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룡 실천문학사 대표 “헌법적 기본권으로서 출판의 자유, 출판 의도와 다르게 비판 직면”  
실천문학사 홈페이지 첫 화면엔 고은 대담집 홍보중…이승하 “‘전 지구적 시인 고은’ 띠지라도 벗겨라”

성추행으로 비판받는 시인 고은의 시집과 대담집을 펴낸 실천문학사가 시집 공급 중단 소식과 함께 사과문을 발표했다. 계간지 ‘실천문학’도 이번 봄호까지만 정상 발간하고 올해 말까지 휴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대담집에 대해서는 별 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고 계속 판매 중이다. 

시인 고은의 신작 시집 ‘무의 노래’와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를 출간한 실천문학사의 윤한룡 대표는 지난 20일 “심려를 끼쳐드린 분들께 출판사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며 “17일부터 국내 모든 서점의 고은 시인의 시집 주문에 불응하여 공급하지 않고 있고 공급 중단은 여론의 압력에 출판의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이 날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입장문을 냈다. 

▲ 고은 시집 '무의노래(왼쪽)'와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 사진=실천문학사
▲ 고은 시집 '무의노래(왼쪽)'와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 사진=실천문학사

 

윤 대표는 시집 ‘무의 노래’ 출판 배경에 대해 “자연인이면 누구도 가지는 헌법적 기본권으로서 출판의 자유와 고은 시인과 실천문학사 사이의 태생적 인연이 있다”며 “이러한 본사의 출판 의도와 다르게 시집은 현재 여론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여기서 태생적 인연은 실천문학사는 고은 등이 주도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한국작가회의 전신)가 기관지 ‘실천문학’을 발간하며 시작한 출판사인 점을 뜻한다. 헌법적 기본권까지 거론한 것을 보면 성추행에 대한 성찰이 아닌 실천문학사에 대한 불매운동 등 거센 비판여론을 의식한 입장문이라는 논란이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윤 대표는 “계간 ‘실천문학’도 이미 청탁이 끝난 2023년 봄호까지만 정상적으로 발간하고, 이번 일에 대한 자숙의 의미로 2023년 말까지 휴간 기간을 가지고 좀 더 정체성 있고 발전적인 체제를 위해 심사숙고한 다음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뵐 것”이라며 “일체의 개선책을 면밀히 검토해 ‘실천문학’ 2023년 봄호에 발표하겠다”고 했다. 

다만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현재 온라인 서점 등에선 고은의 대담집을 판매하고 있다. 실천문학사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시인 고은을 가리켜 “전 지구적 시인 고은”이라면서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를 홍보하고 있다. 

▲ 실천문학사 홈페이지 첫화면 갈무리. 고은을 '전 지구적 시인'으로 수식하고 있다
▲ 실천문학사 홈페이지 첫화면 갈무리. 고은을 '전 지구적 시인'으로 수식하고 있다

 

지난 2017년 9월 ‘황해문화’에 최영미 시인은 ‘괴물’이란 시에서 고은 시인의 성추행 정황을 폭로했다. 이후 고은 시인은 연재를 중단하고 신간 시집 출판이 중지됐으며 교과서에 실린 시들도 삭제됐다. 고은 시인은 최영미 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항소심까지 최영미 시인이 모두 승소했다. 재판부는 최영미 시인의 일기장을 증거로 채택해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돼 인정할 수 있다”며 고은 시인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실천문학에서 ‘고은과의 대화’라는 대담집과 ‘무의 노래’라는 그의 시집을 출간했다. 실천문학 146호 겨울호에는 고은 시인의 김성동 작가 추모 특집도 실렸다. 

이에 최영미 시인은 헤럴드경제에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이란 글을 통해 심경을 나타냈다. 그는 “‘가족과 부인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는 고은의 발언에 충격과 참담함을 느낀다”며 “젊은 여성에게 치욕적인 추행을 하여도 성관계를 맺지 않았으면 가족과 부인에게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성인식이란 말인가?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 뒤에 숨더니 이제는 출판사 뒤에 숨어 현란한 말의 잔치를 벌이는 그가 나는 두렵지 않다”고 했다. 고은 시인이 ‘공황장애’ 등을 이유로 재판정에 출석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이어 “권력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며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권력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는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시인 고은은 복귀 이후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실천문학 편집자문위원인 이승하 시인(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은 올해 봄호부터 자신을 편집자문위원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이승하 시인은 “윤한룡 대표는 두 권 책을 회수하지 않고 계속해서 고은 시인의 변호인 노릇을 해주어야 하는가”라며 “고은 시인의 시집과 대담집 발간은 실천문학사에서 책을 낸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되고 말았다”고 했다. 

이 시인은 “시집과 대담집을 다 회수하는 게 좋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전 지구적 시인 고은의 신작 시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시집 띠지라도 벗겼으면 좋겠다”며 “이런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관련기사 : 성추행 사과없이 고은 시인 복귀에 독자·문인 99.2% 반대]

※ 미디어오늘은 여러분의 제보를 소중히 생각합니다. 
news@mediatoday.co.kr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