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매년 산업재해로 2천명 이상이 사망하는 나라다. 노동부는 8백 명이라고 발표하고 있는데 이는 추락사, 끼임사와 같은 공사 현장이나 공장에서 일어나는 ‘사고’ 사망자 수만 발표한 것으로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를 적어 보이게 만들고자 하는 꼼수다. 과로사와 직업병 등의 질병을 포함해서 하루 5~6명, 매년 2천 명 이상이 일하다 죽고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끔찍하지만 더 끔찍한 것은 과로사나 직업병은 조건이 까다롭고 산재를 신청하는 사람(많은 경우 사망한 노동자의 유가족)이 직접 그 인과관계(노동-사망)를 밝히게 되어있어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는 통계조차 없다. 즉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매년 2천명 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그저 성실히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죽고 있는 것이다.

산업재해 사망률이 OECD 국가 1위다. 지난 23년 동안 21년이나 1위였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나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았을 때나 똑같다. 국가가 없다. 있기는 있으나 시민을 위한, 노동자를 위한 국가는 없다. 자본을 위한 국가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이하 다시는)이 첫 전시를 열었다. 성분도은혜의뜰에서 열린 이번 전시에서는 산업재해로 인한 희생자들의 유가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산업재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뉴스로 산업재해소식을 들으면 안타까워하면서도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뿐 ‘내 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하루의 나의 삶을 살아내기도 버겁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여성주의 현대미술가 이충열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산업재해를 우리모두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특별히 운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경험 혹은 안전불감증 등 무언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잘못으로 인해 당하는 사고가 아니라 누구든 경험할 수 있는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느껴지길 바라며 기획했다고 한다.

전시가 열린 성분도은혜뜰이라는 공간은 천주교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피정의 집이다. 넓은 마당이 있는 2층 집 건물인데 정말 예쁘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전시 공간은 마당에 있는 테이블이다. 테이블에서는 산재 사고가 있기 전 산재 희생자들과 ‘다시는’ 멤버들의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초등학교 때 받은 상장, 수학여행에 가서 사온 부모님 선물, 동생에게 주려고 했던 과자… ‘내가 만약 산재로 사망하게 된다면 내 가족들은 나를 어떤 물건으로 추억할까’ 떠올려 보게 됐다.

▲ 11월4일부터 13일까지 산재피해가족네트워트 ‘다시는’이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성분도은혜의뜰에서 산재없는 세상을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김지학 소장 제공
▲ 11월4일부터 13일까지 산재피해가족네트워트 ‘다시는’이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성분도은혜의뜰에서 산재없는 세상을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김지학 소장 제공

마당에서 테이블을 지나 건물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그 문에는 여러 겹의 천막이 겹겹이겹쳐서 있다. 검정 천막, 빨간 천막 그리고 혼란스러운 색상의 선들이 그려져 있는 천막.. 어둡고 무서웠다. 산재 사고를 경험했을 때 어떤 심경이었을지 경험하게 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 천막을 모두 지나고 나면 “없다”라고 딱 두 글자만 쓰여있는 천막이 나온다. 무엇이 없다는 말일까? 깊게 고민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더이상 내가 이 세상에 없게 된다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진 것, 우리의 노동환경을 안전하게 만들어야 할 안전망이 없는 것, 법이나 규칙 따윈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 우리를 보호해야 할 국가가 없다는 것 등이 떠올랐다.

일을 하러 가든 학교에서 수학여행을가든 주말에 놀러가든 어디서든 그냥 당연하게 안전히지낼 수 있어야 하는데 왜 우리는 어디에서 무얼하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위험한 세상에 살 수밖에 없을까.

그 다음은 산재 현황표가 보인다. 어느 지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다가 사람들이 죽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기본적인 안전수칙 준수만으로도 충분히 예방 가능한 사망이 많다는 것 그리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사망사고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왜 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을까? 왜 법을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을까? 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까?

다음으로는 ‘다시는’ 멤버들이 ‘다른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고 있는 모습들 그리고 서로 연대하고 돌보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그 옆으로 관객들이 자신의 손을 다른 사람들의 손에 겹겹이 그려 넣으며 함께 토닥토닥 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나도 나와 내 아이의 손을 그렸다. 평소에 아기가 스케치북에 자신의 손과 아빠의 손을 대고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 사진=김지학 소장 제공
▲ 사진=김지학 소장 제공

