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부가 적극 육성하는 관광특구에서 무정부 상태와 같은 무질서가 공권력에 의해 방치되어 300여 명이 죽고 다쳤다. 상식이 통하는 나라라면 피해자에 대한 애도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 피해자 유가족 등에 대한 심심한 위로를 포함한 적극적인 사회적 배려, 사고 원인 규명, 법적, 정치적 책임을 지는 일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을 터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의 경우 기이하다.

참사 발생 직후 행안부 장관은 행사 주최자가 없었고 사전 예방이 불가능한 사고라고 했다. 대통령도 장관의 말이 정해준 틀 안에서 발언했을 뿐이다. 멀쩡한 젊은이들이 참변을 당했는데도 사과 한마디 없었다. 정부는 이어 경찰 등 공권력의 사고 예방 조치 등에 대해서는 예년의 경우와 비교해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강변했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들에 대한 손가락질이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게 됐다. 법률적으로 말하는 피해자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갔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해서 문제가 생긴다는 피해자 사고 유발론이었다.

▲ KBS가 지난달 30일 뉴스9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전날 이태원 핼러윈 데이 참사 관련 경찰 사전 배치 문제에 대해 인파가 우려할 수준이 아니었다고 발언한 것이 부적절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진=KBS 뉴스9 갈무리
▲ KBS가 지난달 30일 뉴스9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전날 이태원 핼러윈 데이 참사 관련 경찰 사전 배치 문제에 대해 인파가 우려할 수준이 아니었다고 발언한 것이 부적절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진=KBS 뉴스9 갈무리

이런 해괴한 논리는 상황의 특수성 등을 외면한 자들이 내놓는 해괴한 논리로 오늘날에는 법이론 분야에서 거의 퇴출된 상태다. 그러나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그 취임 6개월이 채 안 된 시점에서 발생한 참사에 대한 후속 조치는 법치와 정의로운 정치가 포함된 상식과 상궤를 벗어난 식으로 강행되고 있다.

이번 참사 이후 발생한 현상 가운데 먼저 살필 부분이 피해자와 유가족 등에 대한 정치, 사회, 윤리적 배려 문제다. 참사 발생 후 정부가 국가 애도 기간을 정한 뒤 영정 사진과 이름을 써놓는 위패 없는 합동분향소가 전국 곳곳에 설치됐다.

하지만 그 모습도 기이했다. 우리의 장례 관습은 고인 명패와 영정 사진을 놓고 애도하고 추념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그것을 외면했다. 추념 리본도 그랬다. 행정부 쪽에서 아무 글씨도 새기지 않은 것으로 사용하라는 지침이 내려진 것이다.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고인을 기억하고 슬퍼하는 상징인데 일률적인 형식을 고집한 것이다. 이는 합동분향소에 사진과 이름을 생략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애도 기간이 끝난 뒤에도 피해자 명단 전체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외국인 다수가 포함돼 있고 대부분이 젊은이들인 피해자 전체 상황이 공개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를 외면한 처사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과오가 아닌 공권력의 직무유기 성격에 의해 참변을 당한 경우라서  그들을 집단으로 추모하는 사회적 배려가 절실하다. 영정 사진과 위패는 피해자의 상징이다.

▲ 지난 11월4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 현장 인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추모객들이 찾아들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지난 11월4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 현장 인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추모객들이 찾아들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유족이나 가족에 대한 배려도 문제다. 그들의 슬픔과 분노를 생각할 때 그들만의 공동체가 만들어져 서로를 확인하고 슬픔을 나누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이 공권력 등이 마땅히 해야 할 책무가 아닌가. 그렇게 하는 것이 재발 방지 등의 대책을 마련하는 추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명단 공개를 ‘폐륜, 정치적 악용’ 등과 같은 흉한 말로 비난하는 여권의 행동은 너무 빗나갔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두 번째 문제는 사고 원인 규명 모습이다. 대통령, 특별수사팀은 주로 해당 경찰이 책임이라는 식의 중간 수사결과를 계속 발표하고 있다. 이른바 법대로 하는 수사의 모습이다. 그러나 대통령 집무실이 수 km 안에 위치해 있어 그에 대한 경호와 참사 현장에 대한 안전 조치와의 관계 등은 점차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참사를 유발한 ‘가까운 원인’과 ‘먼 원인’ 등에 대한 철저한 규명 작업이 이뤄져야 하지만 대통령과 행안부 장관, 경찰 수뇌부 등은 참사 지역 관할 경찰과 지휘 체계에 대한 수사로 좁히는 언행을 계속하고 있다.

세 번째 공권력의 사과 문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은 애도 기간이 끝날 즈음까지 사과 발언을 하지 않다가 종교 행사 등에서 발언하는 과정에 한두 문장 언급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가 권장 육성하는 관광특구에서 발생한 대규모 참사라면, 참사에 국한한 대국민 기자회견과 같은 형식으로 피해자와 가족, 전체 국민에게 정중히 사과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경찰 대응이 문제였다고 장시간 호통 치는 모습을 녹화해 방송에 나가도록 했다. 이는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대통령 소신을 표명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외신 기자회견에서 외신 기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KTV 영상 갈무리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외신 기자회견에서 외신 기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KTV 영상 갈무리

국무총리가 외신 기자회견을 자청해 농담하거나 미소 짓는 등의 행동을 한 것은 그렇지 않아도 상처 난 국격을 더 추락시켰다. 행안부 장관이 ‘불가피한 사고’에서 ‘참사’라고 말 바꾸기를 하면서도 사퇴에 대해 선을 긋는 태도가 완강한 것도 꼴불견이다. 여권이 반대하면 야당이라도 앞장서서 해야 할 책무라고 보여진다.

9일 한 조간 신문의 관련 기사 제목이 <한덕수·이상민·윤희근 모두 사퇴 거부… “어려운 길 가겠다”>였다. 이런 모습은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와 책임 소재 규명이라는 사회적 요구 앞에 바리케이트를 치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정치는 정(正)이라 했다. 올바름을 실천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꼼수를 부리는 식은 곤란하다.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 열흘이 넘는 기간 동안 보여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행안부, 경찰의 태도는 ‘국정 최고 책임자와 각료는 참사와 직접적인 정치적 책임이 없다’는 각본에 의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피해자들에 대해 그들을 기억하고 상징할 수 있는 영정, 이름조차 백지로 만들어 버린 상징 조작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피해자들 상징은 찾을 수 없고 대통령, 총리, 장관들의 목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과거 독재정권이 했던 수법은 국민 분노와 슬픔이 집중될 수 있는 구심점을 파괴하는 것이었는데, 이와 많이 닮아 있다. 피해자와 유가족 등에 대한 정치, 사회, 도의적 배려를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정치 현실이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