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 대한민국이다! ④]

10월29일은 지방자치의 날입니다.

지방자치의 정착이라는 공보처의 설립 취지를 통해 탄생했기에 지역민방이 느끼는 지방자치는 남다르다고 합니다.

수도권 초집중과 지방소멸의 위기, 강한 구심력에 비해 약한 원심력. 어디서부터 해법을 찾고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까요?

지역방송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지역민방 9개사는 10월 24일부터 30일까지 한주를 지방자치 주간으로 정하고 기획보도, 특집 대담, 캠페인 등의 제작 편성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본지에는 릴레이 기고를 희망해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기획 연재 '지역이 대한민국이다' 시리즈를 통해 지역의 생생한 목소리를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 편집자 주

 

세상이 저절로 굴러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 질서는 물론이고 국가나 지역 그리고 마을마저도 생존과 번영을 위한 이해관계가 작동한다. 세상이 복잡해진 만큼 그 이해관계를 헤아리기도 복잡해졌다. 결국은 표현이다. 즉,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다른 그림을 그리게 된다. 단어, 때로는 문장화에 가까운 문구를 둘러싸고 벌이는 언쟁(言爭)을 담론이라 한다. 이러한 담론은 공론장에서 형성될 때 건강하다고 말한다. 현대사회에서 공론장 역할은 미디어의 몫이기도 하다. ‘공론장의 대의제’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소득, 교통, 교육, 해양생태계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민생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공론(公論)’이 형성된 기억이 없다. 없었다기보다는 큰 담론에 묻혀버렸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일례로 제주언론들은 제주도의 정책의제(policy agenda)를 받아쓰는 데에 머물러 왔을 뿐, 그 이면에 담긴 숨은 폐해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제주도와 전 국민이 제주도를 세계 7대 불가사의 명소로 만들자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전화 투표 캠페인은 지금 생각해도 낯 뜨거운 장면이다. 일종의 ‘집단 광기’였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이처럼 언론이 누군가 특히 정치권의 정책의제만 받아 쓸 경우에는 정작 중요한 공공의제(public agenda)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론장의 미형성과 다름없다. 이는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십상이다. ‘판박이식 논의’만 무성할 뿐 ‘창의적 분권’ 개념은 공론장에 진입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 2011년 11월12일 오전 정운찬 제주-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이 제주아트센터에서 제주가 뉴세븐원더스 재단이 실시한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됐음이 선포된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1년 11월12일 오전 정운찬 제주-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이 제주아트센터에서 제주가 뉴세븐원더스 재단이 실시한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됐음이 선포된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론’은 어떤 문제에 대해 국민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정한 의견이나 여론을 말한다. 지역언론은 ‘공론장’ 형성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갖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언론보도를 통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소식을 접함으로써 지역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것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언론은 지역민에게 ‘정보 전달자’로서의 역할은 물론 ‘프레임 설정자’, 나아가 ‘여론 형성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지역민들이 알아야 할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언론보도는 지역주민들의 이해와 해석을 도와주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지역공론장이 형성된다.

흔히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출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역사회의 각종 의사결정 과정에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전제되어야 함을 가리킨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의 지역인식과 자치의식, 이에 걸 맞는 가치관 형성이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사회에는 ‘중앙중심적 사고’가 짙게 깔려 있다. 이로 인해 지역은 자립적 생존 능력을 키우지 못했고, 지방자치에 대한 지역주민의 정치의식 또한 제대로 배양되지 못했다. 지역주민들의 의사와 요구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반영될 수 있는 ‘공공의 장’으로서 언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지역공론장을 만들어나갈 지역언론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언론의 공익적 역할이 상업적 질서에 의해 위협받은 지 오래되었다. 특히 최근에 들어서는 지역방송의 위기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간간히 성공사례들이 보고되고 있기는 하나 단기적 사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공의 지원도 일정한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생존논리만 남고 지역방송의 공익적 역할은 사라질 게 뻔하다. 그럴수록 지역방송은 지역의 필수불가결한 사회적 자본으로 인식되기보다는 지역의 ‘영세 방송 사기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지역공론장 형성의 거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자연히 기사 생산비용이 적은 정치권의 정책의제가 난무하게 될 것이다. 받아쓰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 제주만 하더라도 제주특별자치도청에 등록된 언론사는 2022년 9월 기준 115개에 이른다. 동일 시점 기준 제주의 인구가 약 68만 정도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작은 지역 내 무수히 많은 언론사가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29개였던 2009년에 비해 무려 293%가 증가한 수치다. 언론사 당 취재기자 수만 보더라도 비교적 여건이 좋은 언론사의 경우도 10명이 채 되지 않거나 많더라도 20명을 넘지 않는다. 출입처 중심의 소식으로 ‘지면과 시간 채우기’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강한 공론장 형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한 언론사에 최소 30명은 있어야 ‘제주 곳곳의 이야기’와 ‘제주도민의 요구’가 반영된 ‘공론장의 기본’을 갖춘 보도를 할 수 있다. 적정한 규모를 갖추어 지역인식을 고취시키고 지역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때, 지역언론은 지역사회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지역언론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은 공적 지원에 대한 당위성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 제주도청 현판. ⓒ 연합뉴스
▲ 제주도청 현판. ⓒ 연합뉴스

지역언론이 건강한 공론장 형성을 통해 지방자치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적정 규모의 취재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기자들은 기계가 아니다. 공장 돌리는 식으로 공론장을 만들어 갈 수는 없다. 지역언론이 건강한 공론장 안으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 의제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정치화된 정책의제만 무수히 반복 재생산 될 것이다. 중앙권력 분점은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지역 나름의 ‘창의적 지방분권’이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성공을 위한 핵심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자들이 차분하고, 깊게, 창의적으로 지역사회 담론을 미디어의제로 생산하지 않는 한 지역의 공론장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 지금은 지역사회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지역언론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야 할 때이다. 건강한 지역공론장을 만드는 지역언론이 우리의 안전과 삶을 풍부하게 하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점을 다시금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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