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언론? ‘취재경쟁’ 앞에서 무너진 ‘재난보도준칙’
수습·인턴 등 또 저연차 기자들이 주로 현장에 내몰려
“데스크 ‘인권감수성’ 문제, 감성적 보도보단 시스템에 더 주목해야”

“유가족들이 기자분들의 취재 때문에 불편하다고 합니다. 향후 취재하실 때 조금 더 조심스럽게만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울 서초경찰서가 기자단 간사에게 요청해 나온 공지다. 같은 날 서울 중부경찰서에서도 대동소이한 공지가 나왔다. 이태원 사고 희생자 장례식장 곳곳에서는 언론의 무리한 취재가 이뤄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에 나선 기자들 역시 ‘딜레마’를 안고 취재를 하고 있다. 이번 참사 취재의 문제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지난달 31일자 MBC, KBS, SBS 저녁 메인뉴스 화면 갈무리. 지상파 3사는 이날 뉴스 시작에 앞서 가급적 사고 현장 영상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자 MBC, KBS, SBS 저녁 메인뉴스 화면 갈무리. 지상파 3사는 이날 뉴스 시작에 앞서 가급적 사고 현장 영상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방송사 소속 A기자는 “유족에게 20~30명씩 붙어 브리핑 요구하듯 따라간다. 유력인사가 법원이나 검찰을 나설 때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서 차에 탈때까지 쫓아가는데 유족이 빈소를 나설때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유족 취재하는 기자들은 (유족이) 펑펑 울고 있는데 물어본다. 욕설 들어가면서 쫓겨난다”며 “(데스크로부터) 왜 (멘트를) 못 땄냐는 소리 듣고 또 들어가게 된다. 타사 기자들이 멘트를 받아내면 혼난다. 그럼 또 빈소에 들어가고 욕을 먹는다”고 토로했다.

사고 직후부터 이 같은 취재가 이어지고 있다. 사고 직후 현장에 투입된 일간지 소속 B기자는 “기자들이 40~50명 장례식장 앞에 진을 치다가 유족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갔다가 나오면 (시신의 신원을) 확인했냐고 물어본다”며 “(인터뷰) 의사를 묻기도 전에 한 명이 일단 물어보면 그 순간부터 물 먹으면(낙종을 하면) 안 된다는 심리로 핸드폰 녹음을 켜서 우르르 달라붙는다. 실종자 유족은 의사와 관계없이 세 겹 네 겹으로 둘러싸여 영상에 찍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기자에 따르면 유족들은 장례식장 앞에서부터 취재를 거부했으나 기자들은 주차 정산기기 앞이나 택시를 타는 순간까지 둘러싸 취재했다.

일간지 소속 C기자는 “사연을 들어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참사의 원인에 집중해야 하는데, 사망자들의 사연 취재가 큰 보도가치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일간지 소속 D기자는 “장례식 취재 꼭 해야 하나, 데스크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D기자는 “사연을 통해 참사의 비참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건 알겠다”면서도 “비리 취재라면 매달리기도 하고 뻗치기 하는 것에 정당성이라도 찾을 수 있지만 지금은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른바 ‘기레기’라는 표현이 널리 쓰였다. 유가족에게 무리한 취재를 하는 언론, 확인 없이 받아쓰기를 하는 언론, 참사를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언론 등 논란이 잇따랐다. 언론은 ‘변화’를 다짐했고 일부 변화도 있었지만, 이번 참사 보도는 여전히 과제가 산적해 있음을 드러냈다.

지상파 3사(MBC·KBS·SBS)와 YTN이 이태원 압사 사고를 보도하면서 원인 규명 등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참사 현장 영상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실은 고무적이다. 이 같은 판단을 가장 먼저 한 MBC는 △상황 설명, 사실 전달 등의 목적에 따라 필요한 경우에만 동영상으로 사용하되 현장음을 제거할 것 △일반적 밑그림으로 사용할 경우 정지화면으로 처리해 사용할 것 △출연 밑그림으로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을 것 등을 공지했다. 보도와 관련해 ‘희생자와 유족들 관점에서 보고 시점과 상황에 맞지 않는 접근을 삼갈 것’ 등을 공지하기도 했다.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이태원 사고 사망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헌화를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이태원 사고 사망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헌화를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언론인 단체들도 ‘자정’을 위해 나서고 있다. 지난달 30일 한국기자협회는 협회 임원과 전국 199개 지회에 ‘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을 기자들에게 전파해달라고 요청했다. 방송기자연합회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결정을 전하며 재난보도준칙 준수 및 영상 기준 마련 등을 회원사들에 요청했다. 재난보도준칙은 언론이 방재와 복구 기능이 있음을 유념해 피해의 확산을 방지하고 피해자와 피해지역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일부 ‘신중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모습도 이어져 논란이 됐다. 사고 당일 모자이크나 흐림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여과 없이 현장을 전한 보도,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을 향한 질문 공세, 사연 중심의 보도, 온라인상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들 등이 대표적이다.