2층에 올라가면 기도실이 있는데 신발을 벗고 혼자 들어가게 되어있다. 혼자 들어가면 자동으로 문이 스르륵 닫힌다. 사방에 사망자 명단이 붙어 있는데 이름이 없다. 김◯◯, 이◯◯, 박◯◯ 이런 식으로 성만 있고 이름이 없다. 가끔 이름이 다 써 있는 분들이 있는데 사회적으로많이 알려진 사건의 희생자이거나 가족분들이 산재 사망 사고를 없애기 위해 투쟁하고 계시는 분들의 이름이다. 이 공간은 나에게 하루에 5-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하다 죽고 있고 우리는 그들의 이름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끼게 했다. 나도 언제든 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먹먹했다. 압도되는 슬픔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깊게 고민하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기도실에서 나오면 ‘다시는’ 멤버들의 협동 작업을 만날 수 있다. “다시는 일하다 죽지 않게”라는 마지막 문장만 정해놓고 한 문장씩 서로 말 잇기를 하며 한 장씩 그림을 그렸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아침 /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 / 아침은 커피와 빵으로 / 각별한하루를 시작한다 / 그 날 사고 때도 비가 왔다 / 괜찮겠지… 별 일 없을거야… / 바라고 또 바라던 간절함 / 기도하며 병원에 가보지 / 병원 안에 흐르는 빗물들 / 회한과 분노의 폭풍이 된다 / 잠깐! 냉정해져야지 / 너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 다시 힘내어 일어난다 / 꿈을 꾸는 듯 현실 속에서 / 진실을 위해 싸우리라! / 안전보다 돈이 먼저인 / 이 잘못된 세상을 바꿔야! / 노동자가 빛을 보는 / 안전한 세상이 시작된다 / 죽음의 사슬을 끊기 위해 / 생명을 살리는 홀씨되어 / 너를 대신해 멀리 날으리 / 산재가 일상인 일터에서 /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여 / 다시는 일하다 죽지않게”라는 산재는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며 경영자가 책임을 지게 해야만 없어질 수 있다는 스토리의 작품이 완성됐다.

그 바로 옆으로 관객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실천이나 다짐을 나무판에 적어서 벽에 걸면 그 나무판의 배열이 “다시는”이라는 큰 글씨를 만들게 되는 관객참여 작품이 있다. 더 많은 관객들이 참여할수록 “다시는”이라는 글씨가 두꺼워지는 형태다. 관객들은 ‘돈 중심 세상을끝내자’, ‘막연한 숫자 속에 너무 많은 이름이, 삶이 그렇게 묻어져 있습니다. 이 나라는 생명들을 무참하게, 무심하게 보내왔지만 더 이상은 죽음을 지켜보지만은 않을 수 있도록 기억하고 또 행동하겠습니다. 투쟁’, ‘더 관심을 가지고 함께 연대하며 실천하고 기억하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일임을 언제나 기억하고 실천하겠습니다’와 같은 다짐을 썼다. 정말 모든 시민들이 산재를 ‘나의 일’로 여기고 국가와 자본을 압박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 보게 되는 공간이었다.

‘다시는’ 멤버들과 관객들의 염원이 이루어 지려면 어떤 세상이 돼야 할까?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상황이 어떻게/왜 유지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지금의 우리의 상황은 적나라하게 말하면 ‘일하다가 사람이 죽어도 되는 사회’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쓰다 버릴 수 있는 부속품처럼 여기고 국가가 자본에게 ‘그래도 된다’고 허용하고 있다.

국가는 우리가 안전하게 살기 위해 만든 것이다. 자본을 견제하고 시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 중 가장 큰 부분 중 하나다. 그런데 시민들을 대변해서 국가를 운영해야 하는 역할을 하는 정치인들이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국가가 시민을 위해서 존재하는게 아니라 자본을 위해서 존재한다. 국가 시스템이 붕괴된 거다.

▲ 민주노총이 10월26일 서울역 인근에서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 정부 규탄 결의대회 후 용산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민주노총이 10월26일 서울역 인근에서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 정부 규탄 결의대회 후 용산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게다가 우리에게 이게 문제라는 인식조차 가지지 못하게 만든다. 이게 당연한 것이고 여기서 생존할 수 있어야 강한 사람이고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게 마땅한 경쟁 시스템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 우리가 던져져 있다. 모두 ‘각자도생’, ‘적자생존’해야 한다고 믿고 살게 만든다. 자본주의는 그렇게 시민의식과 공동체의식을 무너뜨린다.

시민사회가 오랫동안 주장해 온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올해 1월27일부터 시행됐다. 자본가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은 법의 이름에서 부터 ‘기업’을 빼고 ‘중대재해처벌법’이라고 만들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했으며 5-50인 사업장은 유예해줬다. 산재 사망 사고는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81%가 발생하고 있는데 말이다. 또 한 가지 큰 문제는 실질적인 운영지배관리하는 주체가 처벌을 받게 해야 하는데 지금 한국의 산업구조는 원청이 수많은 하청업체들에게 하청을 주는 시스템이다보니 “나한테 책임이 없다”며 계속 떠맡길 수가 있는 구조다. 결국은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사고 후 처벌을 하는 법이다 보니 예방을 위한 노력은 빠져있다. 무조건 원청이 책임지도록 하고 국가가 산재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관리 감독 교육 등 모든 필수적인 조치들을 넣어서 개정해야한다.

지난 10월29일, 이태원에서 있었던 압사참사를 두고 국가는 ‘애도하되 구조에 대한 질문은 하지말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사고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야 구조적으로 문화적으로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날 때 진정한 애도가 가능하다. 산재도 마찬가지다. 산재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산재가 일어날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놀러가든 일하러가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 안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다시는’ 멤버들과 함께 이번 전시를 만들고 기획한 이충열 작가는 우리 모두가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다하게끔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도 우리가 각자 속한 조직이나 일터에서 사람보다 업무나 성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부터 되짚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고통을 당한 유가족들이 자신들이 경험한 고통을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않도록 싸우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며 유가족들의 싸움에 응원과 연대를 부탁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변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자.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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