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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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한국에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가 유행이 된 시대, “왼손은 거들뿐”이라 외치며 왼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던 ‘20세기 소년’은 20년이 훌쩍 지나서야 다시금 강백호와 서태웅을 마주할 수 있었다. 

1990년 연재를 시작한 일본 만화 <슬램덩크>가 한국에 등장한 건 1992년이다. 1990년대는 1980년대생 아이들에게 낭만의 시기였다. SBS가 편성한 ‘슬램덩크’를 보기 위해 아이들은 집으로 헐레벌떡 뛰어갔고,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너에게 가고 있어~” 박상민의 오프닝을 듣고 나서야 숨을 돌렸다. 점심시간에는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학교 끝나고는 아파트 단지 농구코트에서 3대3, 4대4 게임을 즐기며 누구는 정대만, 누구는 윤대협으로 서로의 롤-모델에 빙의되곤 했다. 물론 정우성의 ‘개똥 슛’이 실전에서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2000년대엔 PC로 애니메이션을 몰아봤지만, 조악한 화질에 스토리도 전국대회 직전에 멈춰 있어서 ‘산왕전’에 대한 갈증은 컸다.  

윤대협·서태웅 등은 만화 속을 벗어나 실존 인물에 가까웠다. NBA와의 접점은 큰 역할을 했다. 서태웅이 풍전과의 경기에서 눈을 감고 자유투를 던지는 장면은 시카고 불스 마이클 조던이 실제 보여줬던 장면이다. 권준호가 능남과 경기에서 던진 결정적 3점슛은 1993년 NBA 파이널에서 불스의 식스맨 존 팩슨이 던진 위닝 3점슛이다. 명정공고 김판석의 ‘역대급 데뷔’는 1992년 1번픽 신인 올랜도 매직의 샤킬 오닐 그 자체였고, 1번부터 5번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윤대협은 LA 레이커스의 레전드 매직 존슨이었다. 채치수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제독’ 데이비드 로빈슨, 산왕공고 정우성은 올랜도 매직의 앤퍼니 하더웨이 ‘실사판’이었다. NBA 카드를 모으던 아이들은 퍼즐 맞추듯 NBA와 <슬램덩크>를 즐겼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한 장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한 장면. 

<슬램덩크>는 보통의 소년만화와 달랐다. 1990년대는 시카고 불스, 마이클 조던의 시대였다. 당연히 서태웅이 주인공이어야 했다. 하지만 작가는 데니스 로드맨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로드맨은 종잡을 수 없고, 사생활에 문제가 있던 선수였다. 물론 그는 NBA 리바운드왕 7회,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팀 7회를 기록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리바운더이자 수비수였다. 파워포워드로는 언더사이즈(201cm)였지만 타고난 심리전과 위치 선정 능력, 타고난 하체가 있었다. 더불어 그는 수없이 비디오를 돌려보며 상대 선수를 파악했던 노력파였다. 실제로 강백호는 ‘노력의 천재’다. 강백호의 ‘점프슛 2만개’ 연습 장면은 소년들을 농구코트로 내몰았다.  

<슬램덩크>가 단지 농구만화였다면, 여기까지 올 순 없었다.

송태섭은 키가 작고 슛이 없다. 정대만은 공백기가 길어 기복이 있고 체력이 약하다. 서태웅은 자기중심적이며 패스를 하지 않는다. 강백호는 풋내기, 퇴장 전문에 폭력적이다. 채치수는 ‘전국 제패’라는 비현실적 이상을 좇으며 주변을 힘들게 하는 ‘독재형’ 리더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시합 종료”라던 안 선생님은 부상 이후 방황하던 중학 MVP 정대만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농구가 하고 싶어요”라고 울며 돌아올 때까지 방치한 감독 실격자다. <슬램덩크>는 그렇게 ‘불완전한’ 우리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투영했다. 인생에서 가장 외로웠을 때, 가장 보잘 것 없었을 때, 가장 찬란했을 때까지…농구는 늘 누군가와 함께했다. 그 순간의 강렬함이 페이지마다 녹아 인생만화가 되었다.

<원피스>를 보는 우리는 그 누구도, 루피가 칠무해와 사황을 넘어 해적왕이 될 거라는 사실에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북산은 전국대회 토너먼트 2라운드에서 전국 NO.1 산왕공고를 꺾는 ‘대이변’을 일으킨 뒤 곧바로 탈락한다. 전국대회 제패에 실패했다. 작가는 산왕을 꺾으며 강백호와 서태웅이 하이파이브 하는 최고의 순간에서 멈춘다.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이 4집을 내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위치에 섰던 1996년 초, 인기의 절정에서 돌연 은퇴를 선언한 것과 같은 결말이었다. 그래서 2023년 슬램덩크 극장판을 마주한 80년대생들은 10대를 추억하며 위로를 얻는데 그치지 않는다. 북산의 복귀에 환호하며, 이미 다음 경기를 고대하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한 장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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