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는 역대 최악의 월드컵이다.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은 ‘예외’가 아니라 월드컵 시스템의 관성이 축조한 ‘정점’일 뿐이다.

카타르 월드컵은 스캔들이다. 이미 카타르 개최에 표를 던진 22명의 국제축구연맹(FIFA·피파) 집행위원 중 16명이 부패와 비윤리적 과실 혐의로 조사를 받았거나 연루된 것으로 밝혀진 터다. 스포츠 역사상 가장 추악한 부패 사건이었다.

공교롭게 월드컵 개막 직전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 ‘피파 언커버드’는 개최국 선정을 둘러싼 은밀한 커넥션과 피파의 부패를 낱낱이 폭로하고 있다. 그물망처럼 엮여진 부정부패의 사슬, 그리고 프랑스 등 몇몇 국가들이 천연가스와 오일 머니에 현혹돼 카타르에 표를 던졌다는 정황이 빼곡이 담겨 있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의 검은 돈이 일궈낸 기적이었다.

월드컵 준비 과정은 더욱 파괴적이었다. 곧장 전국이 공사판으로 변했다. 7개의 신규 경기장, 공항, 숙박시설, 도로 인프라, 심지어 사막에 부자들을 위한 초호화 도시를 건설했다. 경기장 시설에는 65억, 인프라 구축에는 무려 2천억 달러를 퍼부었다. 남아시아에서 수십 만명의 이주노동자들을 태운 비행기가 연일 내려앉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피파 언커버드’ 포스터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피파 언커버드’ 포스터 ⓒ넷플릭스
▲카타르 월드컵경기장 건설 현장. 휴먼라이츠워치 유튜브 갈무리
▲카타르 월드컵경기장 건설 현장. 휴먼라이츠워치 유튜브 갈무리

사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마감 때문에 50도가 넘는 한낮에도 이주노동자들을 공사장으로 내몰았고, 10년 동안 무려 67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했다. 매일 2명 꼴로 죽어간 셈이다. 죽은 노동자들을 태운 비행기들이 밤낮으로 이륙했다. 서구 언론과 축구계는 ‘현대판 노예제’라고 목청을 높였다. 성소수자 문제도 내내 이슈로 거론됐는데 경기에 앞서 독일 축구팀은 입을 가리는 퍼포먼스로 인권 탄압에 항의했고, 네덜란드 팀은 이주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공식 유니폼을 경매에 내놓기로 했다. 한편 아일랜드 대표팀 출신 로이 킨은 중계 도중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월드컵은 여기에서 치뤄지면 안 된다”고 가시 돋힌 말을 쏟아냈다.

그런데 로이 킨이 말한 ‘여기’, 그러니까 카타르만 아니면 어디든 상관없는 걸까. 크림반도를 침공하고 성소수자를 탄압한 2018 러시아 월드컵은 어떤가. 아니면 경기장을 짓느라 원주민의 토지를 빼앗고 수만 명을 이주시킨 2014 브라질 월드컵은 어떤가. 또 뒷돈 거래로 개최지에 선정되고 빈곤층을 슬럼가로 강제이주시킨 2010년 남아공은 어떤가. 로이 킨이 원하는 ‘여기’는 도대체 어디를 지시하는 걸까?

▲카타르 월드컵경기장 건설현장에서 일한 네팔 국적의 이주노동자가 휴먼라이츠워치에 카타르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침해를 증언하는 장면. 휴먼라이츠워치 유튜브 갈무리
▲카타르 월드컵경기장 건설현장에서 일한 네팔 국적의 이주노동자가 휴먼라이츠워치에 카타르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침해를 증언하는 장면. 휴먼라이츠워치 유튜브 갈무리
▲휴먼라이츠워치 유튜브 갈무리
▲휴먼라이츠워치 유튜브 갈무리

축구 진흥과 유럽 결속을 위해 설립된 아마추어 협의체 피파가 점차 초국적 기업처럼 몸집을 키우고 월드컵을 지구상에서 가장 큰 메가 이벤트로 부풀리면서 로이 킨의 그 ‘여기’는 사실 그 어디에도 없는 곳이 됐다. 피파와 월드컵이 70년대 이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로를 따라 성장하는 동안 ‘스포츠’가 ‘개발’과 동의어가 됐기 때문이다.

