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 대한민국이다! ⑦]

10월29일은 지방자치의 날입니다.

지방자치의 정착이라는 공보처의 설립 취지를 통해 탄생했기에 지역민방이 느끼는 지방자치는 남다르다고 합니다.

수도권 초집중과 지방소멸의 위기, 강한 구심력에 비해 약한 원심력. 어디서부터 해법을 찾고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까요?

지역방송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지역민방 9개사는 10월24일부터 30일까지 한주를 지방자치 주간으로 정하고 기획보도, 특집 대담, 캠페인 등의 제작 편성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본지에는 릴레이 기고를 희망해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기획 연재 '지역이 대한민국이다' 시리즈를 통해 지역의 생생한 목소리를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 편집자 주

 

서울 이태원 좁은 골목길에서 156명의 고귀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신고 전화를 묵살한 치안 체계와 행정당국의 안전 불감증이 뒤섞인 명백한 인재였다. 그럼에도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대목이 있다. ‘야심한 시각, 무슨 이유로 13만 명이 넘는 인파가 자발적으로 서울 이태원으로 모여 들었는가’ 하는 점이다. 숨진 이들의 3분의 2는 20대 청년이고, 3분 1은 비수도권 거주자라고 했다. 서양에서 뿌리 내린 행사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풍경을 40대 중반의 기성세대로서 쉽게 이해하긴 힘든 게 사실이었다.

서양 문화가 짙게 배인 이태원이라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이었을까. 지방에서 주최 측 없는 똑같은 축제가 열렸더라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을까. 교육과 일자리 불균형에 따라 이미 수도권으로 이동해 버린 삶의 터전. 그 공간이 이제는 지역 곳곳 청년 세대의 해방구까지 잡아먹고 있는 것인지, 가슴 아픈 참사를 보며 떠오른 상념이 못내 씁쓸했다.

▲ 사진=조윤호 ubc울산방송 취재팀장 제공
▲ 사진=조윤호 ubc울산방송 취재팀장 제공

대한민국 지방은 수축사회의 들머리를 지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50%, 100대 기업 본사의 90%, 신용카드 사용액 72% 이상’. 이것이 통계로 확인되는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다. 수도권에 맞서 지역 분권을 이뤄보고자 부산과 울산, 경남이 특별연합자치단체란 이름으로 국내 첫 광역연합체를 꿈꿨지만 끝내 물거품이 되었다. 시·도 간 주도권을 둘러싼 신경전과 정부 지원 근거의 부재가 표면적 원인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채 설익은 의지로만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서 연대의 씨앗을 뿌리내리려 했던 욕심이다.

각종 수치를 들이대지 않아도 지방 쇠퇴는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지방 도시의 시간차 풍경만 봐도 뚜렷하다. 밤이면 젊은이들로 불야성을 이루던 지방 번화가는 옛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보다 가게가 더 많아진 지 오래, 임대 현수막은 나날이 늘어만 간다. 지방 언론사도 같은 궤적을 따라간다. 20년 전 입사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지역에 배정된 뉴스 시간은 길었다. 평균 6~7개씩의 리포트를 소화해 내는 지역 뉴스의 큐시트는 풍성했다. 30대 초반의 기자인력으로 주축을 이룬 회사 내 활기만큼 뉴스의 파급력도 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대학과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뒤를 따르듯, 기량을 막 떨치려던 7년 차 이하 현장 기자들의 이탈이 반복됐다. 적기 채용은 더디기만 했고, 인재들은 지방을 외면했다. 뉴스 리포트 수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지역의 다른 방송사들도 경쟁하듯 뉴스 수를 줄여나갔다. 지역 소식을 전할 밥상 크기가 작아지니 상차림은 부실해졌다. 정치, 정책, 사건 기사는 인기 반찬이었지만, 지역민의 소소한 이야기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알짜 정보는 곁다리에도 끼지 못했다. 시청자의 입맛은 모른 척 한 채, 언론사가 제공하는 식단대로 뉴스는 공급됐다.

과연 지역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하는 뉴스를 만들고 있을까? 일방통행 방식의 뉴스에 시청자들은 관심을 가질까? 해를 거듭할수록 떨어지는 시청률은 우리가 양질의 아이템을 발굴하지 못한 탓일까? 자조 섞인 자기 성찰이 끝나기도 전에 뉴미디어가 등장했다. 시청자 스스로 원하는 정보를 찾는 것은 물론, 뉴스도 직접 생산하는 시대가 왔다. 지역 이슈에 대한 무관심은 증폭됐고, 지역 언론과 지역민의 간격은 더욱 벌어졌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지역 언론은 수축의 들머리로 내몰렸다.

▲ 사진=조윤호 ubc울산방송 취재팀장 제공
▲ 사진=조윤호 ubc울산방송 취재팀장 제공

수축 사회에서는 ‘생존’만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생존의 해법은 생존을 해야 하는 이유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25년 전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개국한 지역 민영방송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 공공재다. 지역과 유기적으로 연대하며 끊임없이 호흡하는 또 하나의 공동체인 셈이다.

지역 사회의 미래 먹을거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위정자를 감시하며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지역 언론의 임무다. 나아가 지역민의 삶 속 내밀한 구석구석을 살펴야 한다. 지역 청년들의 고뇌, 고물가와 고금리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고통, 고환율에 고통 받는 지역 기업들의 고충과 저임금 노동자의 신음까지. 독거노인과 장애인, 일인 가구의 애환을 어루만져야 한다. 지역 사회의 계층과 세대, 젠더 갈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아가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역사와 전통, 문화에도 깊은 애정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출입처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 기사는 최소화하고, 지역 밀착형 아이템을 발굴해야 한다. 지역민의 관심사가 부동산이라면 취재를 통해 알게 된 현장의 정보를 공유하고, 동향과 전망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을 내놓아야 하는 게 맞다. 청년들의 관심이 일자리라면, 지역 뉴스가 구인과 구직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 줘야 한다. 지역민에게 외면 받는 기사는 생활정보지보다 못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처럼, 지방 언론은 지역성으로 무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정치인의 입과 행정기관의 정책 발표, 저급한 폭로나 단발성 사건사고가 지역 뉴스 서두를 장식하는 관행과 관성을 되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수축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좁은 내부에서 팽창하는 방법뿐이다.

▲ 사진=조윤호 ubc울산방송 취재팀장 제공
▲ 사진=조윤호 ubc울산방송 취재팀장 제공

지역 언론이 지역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부도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 지방 언론이 경영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불필요한 규제는 줄여주고 불합리한 제도는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뉴미디어 시장에 지역 공중파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시급하다. 포털과 유튜브로 대변되는 뉴미디어 등장으로 가짜 뉴스와 자극적인 정보가 범람하면서 시민들의 알 권리를 쉽사리 해친다. 공공성을 담보로 하는 지역 공중파는 뉴미디어 시장에서 건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모래시계는 윗 병의 모래가 좁은 통로를 따라 아랫 병으로 이동하고, 또 그 반대로 작동하며 제 기능을 다한다. 수축이 또 다른 팽창으로 연결되는 모래시계처럼 지방 언론도 저만의 무게 중심을 잡아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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