태원 생존자의 사진“을 배치했고, 서울신문은 ‘밀어! 외쳤다는 토끼머리띠男 등장…“절대 밀지 않았다”’ 기사를 메인에 걸었다.

▲ 1일자 조선일보와 국민일보 네이버 뉴스 메인.
▲ 1일자 조선일보와 국민일보 네이버 뉴스 메인.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기사도 이러한 ‘가십성’ 기사다. 1일 오후 12시 기준 조선일보 네이버 랭킹뉴스 1위 기사는 토끼머리띠 남성 기사였고, 한국경제 1위 기사는 ‘“사람이 죽어간다, 제발 도와달라”…경찰관의 처절한 외침’, 중앙일보 1위 기사는 ‘“사람 죽고 있다, 제발 돌아가라” 그날 목 쉬도록 외친 경찰관’ 기사였다. 매일경제 랭킹 1위은 ‘“쓰레기 XX”…이근, 이태원 희생자 2차 가해 악플에 분노’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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