피파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은 메가 이벤트의 글로벌화를 추진하며 프랜차이즈 모델을 개발했다. 개최국에 특정 요구 사항을 강제하는 것이다. 경기장 수와 유형, 미디어와 통신 시설, CCTV 확대, 교통 수단의 업그레이드 같은 규격화된 조건들을 엄격히 지시한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개발도상국에 신용을 제공하며 긴축재정과 노동 유연화를 강제하듯, 개최권을 제공하는 대신 특정 이행 요구들을 관철시켰다.

이 과정에서 강제 이주, 저소득층 생계 손실, 인권 침해와 노동권 축소, 공공서비스 질 저하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 경기장 인프라가 갖춰진 유럽과 달리, 남미와 아프리카 등 남반구에서의 월드컵 개최는 공간의 전면적 개발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부분의 비용은 고스란히 공적 자금으로 충당된다. 브라질 월드컵의 경우 150억 달러까지 예산이 치솟았고, 초기 예상 비용이 5억 달러였던 남아공의 경우 89억 달러까지 폭주했다. 초과 비용 모두 공공부채가 됐다.

▲카타르 월드컵경기장 건설 현장. 국제앰네스티 유튜브 갈무리
▲카타르 월드컵경기장 건설 현장. 국제앰네스티 유튜브 갈무리

중간에서 자본과 부동산 업자들이 수익을 올리고, 피파가 방송 송출권, 라이센스, 마케팅 권리, 스폰서십 등으로 매번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챙겨 부패의 향연을 벌이는 동안 각국 시민들의 삶에 귀속되어야 할 공적 자금이 그렇게 신기루처럼 분해되는 경로, 그게 월드컵이라는 메가 이벤트의 지난 역사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을 통한 경제 성장’이라는 판타지를 제공하고 관중들이 열광하는 사이 개최국의 공공성을 약화시켜온 스포츠 신자유주의의 위용이다.

게다가 월드컵은 끊임없이 기후와 생태를 위협해왔다. 카타르와 피파는 애초에 360만톤의 탄소가 배출될 거라고 주장했다. 아이슬란드의 1년 배출량이다. 하지만 카본마켓워치(Carbon Market Watch)에 따르면, 건설 과정의 배출량을 8배 정도 덜 산정했다. 실패한 기후해법인 탄소배출권과 잔디 종묘장을 내세워 ‘역사상 최초의 탄소중립 월드컵’이라는 피파의 주장은 완벽한 거짓말이다. 8개 경기장에서 에어컨을 미친 듯 품어대고, 매일 1300여편의 여객기가 공항을 오르내리며 탄소를 배출하고, 푸른 잔디밭을 위해 추출된 염분으로 바다를 오염시키며 연일 담수화 공장을 돌리고 있다.

▲피파 월드컵 트로피 ⓒunsplash
▲피파 월드컵 트로피 ⓒunsplash

권위주의 국가에겐 내부 문제를 우회하기 위한 스펙타클, 개발도상국에겐 투자 유치를 위한 쇼케이스, 민간 자본에겐 공적 자금으로 가공된 개발 이익을 위한 돈잔치. 그렇게 월드컵과 올림픽이 경제 성장과 낙수효과를 가져올 거라고 요란하게 떠들던 엘리트들과 자본이 공적 자금을 배불리 먹고 먹튀하면, 또 부자 관중들이 비행기를 타고 우르르 사라지면, 쫓겨난 도시빈민들과 파괴된 생태계와 하얀 코끼리들만 고스란히 남는다. 행사 후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로 변하는 스산한 경기장과 시설물들, 그 ‘하얀 코끼리’ 말이다. 메가 이벤트라는 거대 환영이 가린 진짜 맨얼굴.

카타르는 역대 최악의 월드컵이다. 하지만 역정을 낸 로이 킨이나 무지개 완장을 차고 응원을 하는 유럽 장관들 생각과는 다르게, 카타르 월드컵은 ‘예외’가 아니라 월드컵 시스템의 관성이 축조한 ‘정점’일 뿐이다. 카타르의 예외성을 부각하는 시각은 결국 월드컵의 폭력적 경로를 추인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사실 월드컵의 세계화에 결탁했던 유럽인들이 차고 있는 무지개 완장의 위선과 지리멸렬함에도 책임이 있다.

원주민을 내쫓지 않고, 노동자들을 죽이지 않고,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월드컵, 개발이 아니라 온전히 스포츠인 월드컵, 부패한 엘리트들의 밀실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기반한 축제,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피파 해체와 재구성을 비롯해 가능한 상상의 지도들이 존재한다. 우선 월드컵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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