사고 당일에는 ‘선정적 보도’가 문제였다. 언론인권센터는 “갑작스런 이번 사고의 현장은 시민들의 SNS를 통해 빠르게 공유되었고, 언론매체들은 사고 현장을 앞다투어 보도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제보영상을 흐림처리만 하여 그대로 방송에 노출했다”며 “매우 충격적인 것임에도 뉴스특보라는 이름 하에 끊임없이 반복되어 방송되었는데, 사고 현장에 있던 당사자들은 물론 시청자들에게도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보도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역시 “대형 참사와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절제된 보도가 요구되지만, 이번에도 ‘신속’만 있을 뿐 ‘신중’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특히 현장에선 재난보도준칙이나 가이드라인이 ‘취재경쟁’과 ‘기사 압박’ 속에서 무너진다고 입을 모아 지적했다. A기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이 달라진 척하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현장 기자들은 하나도 안 변했다고 말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유족 취재를 최대한 자제한다고 공표했지만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C기자는 “수습, 인턴 기자들 중심으로 현장에 보내졌다. 압박감에 무리해서 물어보기 때문에 기자들한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D기자 역시 “데스크에서 무리하게 취재하지 말라고 했고, 되는 데까지만 하라고 했는데도 현장에 갔으니 뭔가 얻어와야 하고 기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니 계속 접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지금 20대 기자들의 인권감수성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 하지만 데스크의 인권감수성은 낮다. 그들이 변하지 않는 이상 저연차 기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는 건 사실이다. 차라리 데스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며 “데스크가 요구한 걸 달성하지 못하면 무능하다는 얘기를 듣게 되니, 억지로 따르게 되는 거다. 포털 중심의 경쟁 구도에서 이런 일이 더 발생한다.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심리적 안정과 인권보호가 가장 중요한데 무시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장례식 보도뿐 아니라 SNS나 커뮤니티를 받아쓰는 기사 역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현장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나 유가족 취재가 무조건 해선 안 되는 건 아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취재와 보도의 가치가 있다”면서도 “트라우마를 만들 수 있어서 딜레마가 있기에 상황에 따라 기자와 언론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경쟁 상황에서 대부분의 판단이 상업적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당사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저널리즘 가치를 극대화하기보다는 많은 클릭과 주목을 끌 수 있느냐의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영흠 선임연구위원은 “데스크 차원에서 자제하자고 해도 어떻게 해서든 멘트를 따오는 기자들을 잘했다고 칭찬하니 기자가 내몰린다”며 “기자들이 중압감을 느끼는 것이기에 데스크가 선제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데스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서울경찰청 수사본부 수사관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일대에서 발생한 핼러윈 대규모 압사 참사 현장을 합동감식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서울경찰청 수사본부 수사관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일대에서 발생한 핼러윈 대규모 압사 참사 현장을 합동감식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저연차 기자’를 중심으로 현장에 내보내면서 ‘데스크와 간극’이 생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언론에선 달라진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저연차 기자를 현장에 내보내는 언론사들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 C기자는 “기자 개인이 취재 범위를 설정할 수 있는 1진들이 현장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영흠 선임연구위원은 “재난 상황에서 보도 경쟁을 최소화하는 합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현장에서 풀단(기자단)을 구성하고 몇 가지 규칙을 만들어 현장에서 약속할 필요가 있다”며 “또한 재난상황에선 팩트여도 다 보도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국민과 시청자들이 트라우마를 갖게 될 수 있고, 인권 침해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B기자 역시 “최소한 풀단을 꾸리고 어떤 식으로 질문할지 의사를 묻는 등 규칙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물론 문제적 취재만 있는 건 아니다. 한편에선 유의미한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사고 전부터 신고가 빗발쳤으나 경찰이 제때 대응을 하지 못한 사실, 응급실이 분산되지 않아 의료공백이 발생한 문제, 현장 안전 통제 인원이 미비했던 문제 등이 언론 보도로 주목받고 있다.

심영섭 교수는 “유가족에게 집중해 감성적 뉴스를 만드는 것보다 ‘시스템’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 정부에서 애도 기간이라고 했지만,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며 “‘책임자’를 찾아 경질하자는 게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찾아야 하고, 무엇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주목해야 한다. 언론은 독자의 시선이 어디로 머물러야 하는지 찾아내야 하는데 많은 언론이 이 역할을 하지 않고 남의 시선만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